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rica
아메리카
‘미국’이라는 말처럼 대한민국에서 다양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나라 이름도 아마 없을 것이다. 조선왕조 멸망 시기에는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 근대화를 도왔다. 미국은 일본제국을 무너뜨린 후 한반도에 진주했다. 얼마 후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대한민국이 날로 변화하던 시대에도 미국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한국전쟁 직후에 비해 나라의 위상이 현저히 높아진 현재의 대한민국도 국가안보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존한다. 미국은 대한민국의 주요 무역 파트너다. 문화적으로도 미국의 입지는 견고하다. 미국 문화는 대한민국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학문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지식층은 주로 미국으로 유학하여 그곳에서 최종 학위를 받는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나라 미국의 공식 영어 명칭은 ‘United States of America’다. 이 이름이 ‘미국’으로 변환된 것은 청나라 시절 중국어 표기를 그대로 따른 결과다. ‘아름다울 미美’자를 중국인들이 택한 것은 딱히 이 거대한 대륙국가가 세계에서 유독 아름다운 나라여서가 아니다. ‘아메리카’의 ‘메이’ 소리를 이 글자가 내었기 때문이다. 우리말에는 그러한 음가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날까지 중국어의 ‘미’ 자를 그대로 전수받아 사용하고 있다.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였다. 영국인들이 17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북아메리카로 이주하여 1776년 독립을 선언하기 직전까지 ‘13개 식민지Thirteen Colonies’로 분화되어 있었다. 오늘날 뉴욕 지역은 네덜란드인들이 먼저 개척했고, 미시시피강 유역은 프랑스 식민지였으며,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많은 독일인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영국에서 건너온 이민자의 후손들이 미국을 주도했고 이들의 언어인 영어가 미국의 공식 언어가 되었다. 미국이 위치한 신대륙 쪽으로 처음 뱃길을 개척한 이는 에스파냐 국왕의 후원을 받은 이탈리아의 제노바 사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였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대륙은 그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다. ‘아메리카’라는 지명은 같은 이탈리아반도지만 당시에는 다른 국가였던 피렌체공화국 출신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오늘날의 바하마, 쿠바, 아이티 섬들을 돈 후 1493년에 다시 에스파냐로 돌아갔다.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그로부터 4년 후인 1497년에 에스파냐 배를 타고 그쪽으로 항해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편지를 피렌체공화국의 정치 지도자 피에로 소데리니Piero Soderini에게 보냈다.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이 지역 원주민들이 “자연이 준 바에 만족”해하며 살고 “이들의 땅에서 값진 물건들이 나오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노동하거나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묘사했다. 이 편지는 1505년 피렌체에서 출간된 후 이탈리아 및 전 유럽에 알려졌다. 독일의 지리학 연구자 마르틴 발트제뮐러Martin Waldseemüller는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여행 및 그의 여행기를 전적으로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1507년에 출간한 12쪽짜리 세계 전도에 다소 홀쭉한 아메리카대륙을 그려넣었다. 이 출판물의 라틴어 제목을 그대로 옮기면 “프톨레마이오스의 전승과 아메리고 베스푸치와 다른 이들의 여행에 의거하여 지구 전체를 그리다”이다. 이와 같이 마르틴 발트제뮐러의 세계 전도가 실린 출판물 제목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니라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이 들어갔다. 그 이후로 유럽인들 사이에서는 대서양 서쪽 신대륙의 이름을 ‘아메리카’로 부르는 관행이 굳어지게 되었다.
콜럼버스건 베스푸치건 그들은 에스파냐 배를 타고 신대륙을 탐험했고 그들의 탐험은 에스파냐왕국을 위한 것이었다. 반면 오늘날 에스파냐어권 아메리카는 굳이 ‘라틴아메리카’라는 말로 구분하고 ‘아메리카’는 에스파냐어권이 아닌 나머지 문화권에서는 영국계가 장악한 북아메리카를 가리킨다. 영국인들이 최초로 ‘아메리카’에 개척한 식민지는 버지니아Virginia다. 1606년 영국 국왕 제임스 1세JamesⅠ는 ‘특허장Charter’을 발부하여 “플리머스 회사”와 “버지니아 회사”가 “일반적으로 버지니아로 불리는 아메리카의 그 지역”을 소유하고 개발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 문서에서는 때로 “버지니아와 아메리카의 해안” 같은 표현을 쓰므로 버지니아를 마치 아메리카와 구분되는 별도의 지역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이 ‘특허장’의 목적은 새로운 영토의 이름을 ‘버지니아’로 확정하고 그곳에 영국 왕의 백성들을 이주시키는 것이었다. ‘버지니아’는 법적인 정체성을 부여받은 지명이었다. 반면 ‘아메리카’는 순전히 지리적인 명칭으로 새로운 식민지를 가리키는 주요 개념이 아니었다. 1620년 북아메리카 북쪽 해안에 정착한 영국인들의 식민지를 ‘뉴잉글랜드’로 확정하는 특허장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다. 제임스 1세는 “지금부터 그 지역의 공식 명칭은 아메리카에 있는 뉴잉글랜드New-England, in America”임을 선언했다. 여기서 ‘아메리카’라는 명사는 또다른 명사인 ‘뉴잉글랜드’가 위치한 지역을 가리키는 보조적 역할만 한다.
18세기 중반까지도 영국인들이 북아메리카 식민지들을 말할 때는 ‘버지니아’나 ‘뉴잉글랜드’ 등의 지명을 사용했다. ‘아메리카’라는 말을 써서 지리적 개념 이상의 문화적·정치적 단위를 가리킬 경우에는 오늘날의 ‘미국’이 아니라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개척한 라틴아메리카를 일컫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758년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아메리카의 광산 발견” 덕에 유럽으로 은과 금이 대거 유입되었으나 그 여파로 오히려 아메리카 광산을 소유한 나라들 은 쇠락하고 나머지 유럽 국가들이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음을 지적했다. 데이비드 흄이 말하는 ‘아메리카’는 현재 쓰이는 명칭을 따르면 ‘라틴아메리카’다. 18세기 후반 영국 최고의 역사가로 존경받던 윌리엄 로버트슨William Robertson의 역저 『아메리카의 역사History of America』1777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이후 ‘아메리카’의 정복과 정착에 대해 서술한다. 영국인들의 ‘아메리카’대륙 진출은 윌리엄 로버트슨이 사망한 후 출간된 1796년 판본에서 부분적으로만 언급될 뿐이다. 윌리엄 로버트슨이나 그의 독자들이 이해하는 ‘아메리카’의 역사는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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