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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
언제나 미래 식품이었던 미래 식품
선사시대의 식물
공상 과학 소설가들은 미래에 우리가 기괴하고 역겨운 무언가를 먹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즐긴다. 조류물속에 살면서 엽록소로 동화작용을 하는 식물.는 이들이 떠올리는 그런 음식의 후보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하며 디스토피아에 어울리는 비릿한 분위기를 풍긴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공상 과학 장르에 등장한 음식만 봐도 그렇다. 『사람 덫The People Trap』이 그리는 세상에서 인간은 “말린 생선가루로 만든 빵 사이에 가공된 조류를 끼워 먹는” 음식으로 연명한다. 『우주의 장사꾼들The Space Merchants』에는 뉴욕시에서 나온 폐기물을 먹고 자란 다시마와 티에라델푸에고 제도의 플랑크톤, 코스타리카의 클로렐라를 조합해서 만든 육류 대체품이 등장한다. 『비켜! 비켜!Make Room! Make Room!』에서는 인간의 식단이 마가린과 고래기름, 클로렐라를 아주 얇게 펴 바른 크래커로 대체된 세상이 나온다. 이 소설은 1973년에 나온 영화 〈소일렌트 그린Soylent Green〉의 바탕이 되었는데, 영화에서 그려진 미래의 환경은 죽어가는 바다와 고갈된 자원, 일 년 내내 습한 기후가 특징이다. 현재 우리가 매일 뉴스로 접하는 실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나 정말로 ‘소일렌트’라는 식품이 출시됐다. 해조류의 오일로 만든 소일렌트는 실제로 출시된 최초의 기이한 식품이었다.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것을 시간 아깝고 성가신 일로 여기던 사람이 개발한 이 결과물은 질릴 만큼 단맛이 강한 식사 대용 셰이크 제품으로 판매됐고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함부로 음식에 손대면 안 되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례로 남았다.
조류가그리고 크기가 훨씬 큰 사촌 격인 다시마도 그러한 소설에 소재로 쓰인 이유는 공급량이 넘치고 영양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나도 오메가 지방산을 섭취하려고 스피룰리나 보충제를 먹고, 다시마를 육포처럼 만든 제품도 먹는다. 레스토랑에서도 미역과 톳이 들어가는 해초 샐러드가 있으면 꼭 주문한다. 조류가 선사시대부터 존재한 식물이라는 사실은 특히 흥미롭다. 조류는 바다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고, 해양 생물의 단백질을 이루는 탄소의 주요 원천이다. 생선을 먹을 때 우리는 간접적으로 조류도 먹게 된다. 생선은 에이코사테트라엔산ETA와 도코사헥사엔산DHA 같은 오메가-3 지방산의 훌륭한 공급원인데, 어류는 조류로부터 그러한 성분을 얻는다. 생선을 별로 안 좋아한다면 인체에 중요한 지방산으로 꼽히는 ETA나 DHA를 조류에서 얻을 수도 있다는 소리다.
조류는 10억 년 이상 존재해온 해양 생물이다. 조류가 수천 년 동안 인간의 먹거리였다는 사실은 고고학적인 증거로도 확인할 수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남조류인 스피룰리나는 중앙아프리카에서 수 세기 동안 식품으로 활용됐다. 차드에서는 스피룰리나를 ‘디헤dihé라고 부르며, 코소롬 호수에서 이 작은 생물을 채취한 후 햇볕에 말려 고기와 채소로 육수를 만들 때 함께 넣는다. 멕시코에서는 400여 년 전부터 스피룰리나를 말려서 테쿠이틀라틀tecuitlatl이라는 납작하고 얇은 케이크의 재료로 활용했다.
조류가 우주로 떠나는 우주비행사들의 식량으로 활용된 적도 있지만 그리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아이들이 시금치를 싫어하듯 우주비행사들이 조류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조류를 이들의 식량으로 쓰겠다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요리법에도 좀 신경을 썼어야 했다. 조류는 집약적인 농업과 어업으로 발생하는 환경 피해 없이 인간과 동물이 이용할 수 있는 식량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공상 과학 소설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조류를 먹고살 가능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도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실현되지 못한 조류의 활용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방법을 찾고 있다. 조류는 엄청난 단백질 생산 공장이다. 조류 중에는 육류와 우유, 달걀, 대두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단백질 함량이 굉장한 종류도 있다. 또한 조류의 성장 가능성은 무한하다. 인공적으로 키우든 자연에서 자라든 물만 있으면 자라고,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도 별로 없다. 사탕을 파란색이나 초록색으로 물들이는 색소로도 쓸 수 있고, 자동차 연료로도 쓸 수 있다. 이 모든 가능성 때문에 조류는 오랫동안 기적의 산물로 여겨지며 산업계와 과학계를 모두 매료시켰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상품화되어 나온 사례는 거의 없다. 조류는 오래전부터 세상의 연료가 될 물질로 알려졌지만, 인간이 조류의 잠재성을 현실로 만드는 일은 늘 손에 닿을 듯 말 듯 하다.
조류,
판을 뒤집을 존재
식물의 왕국을 크다고 한다면, 조류의 왕국은 광활하다. 정확히 무엇을 조류로 봐야 하는지는 아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과학계가 지금까지 찾아낸 조류는 약 10만 종이다. 분류는 시작도 못 했다. 그중에 우리 식생활에 도입된 건 200여 종에 불과하다. 조류는 단순한 생물이다. 태양에너지를 이용해서 빠른 속도로 증식하며 지방과 단백질, 탄수화물을 만들어내는 생산성이 비슷한 다른 어떤 수생 생물보다 우수하다. 그래서 생물연료, 식품, 비료, 천연염료를 비롯해 현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원천으로 알려져 있다. 생산량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고 지속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서 가장 효율적인 미생물로도 여겨진다.
나는 조류를 믿어보고 싶었다.
식품으로서 조류가 어떤 잠재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조사를 벌이면서 갖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됐다. 홍조류는 대형조류, 이름 그대로 큰 조류에 속하며 바다에서 볼 수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종류는 7000여 종이지만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파란색과 녹색을 띠는 클로렐라, 스피룰리나 같은 남조류는 아마 대다수가 식이보충제로 가장 많이 접하는 종류일 텐데 그리 큰 주목은 받지 못하고 있다. 식물과 동물의 특징을 모두 가진 단세포 미생물인 유글레나는 조류와 비슷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조류가 아니다. 좀개구리밥 역시 조류는 아니지만 영양학적으로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이렇듯 분류하기에 애매한 부분은 있지만, 넓게는 모두 빛에너지를 이용하는 집광集光성 수생 생물에 해당한다.
과학 저술가인 루스 카싱어Ruth Kassinger는 저서 『슬라임Slime』2019에서 “바다에 사는 조류의 종류는 모든 은하계에 있는 별보다 더 많다”고 설명했다. 지구 생물의 생존에 조류가 기여하는 몫은 엄청나다. 우리가 마시는 산소의 50퍼센트는 조류에서 나온다. 그래서 조류에게 해가 되는 건 무조건 나쁜 일이다. 2019년은 최고 기온이 역사상 두 번째로 높았던 해였다.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차지하는 비율은 수백 년 동안 일정했고 바다에서의 농도는 더 오랫동안 일정하게 유지됐는데, 2015년부터 2019년 사이에 거의 20퍼센트 상승했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면 PH수소 이온 농도. 용액의 산성 또는 알칼리성을 나타내는 단위이다가 바뀌면서 해양 산성화로 불리는 현상이 일어난다. 바다에 사는 수많은 생물에게 해가 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이산화탄소의 비율이 높아지는 것이 조류에게는 더 이롭게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해초를 키워서 해양 pH 농도가 변화하는 속도를 늦추는 방법을 찾는 연구들도 진행되고 있다.
“미세조류는 전망이 매우 밝다면 생각합니다.” 아사프 차코르Asaf Tzachor는 전화로 이렇게 설명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실존위험연구센터Centre for the Study of Existential Risk의 연구자인 차코르는 미세조류가 식품으로서의 가능성을 넘어 인체의 생명 유지 시스템과도 관련이 있다고 보고 특정한 스트레스 요인이 발생했을 때 미세조류가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 미세조류는 안전하고 영양도 풍부하면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물질이 될 수 있을까? 미세조류양식장을 다른 나라에서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플러그 앤드 플레이plug-and-play 시스템으로 만들 수 있을까? 기존 기술 중에 미세조류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 있을까? 차코르는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조류를 유일무이한 작물로 여긴다. 기술을 통해 특정한 자연 성분을 더 강화된 인공 성분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고, 태양광을 LED로 대체해도 잘 자란다. 농사지을 땅도 필요 없다. 염수로도 재배할 수 있다. 위로 쌓아 올리는 구조로도 재배 환경을 마련할 수 있으므로 도시에서도 기를 수 있다. LED 스펙트럼을 조절하면 성장 속도도 최적화할 수 있다. 또한 조류에는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 다른 문화 간 경계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포함되어 있다. 전부 아직은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이다. 조류의 이런 다양한 잠재성이 지금도 조류에 계속해서 열광적인 관심이 쏟아지는 이유이자, 우리의 식품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논의마다 이 녹색의 끈적한 존재가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유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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