1장
취업사관학교
필수과목 ‘신입생 길잡이’의 정체
자기계발 전문 강사는 ‘최고의 인생역전’을 주제로 강의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특정 연예인을 언급한 후, “그녀는 운명의 순간을 어떻게 준비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 봤을 영상을 보여준다. 잠실야구장, 한 연예인이 시구를 한다. 그녀는 얼룩말을 연상시키는 흰색 줄무늬 레깅스를 입고 있다. ‘힙업’된 몸매가 다 드러나는 완벽한 자태로 ‘가장 섹시한 시구’를 하는 중이다. “이 배우는 8년간 무명생활을 했지만,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며 강사가 목소리를 높인다. 그녀의 요염한 자세를 엉성하게 흉내내면서. “준비하는 자만이 성공한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기회가 올 것이다!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 맞추는 정도가 아니라 최대치로 무장해야 한다!”라는 말과 함께 부흥회는 종료된다. 해준이와 세영이가 말한 ‘대학에 와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다. 물론 영상에 등장한 연예인의 섹시한 몸매 때문이 아니다. 자신들이 생각했던 ‘대학’의 모습과 지나치게 달라서였다.
진격대 서울캠퍼스에 재학중인 해준이는 1학년 때, ‘신입생 길잡이’라는 필수강의를 들어야 했다. 처음에는 생소한 학문에 지레 겁먹을 수도 있는 새내기를 위한 대학측의 친절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강의계획서의 교과목표에도 ‘각계각층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세미나를 통해 지혜로운 대학생활을 길라잡이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당연히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은 여러 학과의 교수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착각이었다. 첫 시간, 학교 ‘취업정보센터’의 직원이 강당에서 ‘2013년 채용 트렌드의 이해’라는 제목의 파워포인트를 띄워놓고 최근 10여 년간 진격대의 취업률을 소개한다. 해준이는 교수의 강의 전에 잠시 하는 의례적인 홍보 정도로 여겼으나 그게 아니었다. ‘진격대 졸업생 취업현황’이란 제목이 파워포인트 상단에 고정되어 있고 끊임없이 여러 수치가 등장한다. 진격대에서 삼성, 현대, SK, LG, 두산 등 대기업에 얼마나 많은 인원이 취업했는지, 취업자들의 스펙은 어떤지, 안심하려면 토익 점수가 최소 몇 점이 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최근 ‘현대’에 합격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아졌으니 고무적으로 생각하자고 할 때는 직원도, 학생들도 모두 긍지에 찬 미소를 짓는다. 그래프는 금융권 취업현황, 공기업 취업현황으로 이어진다. 직원, 아니 2학점 강의의 한 주를 책임지고 있는 강사는 말을 이어간다.
여러분, 요즘 학부모들께서 저희 대학에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바로 ‘진격대 취업 잘돼요?’입니다. 그러면 저희는 이 표를 띄워드리면서 걱정 마시라고, 저희 학교 취업 정말 잘된다고 말씀드립니다. 학부모님들이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몰라요.
강사의 표정에 자신감이 비친다. 학생들도 좋아하는 눈치다. 진격대와 입시배치표상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와의 비교도 빠지지 않는다. 학과별 취업률 비교는 섬뜩하다. 강사, 그러니까 취업정보센터 직원은 말한다. “이 그래프를 보면 진격대에서 경영학과의 취업률이 가장 높고 인문계열은 매우 저조한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문계열 졸업생 중 경영학을 복수전공한 경우에는 취업률 수치가 상당히 올라갔음을 알 수 있죠? 인문계열 여러분! 취업하려면 경영학 복수전공을 반드시 하셔야 합니다!”
강의실의 인문계열 학생들은 고개를 못 들 정도다. 한편에선 경영학과 학생들이 피식피식 웃으며 여유를 보인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났다. 참고로 이 내용을 해준이는 이미 두 번이나 들었다. 한 번은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 입학사정관이 찾아왔을 때였고, 또 한 번은 진격대 입학처장이 지난겨울, ‘7개 대학 공동입시 설명회’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대학설명회를 했을 때였다. 일종의 반복학습인 셈이다. 굳이 이런 것을 반복적으로 강요하는 대학의 목적은 간단하다. 취업! 그것은 시작이자 끝이다!
‘신입생 길잡이’ 두 번째 시간은 ‘금융권 취업의 내비게이션 ─ 새내기의 꿈을 실현하는 캠퍼스 금융토크’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 강의는 한국은행부터 시작해 굴지의 금융권에 다니는 선배들의 영상편지로 시작되었다. 하나같이 “학교를 믿고 열심히 준비해서” 얻은 결과임을 강조한다. 영상이 끝나자, 본인을 진격대 경제학과 출신이자 ○○은행의 수석 펀드매니저라고 밝힌 사람이 강단에 올라선다. 족히 한 시간 동안 자기가 얼마를 벌었고 누구에게 얼마를 벌게 해주었는지 이야기한다. 배우 박○○와 축구선수 김○○도 자신의 고객이라고 자랑한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강의를 마무리한다.
여러분! 진격대가 대기업과 금융권 취업률이 굉장히 놓은 것 알고 계시죠? 특히, 진격대 졸업생들이 시키는 거 하나는 제대로 한다는 소문이 파다해요. 우리 학교가 대기업이나 금융권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칭찬이 자자하답니다. 여러분! 우리 학교에 명예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니 혹시라도 진격대에 누를 끼치는 행동은 절대로 하면 안 됩니다!
3주차는 ‘학습법’이란 주제에 ‘대기업에 입사한 선배들의 노하우’라는 부주제로 강의가 진행된다. 깔끔한 양복을 입은 선배들이 등장할 때 강의실에는 후배들의 진심 어린 박수가 우렁찼다. 흐뭇한 표정의 선배들은 자기가 대학 다닐 때 사용했던 ‘형형색색’ 밑줄 친 노트를 스캔하여 파워포인트로 띄운 후, “노란색 형광펜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때 사용해야 합니다. 너무 자주 사용하면 나중에 중요한 것 위주로 간추릴 때 어렵기 때문입니다”라면서 마치 ‘요건 몰랐지?’라는 표정을 짓는다. 이들은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학점관리뿐 아니라 수강과목도 중요합니다. 논란이 될 만한 과목은 미리 피하는 게 좋아요. 괜히 나중에 억울해하지 말고요”라는 말로 강의를 마무리한다. 해준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논란이 될 만한 과목이 자신이 이번 학기에 신청한 ‘혁명의 세계사’와 ‘NGO와 시민사회’인 것 같아서 가슴이 따끔따끔하다.
4주차의 주제는 ‘면접 A+ 이미지 메이킹’이다. 준비물은 개인 손거울이다. 해준이는 두 시간 내내 ‘어떻게 웃어야 면접 때 좋은 인상을 주는가’에 대해 실전을 방불케 하는 연습을 했다. 강사는 ‘진정한’ 전문가였다. A기업은 ‘2대 89’ 가르마 헤어스타일을 선호한다, B기업은 ‘파란’ 넥타이가 좋다, 증명사진을 찍을 때도 중공업 계열은 정면을 응시하여 우직한 느낌을 주는 것이 좋고, 서비스 계열은 약간 측면으로 자세를 잡고 이가 보이지 않게 살짝 웃는 것이 좋다 등등 모든 정보가 해준이에게는 신선했다. 이야말로 도서관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살아 있는 정보 아닌가! 강사는 해준이의 경직된 웃음과 그 사이로 어색하게 도출된 덧니를 보더니, “치아교정을 서두르는 게 좋겠네요”라며 애정 어린 충고도 아끼지 않는다. 과제는 ‘웃는 얼굴로 증명사진 찍어오기’다. 해준이는 자기 얼굴이 연애할 때 마이너스인 줄은 알았지만, ‘대학의 학점관리’에도 영향을 끼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억울하지만, 역시 사람은 잘생기고 볼 일이다.
진격대 지방캠퍼스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더 현실적(?)이다. 세영이는 ‘신입생 길잡이’ 12주차였던 어느 날의 풍경을 잊지 못한다. “저희 학교 출신 중에서 현재 돈을 가장 많이 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라는 취업정보센터 직원의 소개와 함께 등장한 사람은 유명 ‘의류 쇼핑몰’을 운영하는 스물일곱 살 여자였다. 그 쇼핑몰의 한 달 매출이 수억 원이라고 했다. ‘돈을 많이 번다’는 말에 학생들을 귀를 쫑긋했다. 그녀는 가슴이 훤히 다 보이고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옷을 입어 모두를 주목시켰다. 따라온 조수와 두 명의 피팅 모델도 함께 강단에 올라섰다. 그녀는 어떻게 창업을 하게 되었는지, 자신만의 노하우는 무엇인지 우렁차게 설명했다. 옷을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진다면서 모델들에게 팔을 들어보라는 둥, 허리에 손을 올리라는 둥 재촉하기 바쁘다. 강의는 독설로 마무리된다.
솔직히 여기 지방대잖아. 사회에서는 ‘지잡대’라고 불러. 그러니 죽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평생 그런 ‘잡것’ 취급이나 받고 사는 거야. 목숨 걸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어. 사회가 색안경 쓰고 있다고 투덜거리지 마. 사회는 안 변해. 죽을 각오로 자기계발에 더 매진해!
세영이는 놀라 자빠질 지경이다. 하지만 진정한 쇼크는 그다음이었다. 강사의 꾸지람만이 강의실을 덮고 있는 묘한 분위기에서, 한 학생이 질문이 있다며 손을 들고 조심스레 입을 연다. “평소 몸매 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그 충격의 한 주가 지난 후, 강의실에는 드디어 ‘얼룩말무늬 레깅스를 입은 배우’가 영상에 등장한다. 생각해보니, 전체 강의의 내용이 나름 유기적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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