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틴
며칠 전 밤에 오스틴 인근 웨스트레이크힐스에서 열린 파티에서 바람을 쐬려고 밖으로 나갔다가 뒷마당 야외 화로 주위에 둘러앉아 담배를 피우는 옛친구들을 발견했다. 묘한 광경이었다. 여러 해 동안 못 보던 친구들이 대부분인데다 다들 아직도 담배를 피우고 있어서 더욱 그렇게 보였다. 마치 그들은 멈춘 시간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고 그동안 나만 다른 곳에서 결혼을 하고 자식도 낳으며 늙어간 것 같았다. 새벽 한시에 가까운 시간이었고 아내 로라는 먼저 집으로 돌아간 지 오래였다. 그날은 밤공기가 싸늘해서 모두 모닥불 주위에 웅크리고 앉아 무릎을 끌어안은 채 바람막이 점퍼를 바짝 여미고 있었다.
내가 빈 의자에 앉아 친구들을 향해 맥주를 들어올리자 모두가 미소를 지었다. 그때 누군가가, 아마 미치 앨런이었던 것 같은데, 내게 그 질문을 꼭 해야 한다고 말했다―아빠가 된 나는 시각이 다를지도 모른다고. 그 자리에는 미치 말고도 미치의 아내 줄리, 에번 베누아, 그리고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없는 그레그와 데브라 헐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거기 있는 친구들은 모두 마흔다섯 살 이상이었지만 아이가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우리가 말이야, 작년에 에번의 친구가 겪은 일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어.” 미치가 말했다. “캘런이라는 친구.”
에번이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 얘길 다시 할 거라면 난 맥주를 한 캔 더 마셔야겠다.”
“전부 다시 얘기하진 않을 거야.” 미치가 말했다. “짧게 줄여서 말할게.”
미치가 담뱃갑을 내 쪽으로 내밀었지만 나는 됐다고 손을 저었다. “니코틴 끊은 지 팔 년이야.” 나는 말했다, 어쩌면 너무 자랑하듯이.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다.
“헛소리.” 줄리가 말했다. “작년 여름에 너 담배 피우는 거 봤거든―그게 어디였더라?”
“줄리,” 나는 말했다. “내가 널 마지막으로 본 지 칠 년 가까이 됐을걸.”
줄리는 지금 여기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는 듯 눈을 찡그렸다. 모두가 취했지만 줄리는 나머지 우리보다 조금 더 취한 것 같았다.
“좋아,” 미치가 자기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 알았지? 들어봐.”
하지만 미치가 들려준 이야기는 뒤죽박죽이었다. 미치는 자꾸만 멈췄다 다시 말하고, 바로 전에 한 말을 바꾸고, 처음에 알려주었어야 할 배경 정보를 뒤늦게 보충하고, 자기 설명이 정확한지 에번에게 확인했으며, 그 와중에 수시로 사십 온스짜리 캔맥주를 한참 들이켜곤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거기 있는 친구들 대부분을 처음 만난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나중에 우리 무리와 어울리게 된 에번 베누아만 빼고 모두가 대학 친구들이었다. 어쨌거나, 이야기의 핵심은 이러했다. 어느 날 밤 에번의 친구 캘런이 집에 돌아왔는데 집안에 침입자가 있었다. 침입자는 십대 소년이었고, 캘런보다 키는 살짝 컸으나 비쩍 말랐다. 하지만 주위가 어두워 캘런에게는 복도에 있는 이 소년의 흐릿한 형체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도망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여자친구가 침실에서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그는 상대가 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달려들었고,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에 힘입어 아이의 머리를 욕실 입구에 짓찧어 죽이고 말았다.
사건의 세부는 다소 불명확하다고, 미치는 이어서 설명했다. 에번이 아는 이 남자가 사건 직후 오스틴을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텍사스대학교 경제학과의 계약직 강사 자리도 그만두어 지금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남자의 여자친구로 말하자면, 그가 어디로 가든―앨버커키로 갔다고 에번은 생각했다―같이 가려 했지만 남자 쪽에서 거절했다. 당연히 형사 기소는 없었다. 자기 집에 침입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침입자의 무장 여부를 막론하고―적어도 텍사스주 안에서는―전적으로 합법이었다.
“그런데 말이지, 요점은 그게 아니야.” 미치가 말했다. “요점은 이 남자가―캘런, 맞지?―그 여파로 사실상 자살 충동에 시달린다는 거야. 삶을 완전히 등진 거나 다름없다고.”
“뭐, 살인을 저지른 건 맞잖아.” 데브라가 말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말이야.”
“어떤 사람 눈엔 그렇겠지.” 미치가 말했다. “다른 사람 눈엔 정당방위일 거고.” 그때 미치가 시선을 돌려 나를 봤다. “자, 그니까 질문이라는 게 바로 그거야, 응? 아빠인 너는 좀 다르게 볼 수도 있을 테니까. 응? 자식 가진 부모의 시각에서 말이지. 그러니까, 그 죽은 애 나이가, 몇 살이었댔지? 열다섯, 열여섯?”
“열다섯.” 에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외투를 집안에 두고 나왔는데 갑자기 그걸 가져오고 싶어졌다. 모닥불 주위의 다른 친구들은 모두 말없이 담배만 피웠다. 이 이야기를 너무 여러 번 들었는지 다들 음울해 보였다. 에번이 나를 보며 처량하게 웃었다.
“다른 얘길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에번이 말했다.
우리는 또다른 친구 대니얼 헤런의 생일을 축하하려고 이곳에 모였다. 대니얼은 캘리포니아로 오륙 년 정도 떠나 있다가 다시 이 지역으로 돌아왔다. 대니얼이 떠난 뒤로 로라와 나는 로라의 다른 친구들―직장 동료들, 평생교육원에서 만난 여자들―과 더 자주 어울리기 시작했고, 얼마 후 우리 아이들, 토비와 준이 연달아 태어났다. 갑자기 우리는 원래 어울리던 무리를 떠나 망명이라도 한 기분이었는데, 그 친구들이 보고 싶지 않다거나 만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에겐 아이 돌보미를 고용할 여력이나 근처에 살면서 애를 잠시 봐줄 가족이 없어서였다. 그래도 처음엔 그 친구들과도 계속 만났지만―한 달에 한두 번 정도―머지않아 우리처럼 아이가 있는 다른 부부들과 서로의 집에서 어울리는 쪽이 훨씬 더 편해지자 에번에 미치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과는 대체로 연락이 끊겼다.
이런 생각을 하면 자주 서글프고 때로 죄책감도 들었지만 그들의 페이스북 게시물―여전히 즐겨 다니는 여러 콘서트 소식, 시내의 온갖 나이트클럽에서 심야에 올린 셀피―을 보면 나만 다른 나라로 이민한 사람처럼 멀리 동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은 아직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데 나는 두툼한 허리와 넓적하고 편한 신발, 희끗희끗한 턱수염에 굴복해버렸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익숙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지만―도스토옙스키 소설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심야의 윤리적 딜레마, 그것도 우리 중 하나가 아는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라니―나는 그들에게 호응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것들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는 몰라도 나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구분하는 시각을 잃어버렸으며 살인과 죽음 같은 문제라면 그저 다 슬플 뿐이다. 정당화가 되느냐 아니냐를 따질 일이 아니다. 두 인간과 그들 각각의 가족에게 일어난 아주 슬픈 사건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것 말고는 그다지 할 얘기가 없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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