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지의 두 여자
아기를 발견한 사람은 오민준이다. 서울시 동남권 지역 두 개 동을 관할하는 전 직원 30명 규모의 청소 용역 업체 클린 이웃컴퍼니 직원 오민준. 그는 서울 시민들이 생활쓰레기를 담아 내놓는 종량제 봉투를 치우는 일을 한다. 주 6일 근무에 밤 아홉 시부터 새벽 다섯 시까지 여덟 시간 일하고 4대 보험이 적용된다. 그는 일곱 시 사십 분경 사무실에 도착해 출근 기록기에 체크하고 탈의실로 들어간다. 사무직원 한두 명을 빼고 나머지 직원들이 같은 동선으로 일할 준비를 한다. 담당구역에 따라 3인 1팀이다. 탈의실 의자에 걸터앉아 티셔츠를 벗고 옷을 갈아입을 때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동료 현수가 탈의실로 들어온다. ‘회사 좀 옮기고 싶다!’ 민준이 매일 하는 생각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동남권 관할 용역회사들 중 좀 더 규모가 크고 복지 수준이 나은 곳으로의 번듯한 이직이다. 민준이 현수 쪽을 보며 묻는다. “좀 적응돼가냐?” 현수는 일한 지 겨우 삼 개월쯤 됐다. 셔츠를 벗는 현수의 손등과 팔목이 상처투성이다. “네 그럭저럭요.” 민준이 현수를 슬쩍 쳐다보며 또 이직 이야기를 꺼낸다. “회사 옮기고 싶지 않냐?” 민준의 말에 현수는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저는 지금도 불만 없어요.” 민준은 이직에 성공한 자신을 상상해본다. 서초·강남·송파·강동 중 한 곳이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런 곳이 아닐 바에는 사무실이 많아 생활쓰레기 분량이 적은 중구 지역이 차라리 낫다. 특히 서초와 강남은 고용된 모든 청소 용역에게 얼굴을 보호하는 특수 고글을 지급한다. “겨우 그 고글 때문에 옮기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오민준이 특수 고글 얘기를 할 때마다 동료들은 모두 같은 반응이다. 그렇다. 오민준이 이직하고 싶은 이유는 오로지 특수 고글 때문이다. 섭씨 30도가 넘는 징글징글한 한여름에 종량제 쓰레기봉투가 터지며 쏟아져 나오는 반려동물이나 사람의 배설물이 얼굴을 강타하는 경험을 해본 사람만이 그의 욕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쓰레기를 이렇게 버리니까 동네가 발전이 없지. 쓰레기를 이렇게 버리니까 범죄가 많이 일어나지. 쓰레기를 이렇게 버리니까 나라가 이 모양이지. 쓰레기를 이렇게 버리다니! 그는 혼자서 서울을 상대로 싸움이라도 걸 태세다. 오민준은 자신이 속한 구역에 거주하는 주민들, 서울 시민들을 통틀어 경멸한다. 좀 잘살게 됐다고 사람 무시나 할 줄 알지, 쓰레기 하나 제대로 못 버리는 한심한 인간들이 서울 시민들이다. 두고 봐, 다들 언젠가는 반드시 엄청난 대가를 치를 거야. 오민준은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특수차에 종량제 봉투를 던져 넣으며 계속해서 중얼거린다. 스물여덟에 시작한 이 일을 서른이 넘고 서른두 살이 되도록 이어온 건 매달 정해진 날짜에 꼬박꼬박 입금되는 월급 때문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원룸을 마련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빚만 남기고 돌아가신 이후로 나날이 늘어가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지친 민준은 독립하고 싶었다.
새벽 한 시에 간식을 먹는다. 오민준을 포함한 팀원 셋이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세상 진지한 얼굴로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교복 입은 학생이 순간 화들짝 놀라며 손가락으로 코끝을 쥔다. 6월 말에, 섭씨 30도 가까운 기온에, 몇 시간째 쓰레기종량제 봉투를 차에 싣는 일을 한 사람들에게서 냄새가 나지 않을 수 있나. 처음에는 냄새 때문에 생수 한 모금도 제대로 마실 수 없었다. 학생뿐만 아니라 편의점 알바생도 이들이 들어가자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며 마스크를 고쳐 쓴다. 쓰레기봉투 적재용 특장차 운전이 주 업무인 김 팀장은 제로 콜라, 봉투의 수거와 적재를 담당하는 현수는 이온음료, 민준은 바나나우유를 고른다. 술을 마시는 건 근무 원칙상 허용되지 않지만 운전을 하지 않는 사람은 몰래 마시기도 한다. 하지만 민준은 일하는 동안은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다. 술로 망친 인생은 아버지 하나로 충분하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해 편의점 안에서 먹고 싶지만 눈치가 보인다. 겨우 몇 분일 텐데,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청소부 옷차림은 형광색이기도 하고 옷 여기저기 주머니며 부착물도 많아 편의점 알바도, 막 들어오는 손님도 시선이 곱지 않다. 세 사람은 자연스레 밖으로 나온다. 편의점 입구의 파라솔 아래가 그들의 자리다. “오늘 봉투가 유난히 많다.” 새벽이 깊어질수록 쓰레기봉투는 점점 많아진다. “에효, 늘어나는 건 쓰레기뿐이고.” 김 팀장이 한 손으로 라이터를 들어 높이 던져 올린다. “서초, 강남은 트라우마 치료도 다 같이 한다는데, 우린 이게 뭐야.” 김 팀장도 민준에게 전염됐는지 서초 강남 타령이다. 운이 나쁘면 고양이나 개의 사체를 보기도 한다. 그러면 어떤 경우 과호흡이 오기도 하고 한동안 일을 못 하게 되기도 한다. 트라우마 치료는 그런 직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그때 현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질문한다. “근데 왜 직원들이 밥을 다 같이 먹어야 해요?” 김 팀장과 민준이 힘없이 피식 웃는다. “야야, 밥을 다 같이 앉아서 먹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남들 밥 먹는 시간에 우리도 먹는 게 중요한 거지.” 현수는 민준의 말을 듣고는 이제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현수는 이십대로 급하게 현금이 필요해 청소 용역을 하고 있다. 높은 금리의 신용카드사 현금서비스를 썼거나 사채를 썼을 수도 있다. 단순히 직업이 필요해 이 일을 시작한 사람은 하루 만에, 혹은 삼일 만에 그만두기도 한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초기에는 거의 밥을 먹지 못한다. 현수도 초반에는 물도 마시지 못했다. 하지만 현수는 지금 삼 개월째다. 삼 개월만 잘 버티면 일 년을 버티는 것도 가능하다. 새벽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편의점 출입문이 열리고 아르바이트생의 한쪽 어깨가 쏙 삐져나온다. “손님, 여기서 담배 피우시면 안 됩니다.” 편의점 문에 매달린 종이 흔들리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아르바이트생이 어깨를 다시 넣고 출입문을 닫는다. “아, 저 새끼. 우릴 하루 이틀 보나.” 막 담배를 피우려던 김 팀장이 툴툴댄다. “팀장님, 알바 바뀐 거 같아요. 어제 일하던 애 아니에요. 명찰에 이름이 달라요. 지난번에 봤을 때는 박 솔이었나 그랬는데, 오늘은 아니에요.” 현수가 먼저 파라솔을 벗어난다. 김 팀장도 목에 건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으며 먼저 일어선다. 오민준은 다 마신 바나나우유 통을 들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 재활용 통에 버리고 나온다. 둘은 벌써 트럭에 탔고, 민준은 트럭 표면을 탕탕 두드리며 ‘고고’를 외친다. 휴식 시간은 늘 짧고 시간은 매우 빠르게 흐른다.
쓰레기 수거차가 언덕길에서 정차한다. 비교적 높은 지대에 있는 소형 다세대주택 밀집지다. 민준의 원룸도 이 근처에 있다. 이곳은 지대가 높아 차가 중턱까지만 올라갈 수 있다. 그래서 청소부들이 일일이 걸어 올라가 쓰레기봉투를 가지고 내려와서 일정한 장소에 쌓아둔 뒤 다시 수거차에 실어야 한다. 이 구역이 어쩌면 가장 난코스다. 김 팀장이 공원 옆에 수거차를 세운다. 차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 김 팀장이 끙 소리를 내며 힘겹게 운전자석에서 나온다. 그는 곧장 공원 왼쪽의 다세대주택 밀집지 쪽으로 올라간다. 현수는 젊고 신입이어서 늘 직선으로 뻗은 가장 높은 쪽 골목 양쪽의, 높지만 비교적 시야 확보가 용이한 집들 담당이다. 그는 귀에 이어폰을 낀 채 계단을 두 칸씩 성큼성큼 올라간다. 민준도 이십대에는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오르곤 했지만 지금은 무리다. 비탈진 오른쪽 아래 골목이 민준 담당 구역이다. 민준의 전화기에서 재난경보메시지가 울린다. 한밤중의 오존주의보다. 세 사람은 각자 맡은 곳에서 종량제 봉투를 가지고 내려와 공원 앞 편평한 지대에 쌓아놓고는 다시 흩어져 세 곳의 구역으로 간다. 세 사람은 한 시간 정도 미친 듯이 종량제 봉투를 들어 공원 입구까지 나른다.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땀이 사정없이 눈 안으로 들어간다. 이래서 고글 타령을 하는 것이다. 오민준은 장갑 낀 팔을 치켜들고 눈자위를 누른다. 자기 구역 일을 모두 끝낸 민준이 김 팀장을 돕는다. 작은 집들이 밀집된 공원 쪽은 골목 모퉁이마다 봉투가 놓여 있어 욕심을 내서 빨리 옮기려다가는 각도를 잘못 잡아 허리를 삐끗하기 쉽다. 김 팀장 혼자서는 무리인 구간이다. 민준이 수거차가 세워져 있는 공원 입구로 들어가 공원을 가로질러 왼쪽으로 움직이는 순간, 공원 한가운데 조형물이 있는 곳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몸통이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조형물 뒤에서 나와 유유히 잡풀 속으로 사라진다. 흔하디흔한 서울의 밤 풍경이다. 순간 오민준은 가끔씩 앉아서 담배를 피우기도 했던 조형물 옆 벤치 쪽을 가볍게 넘겨다본다. 삼각형 모양의 조형물 주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공원 바닥에 깔린 돌들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오민준은 성인의 키만 한 철제 조형물 앞까지 걸어간다. 조형물에는 이 지역의 역사를 배경으로 지었다는 노래 가사인지 시 구절인지가 인쇄되어 있다. 오민준은 조형물 앞에 서서 주변을 돌아본다. 곧이어 이상한 소리가 다시 들린다. 이런 곳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소리다. 아까 들려온 고양이 울음소리와는 확연히 다른 낯선 소리에 민준은 주머니에서 손전등을 꺼내 조형물 뒤쪽을 비춘다. 고양이 몇 마리가 순식간에 흩어져 숨는다. 오민준은 손전등으로 아래를 비춘다. 그는 숨이 멎을 듯하다 겨우 한마디 토해낸다. “아기다.” 어두운 바닥에 놓여 있는 바구니 안에 흰 덩어리가 하나 있다. 그 덩어리를 감싼 흰 천은 고양이 발자국으로 더럽혀져 있다. “진짜 아기네.” 민준은 또 확인하듯 중얼거린다. 흰 천에 싸인 채 턱에 힘을 주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는 작은 공만 한 아기의 얼굴이 보인다. 민준은 얼굴에서 땀이 떨어질까 뒤로 물러선다. 그때 수거차의 압력 장치를 작동시키는 기계음이 들린다. 쓰레기봉투를 차에 실어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빨리 수거차로 이동해야 하는데 민준은 계속 중얼거리며 서 있다. “아, 겁나 하얗고 깨끗해!” 오민준은 어렵게 장갑을 벗어 바닥에 팽개친다. 그리고 맨손으로 바구니 안에 밀어 넣어둔 천 솔기를 잡고 천 한 가닥을 걷는다. 아기가 불빛을 피해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조금 돌린다. 오민준은 아기를 이렇게 가까이 보기는 처음이다. “자는 건가.” 오민준은 아기를 보며 이상한 기분에 빠져든다. 이런 상황은 낯설다. 보는 사람은 없는지 민준은 순간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아주 잠깐 깊은 생각에 빠졌다가 바구니를 집어 든다. 그리고 공원 주변을 살펴본 뒤 자신의 집 쪽으로 빠르게 걸어간다. 본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 지금 아기를 집에 두고 오면 아무도 모를 거라 확신하면서. 민준은 바구니가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은 채 가로등 불빛도 없는 골목으로 사라진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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