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소행성은 쳐다보지 마!
우선순위
“넌 왜 그런 데 관심 있냐?”
이런 말을 친구들에게 종종 듣곤 한다. 우리나라에서 방송국 PD로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장르적으로 인기 있는 드라마나 예능을 해야 할 텐데, PD라는 녀석이 교양, 그것도 다큐멘터리라는 재미 없는 분야에 있으니 모두의 관심사인 연예인 이야기도 기대할 수 없는 까닭이다. 게다가 환경 콘텐츠를 십년 넘게 만들고 있다 보니 스스로 생각해도 그런 질문을 받을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어떻게 이렇게 주류적 관심은커녕 친구들의 관심조차 받지 못할 주제에 꽂혔을까? 2009년에 〈텀블러 라이프〉라는 첫 다큐멘터리를 기획한 이후로 내 사회생활은 왜 많은 이들의 관심사와 나의 그것이 다른지를 설명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런데 ‘인류세’라는 단어와 함께 상황이 바뀌었다. 어느날 갑자기 내게 찾아온 이 단어에는 게임의 법칙을 바꾸는 힘이 있었다. 영국 작가 로알드 달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팀 버튼의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는 찢어지게 가난한 소년 찰리가 초콜릿 속에 숨겨진 황금티켓을 복권처럼 발견하고 인생이 바뀌는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나에겐 인류세가 그런 황금티켓이다.
왜 그런지 예를 들어보겠다. 누군가 지금 당신의 우선순위를 묻는다고 치자. “당신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각자의 취향에 따라 재테크, 승진, 정치, 종교, 취미생활 등 다양한 답을 고를 것이다. 인류세는 질문의 전제를 바꾼다. 바뀐 질문은 이렇다.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데 남은 시간이 석 달이라면, 당신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가요?” 질문이 달라졌으니 대답도 완전히 바뀔 것이다.
‘인류세’는 그런 단어다. 당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의 우선순위를 뒤바꿀 수 있는 소행성 같은 존재. 대한민국이라는 신흥 선진국에서 살아가는 당신이, 실은 인류 문명과 자본주의 시스템의 풍요를 누리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고, 그 문명과 시스템은 이 지구라는 행성을 소행성 충돌과 같은 거대한 힘으로 파괴하는 중이다. 그 파국은 기후위기, 코로나19 팬데믹, 플라스틱의 범람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류세’는 단 세 글자로 지금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우리와 다른 생물종을 대멸종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마법의 단어다.
다큐멘터리 PD로서 그 단어를 처음 접하는 순간, ‘인류’라는 이름을 붙인 지질시대 용어가 지구상에서 인간에 의해 벌어지는 대다수 문제의 심각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또한 ‘인류세’라는 개념이 주는 새로움이 환경 문제에 대한 대중적 피로감을 상쇄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고 판단했다. “왜 그렇게 관심 있냐”라는 질문, 그리고 그때마다 마주하는 재미없다는 듯한 표정을 “어떻게 그런데 관심을 가졌냐”라는 말과 함께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꿔줄 기회로까지 느껴졌다.
알아보니 해외에서는 인류세 연구가 활발하고 인류세 담론이 뜨거웠는데 한국에서는 일부 학자와 예술가를 제외하곤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왜 우리나라만 유독 인류세에 무관심하지?’라는 생각이 일순간 들었지만,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아이템으로 다가왔다. 서둘러 2017년에 기획안을 제출했고 2019년에 3부작 다큐멘터리 〈인류세〉를 방송했다. 반응은 좋았다. 방송 직후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인류세가 오르고, 프로그램도 국내외에서 여러 상을 수상했다. 친구들의 표정도 “아, 네가 이런 걸 만드는구나” 정도로 바뀌었다. 물론 지인들의 표정 변화나 수상 실적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갈 길이 멀다. 그래서 이후에도 인류세에 관한 프로그램을 계속 만드는 중이다.
알고 보니 나만 그런 경험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인류세는 지구를 연구하는 과학자와 그 너머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어요. 우리는 그런 단어를 찾고 있었거든요.”
― 지구시스템과학자 윌 스테판(호주 국립대 명예교수)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의 이름이 인류세면 내가 가르치고 있는 포스트 모던, 레이트 모던은 뭐지? 모더니즘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인류세를 살고 있구나. 균열이 일어났어요. 오래 공부했던 것들이 다시 보이고, 지적 기후 변동이 일어난 거죠.”
― 사회학자 김홍중(서울대 교수)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의 박범순 센터장은 해석을 덧붙인다. 서구의 영미권 학계는 인간-환경, 인간-자연의 관계를 주제로 오랫동안 연구한 사람들이 많다. 환경 운동뿐만 아니라 철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하던 사람들이 인류세라는 새로운 과학적 언어가 만들어졌을 때 그것을 빨리 포착해 자기 분야로 가져와 사용했다.
“학계의 전문가들은 이 상황에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위기의식이 ‘인류세’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위기의식을 꽤 오랫동안 갖고 있었는데 ‘인류세’라는 스토리텔링하기 좋은 용어가 나타난 거죠.”
나 역시 비슷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덕분에 운 좋게 국내에서 남들보다 빠르게 인류세를 만나 3부작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의 외부연구원으로도 참여할 수 있었다. 이쯤에서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를 잠시 소개하자면 이곳은 2018년 설립돼 단일 연구기관으로는 세계 최초로 인류세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곳이다. 2025년까지 7년 동안 각계의 학자들이 모여 인류세 시대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하고 공론화하는 융합연구를 진행한다.
“어떻게 이런 주제로 다큐멘터리 만들 생각을 했어요?”
2018년,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연구진과 처음 만난 자리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와는 달랐다. 그 말을 꺼낸 교수의 얼굴에서 호기심과 반가움이 드러났다. 처음 보는 분들이었지만 동지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과학 연구를 한다는 것은 방송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PD가 프로그램 아이템을 찾듯 과학자들도 괜찮은 연구 주제를 좇는다. 당시 한국과학기술학회 회장이었던 박범순 교수는 인류세를 만나 인류세연구센터를 꾸렸다. 그는 과학기술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세상을 발전시킨다는 믿음이 깨지고 있는 이 시대에 인류세가 좋은 연구 주제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계속 인류세적 시각에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처럼 그도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인류세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개소한 지 5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의 성과는 어땠을까? 지질자원연구원과 함께 경기도 평택에서 지층을 시추해 인류세 쓰레기를 찾아내고, DMZ 지역에서 인간과 두루미, 땅의 관계를 드러내는 융합연구를 진행하는 등 동아시아에 위치한 연구기관으로서 차별화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언론 보도와 과학관· 미술관 전시 등 대중과의 접점을 모색하며 과학자들의 목소리로 인류세를 알렸다. 하지만 박범순 센터장은 공론화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솔직하게 토로했다.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한국 사회에서 인류세를 모르는 이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과학사학자, 나와 같은 언론인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이 단어가 왜 다른 이들에게는 그만큼 매력적이지 않을까?
“대한민국에서는 쉽지 않죠. 인류세는 지질학, 대기화학, 생물학 등 다분야와 연관된 통합적인 개념이라 학계의 장벽을 넘어서 생각해야 하는데, 학계 내에서도 그게 어려워요. 학계를 넘어 인문학, 사회로까지 퍼져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그런 역사가 별로 없죠.”
게다가 인류세는 아직 공식 지질시대로서의 권위가 없는 상태다. 현재의 공식 지질시대는 1만 1700년 전에 시작된 신생대 제4기 홀로세이다. 국제 지질학계는 과학자들이 수집한 증거를 바탕으로 1950년대부터를 인류세로 봐야 할지 심사하는 중이다. 해외에서는 과학적 주장에 불과했던 인류세가 등장해 확산하며 공식화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반면 어떤 분야든 간에 권위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한국사회에서 인류세는 비공식 용어일 뿐이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