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붙이는 글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
기존의 사회운동 개념으로 볼 때 뭐 그걸 사회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스스로 운동을 한다는 인식이 강하지 않아도 기존의 사회구조나 시스템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들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덧붙여 보려 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실제 사람들의 삶의 공간과 관계에서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작은 움직임들이기도 하다는 생각에서다. 당장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 않지만 그 미래를 가늠해 볼 때 주목해 보아야 할 일들이 아닌가 싶어 덧붙여 본다. 소개하는 데 있어 특별한 기준은 없으나 몇 가지 영역을 자의적으로 나누어 보았다.
청년의 도전
청년플러스
자기 동네에서 재미있게 사는 청년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동네를 바꾸어 놓으리라는 것을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다. 도시든 농촌이든 동네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인천에는 그런 청년들이 있다. 인천문화재단이라는 중간 지원 기관의 도움을 받아 진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인천 지역 청년들의 움직임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 청년들이 그 지역의 변화를 주도할 거라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청년플러스〉라는 모임이 그것이다. 이 모임 안에 여러 청년들의 모임이 있지만 필자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동네 전문 여행사라고 당당하게 이름을 내건 ‘버스토리’라는 모임을 보고서였다. ‘버스토리’는 버스와 스토리를 합친 말이다. 마을 단위의 버스처럼 인천 구석구석을 다녀 보자는 의미로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버스를 매개로 인천사람들의 이야기를 해 본다는, 말하자면 인천을 가장 재미있게 여행하기 위한 버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청년들이 자신들이 사는 지역을 자신들의 감성으로 소개하면서 스토리를 만들고 복원해 내고 있는 셈이다. 실제 이윤을 얼마나 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발상과 시도는 세상의 변화에 대한 남다른 상상력이 없으면 나오지 않는다.
〈청년플러스〉는 2012년 인천문화재단이 마련한 ‘빌리지디자인스쿨’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진 모임이다. 지역 문화 예술과 비즈니스를 함께 고민하는 모임이다. 청년들의 재기가 번득이는 모임들인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동아리 ‘인하대 사이프SIFE. Student In Free Enterprise’, 아마추어 밴드에 공연 기회를 제공하는 에이전시 ‘프로추어먼트’, 인천 중구 신포동을 중심으로 문화 행사를 기획하는 마을 기업 ‘신포살롱’, 춤으로 청년 문화를 기획하는 ‘J컴퍼니’, 한복을 알리는 청년 동아리 ‘한복놀이단’, 부천 지역 청년 문화 기획단 ‘문화사냥단’, 고물의 재발견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꿈꾸는 ‘보물상’, 배움터 기획 집단인 ‘부평은 대학’, 폐현수막으로 옷을 만들어 파는 ‘최고의 환한미소’, 인천 중구 지역 여행 코스를 개발하는 청년 회사 ‘버스토리’ 등이 모여 커뮤니티 디자인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모임이다.
이 모임은 경계가 있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활동이 알려지면서 의정부 등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오는 등 참여자가 늘고 있지만 정확한 수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당연히 가입이나 탈퇴의 절차가 없다. 이렇게 자기가 사는 마을을 큰 도로나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관계된 소프트웨어를 창조하면서 다시 디자인해 보려는 청년들의 모임이야말로 변화와 혁신의 동력일지 모른다.
○○은 대학
○○은 대학. 무슨 대학 이름이 이런가 할지 모르겠다. ○○은 ‘땡땡’으로 읽는다. 땡땡으로 익는 이 공란의 의미는 무엇이든 다 배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마포는 대학이고, 구로도 대학이다. 실제 〈마포는 대학〉이 있다. 짐작했겠지만 ‘땡땡은 대학’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제도적으로 경계 지워진 교육,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는 다른 생각을 하는 곳이다. 이들의 교육에 대한 생각은 ‘경계를 가지 않는 삶의 활동 전부’이다. 그래서 교육을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교사 자격증이 필요 없는 곳이고, 교사로서 특정한 자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이들은 ‘누구나 가르치고 어디서나 배운다’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 모두가 스승이라는 의미이고, 어디서나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삶의 터전들이 모두 배움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은 대학’에서는 장어집 사장이 룸바교실을 열고, 마을의 할머니가 밥상머리 교육을 벌인다.
이 대학의 전공은 ‘마을만들기학과’이다. 마을의 익숙한 공간을 청년의 시각에서 새롭게 바라보고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활동을 전개한다. 학생을 ‘술래’라 부르는데, 지역의 숨은 일거리, 놀거리를 찾아다니는 청년을 의미한다.
예컨대 〈구로는 예술대학〉에서는 매주 두 차례 20여 명의 술래가 3,4명씩 팀을 꾸려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술래는 구로에 대한 애착은 물론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진 스무 살 대학생에서부터 백수, 30대 직장인도 있다. 이들은 ‘동네에서 간지나게 놀기 프로젝트’, 구로커를 비롯해 구로의 고등학생들과 힙합 댄스로 관계를 만드는 ‘구로는 예술고등학교’, 구로만의 영화를 찍는 ‘김뽕과 아이들’, ‘참새공방’, ‘토요일밤의 열기’, ‘아웃사이더아트’ 등 6개 팀을 꾸려 망르 만들기 프로젝트를 통한 활동을 했다.
〈마포는 대학〉에서는 ‘명랑마주꾼’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12년 마포 성산동의 한 아파트에서 100일간 6명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 일이 있다. 이를 충격으로 받아들인 청년 6명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파트 주민과 명랑하게 마주 본다’는 취지 아래 ‘명랑마주꾼’을 만들었다. 이들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텃밭을 가꾸는 ‘명랑허브’, 뜨개질 같은 손노동을 하는 ‘명랑꼼지락’을 만들었고,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기록하는 ‘명랑미디어’까지 세 가지 활동을 기획했고 6명으로 시작한 일은 나중에 20명까지 참여 인원이 늘었다. 돈도 공간도 없었던 청년들은 주민들에게 ‘청년쿠폰’을 만들어서 나눠 주었다. ‘전등 갈아드려요’, ‘심부름 해드려요’, ‘물건 옮겨드려요’, ‘관공서 일 도와드려요’ 등등이 적힌 쿠폰이었고, 연락이 오는 주민들을 찾아가 만나며 얼굴을 익히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 일의 성과와 관계없이 청년들이 주민들 사이로 들어가고 청년들의 활동과 주민들이 결합되면서 마을에 작은 변화를 불러오는 계기가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기존의 마을 만들기 운동과는 또 다른 경로를 청년들이 보여준 셈이다.
유명한 인도의 교육학자 수가타 미트라는 미래의 교육이란 스스로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이런 생각은 〈구름속의 학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어쩌면 ‘○○은 대학’이 세상과 세계를 배우는 참교육의 현장으로서 그의 말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은 대학’은 2014년 여름의 끝 무렵에 자신들을 해체하고 더 넓은 모임으로 만들어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은 대학’은 새로운 운동의 성장에 기여하는 또 하나의 저수지 역할을 한 셈이다.
카페오공
2012년 4월 문을 연 협동조합형 마을 카페 〈카페오공〉이 서울 강남 남부터미널 근처에 문을 열었다. 강남이라는, 부동산 가격 비싼 곳에 자리 잡았지만 음료 가격은 일반 카페의 절반 수준인 2,500~4,000원대다. 왜 그런가 했더니, 출자금의 액수와 상관없이 모두가 카페 주인인 협동조합원들이 주로 이용하는 카페이기 때문이다.
이 카페를 만든 청년들은 2009년부터 법륜 스님이 이끄는 수행공동체인 정토회에서 만났다. 청년들은 마을 만들기 공부를 시작으로 서로 잘할 수 있는 것들을 나누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작으나마 공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카페인데 그렇다고 해서 커피만 판매하진 않는다. 의류와 커피를 동시에 판매하며 외부적으로는 패션 카페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카페오공〉이라는 이름은 50명의 출자자가 100만 원씩 5,000만 원의 보증금을 모으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이들 모두가 주인이자 일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서로를 ‘주인장’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카페는 그저 음료만 파는 곳이 아니다. 다양한 모임들이 생겨났다 사라지기도 하는 커뮤니티 공간이기도 하다. 문을 열고 1년여 동안 200회가 넘는 모임이 있었고, 1,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임을 가졌다. 만화 《심야식당》처럼 낯선 사람들이 음식을 나누는 모임이 있는가 하면 재능 나눔, 독서 모임, 목공 수업, 스페인어 수업, 천연 비누 만들기, 협동조합이나 삶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지에 관한 진지한 배움 모임 등이 있다. 여기서는 대안 화폐도 사용되는데, ‘콩알’이라는 이름의 단위를 사용한다. 카페에 노동력을 제공하면 시간당 5,000콩알이 적립되어 이 콩알로 카페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직장이 없는 주인장에게는 현금으로 제공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카페를 매개로 일종의 청년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카페의 벽면에 붙은 ‘카페오공 사용설명서’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카페오공은 내가 가진 재능이 세상에 잘 쓰이는 것이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사람 맛이 나는 공동체 마을을 꿈꾸는 청년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 카페입니다.”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
청년들이 지역사회 혁신을 위해 시도한 프로그램 중에 잘 알려진 것이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이다. 〈청년몰〉을 시작한 이들의 구호는 독특하게도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이다. 〈청년몰〉은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 사업인 ‘문전성시’ 사업으로 선정되면서 시작되었다. 청년들은 상인들이 창고로 쓰던 2층 옥상을 활용해 특색 있는 가게를 꾸미기 시작했다. ‘순자씨밥줘’, ‘범이네식충이’, ‘만지면 사야합니다’, ‘우주계란’ 등 아기자기한 이색 가게들이 들어섰고 지금은 스무 개로 늘었다. 볶음 요리 전문점과 선술집, 커피숍과 수제 소품점 등 작고 예쁜 점포 스무 곳이 문을 열고 있는데, 주말 저녁에는 공연 등 문화 행사까지 보태지자 10대, 20대 청년들로 북적이기 시작해, 썰렁했던 1층 재래시장도 활기를 띠었다.
전북 전주의 남부시장은 100년 역사를 가진 곳이다. 1960년까지 한강 이남 최대 물류 집산지였고 1980년대 중반까지도 전북권 농산물이 거래되던 최대 시장이었다. 그러다 다른 재래시장들처럼 활기를 잃어가던 남부시장이 〈청년몰〉을 매개로 다시 활기가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몰〉은 2011년부터 ‘청년장사꾼 아카데미’를 시작했는데, 이는 청년들의 장사욕을 부추기는 계기가 되었다. 장사에 뜻이 있는 청년들에게는 330여㎡의 시장 옥상 장소와 창업 지원금 1,0000만 원씩이 지원되었다. 전통 시장은 금세 청년들의 다채로운 아이디어와 다양한 문화 체험 프로그램 등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대학가의 카페 같은 분위기를 내는 칵테일 바, 한방 찻집, 보드게임 방 등이 문을 열었다. 이들은 전주의 남부시장, 한옥마을 그리고 자신들을 주제로 한 월간지 《앗》도 내고 있다. ‘앗!’은 새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과 함께 기합을 만들 때 외치는 외마디 소리로 지역청년들의 새로운 시각으로 전주를 해석하고자 붙인 이름이다. 전주 남부시장의 〈청년몰〉 이후에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금천교시장 청년장사꾼〉은 금천교 시장의 한 평짜리 가게에서 시작해 지금은 서울 전역에 ‘사원앞카페, 벗’, ‘열정감자’, ‘열정꼬치’ 등 4개의 가게를 연 ‘청년장사꾼’ 모임이다. 청년들이 아르바이트나 인턴만으로는 실물경제를 체험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해 청년장사꾼 채용 과정인 ‘2주 장사체험 프로젝트’라는 인턴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2주 동안 휴일 없이 매장 관리, 서비스, 재고 관리, 발주, 재료 주매 등 장사의 기본 프로세스를 배우게 해 준다. 20대 청년 다섯이 만든 청년장사꾼 기업은 ‘문화를 접목한 장사’, ‘스펙이 아닌 경험 쌓기’에 주목한 것이다.
그 외에도 수원 못골시장 한복판에 자리한 〈못골 휴식터〉 안 라디오 녹음실에서는 20대 상인 DJ들이 국내 최초 시장 라디오 방송 ‘못골 온에어’를 진행하고 있다. 그 외에 신당동 중앙시장에는 〈신당창작아케이드〉라는 공예가들이 모여들어 시작한 공간도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청년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이 망할 날만 기다리던 재래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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