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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기나무
아지랑이 속에 펼치는 붉은 보랏빛 꽃묶음의 향연
Chinese redbud
매화, 산수유, 생강나무, 목련 등 일찌감치 꽃 소식을 알리던 봄꽃이 거의 떨어져버리고 개나리, 진달래, 벚꽃, 복사꽃도 절정을 지나 봄의 화사함이 아쉬울 즈음, 잎도 내지 않은 채 온통 붉은 보랏빛 꽃방망이를 뒤집어쓰는 나무가 있다. 이름하여 박태기나무다.
우리나라의 꽃들이 대부분 흰색이거나 맑은 연분홍색인 것에 비해 박태기나무는 차별화한 색으로 승부하는 ‘튀는’ 꽃이다. 가지 마디마디마다 마치 작은 나비처럼 생긴 꽃이 7~8개씩 모여서 나뭇가지 전체를 완전히 덮어버린다. 특이하게도 꽃자루도 꽃차례도 없이 가지나 줄기의 아무 곳에나 바로 꽃이 핀다. 꽃에는 독이 있으므로 아름다움에 취해 꽃잎을 따서 입에 넣으면 안 된다.
경상도와 충청도를 비롯한 일부 지방에서는 밥알을 밥티기라고 한다. 이 나무의 꽃봉오리가 달려 있는 모양이 마치 밥알, 즉 밥티기와 닮아서 박태기나무란 이름이 생겼다. 꽃 색깔이 붉은 보랏빛이지만 양반들이 먹던 하얀 쌀이 아니라 조나 수수를 생각하면 된다. 그래도 꽃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중국 이름은 자형紫荊이니 그대로 번역해 ‘자주꽃나무’라고 했다면 더 멋있었을 것 같다.
박태기나무의 북한 이름은 구슬꽃나무다. 꽃의 모양을 보고 붙인 이름으로 활짝 핀 꽃보다는 이제 막 피어나려는 꽃봉오리가 구슬 같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무의 꽃봉오리 하나를 두고도 남한은 밥알, 북한은 구슬을 연상할 정도이니 앞으로 통일이 되어도 같은 민족으로서 동질성을 찾기가 참 어려울 것 같다. 지은이에게 박태기나무와 구슬꽃나무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박태기나무보다 낭만적인 구슬꽃나무에 점을 찍고 싶다.
박태기나무는 본래 우리 땅에서 자라던 나무가 아니라 아득한 옛 어느 날 중국에서 시집온 나무로 아름다운 꽃방망이를 감상하기 위해 널리 심는 정원수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중부 이남의 절에 흔히 심긴 것으로 보아 스님들이 수입한 것으로 짐작된다. 겨울이면 옷을 벗어버리는 잎지는 넓은잎 작은키나무[灌木]이고 다 자라도 높이는 3~4m가 고작이다. 나무껍질은 어릴 때는 회백색이지만 나이를 먹으면 흑갈색으로 얕게 갈라진다.
유럽 남부에서 자라는 서양 박태기나무Cercis siliquastrum는 높이 7~12m까지 자라는 중간 키나무[小喬木]다.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으로 예수를 배신한 이스가리옷 유다가 목을 맨 나무가 바로 서양 박태기나무였다. 이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유다나무judas tree라고도 부른다.
잎은 어긋나기로 달리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으며 두껍다. 아기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잎은 거의 완벽한 하트 모양이다. 표면엔 윤기가 있으면 5개의 큰 잎맥이 발달해 있고 뒷면은 황록색이다. 열매는 작은 콩깍지 모양으로 다닥다닥 붙어서 겨우내 달려 있다. 콩과 식물이 대체로 그러하듯 척박한 땅도 가리지 않으며 무리 지어 심어도 서로 싸움질 없이 사이좋게 잘 자란다. 껍질과 뿌리를 삶은 물을 마시면 소변이 잘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민간약으로 쓰인다. 그 외 중풍, 고혈압을 비롯하여 통경, 대하증 등 부인병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일부 옛 문헌엔 박태기나무의 한자 이름이 소방목蘇方木으로 쓰여 있다. 하지만 소방목은 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늘푸른 넓은키 큰키나무[喬木]로 박태기나무와는 전혀 연관이 없다. 소방목은 소목蘇木이라고도 불리며,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부인병을 치료하는 약재로 기록되어 있으며 붉은 물을 들이는 염색재로도 귀중히 여기던 나무다. 일본 사신이 직접 상납하거나 일본 상인을 통해 구입하여 왕실과 신하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하며, 조선왕조실록에도 90여 차례나 등장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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