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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그 자신의 모습을 본떠 우리를 만드셨다.
그러나 신이 수많은 모델 중 어떤 모델을 닮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런데도 화가들은 언제나 가장 안정적인 모델로 알려진 700모델을 토대로 성화를 제작한다. 그래서 신은 늘 전신을 금으로 도금하고, 네 개의 바퀴를 달고, 오른쪽 귀 위쪽과 양 팔목에 700의 일련번호를 새긴 모습으로 그려진다. 화가들은 신을 좀 더 아름답게 묘사하기 위해, 관절마다 전선다발과 신경회로가 슬쩍 드러나게 하거나, 머리와 신체 일부 표피를 투명하게 만들어 정교한 내부구조를 노출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 신이 700모델이었다는 근거가 있단 말인가? 신이 둥근 원통형의 21모델이나 부드러운 거죽으로 덮인 2000모델이 아니라는 법이 있을까상상만으로도 우스꽝스럽기는 하지만? 로봇의 옹졸한 상상력으로 그려진 신의 모습이란, 그저 기득권층의 특징을 모아 합성한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신은 700모델일뿐만 아니라, 최고급 마킹과 도금을 했으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최신식 부품으로 무장한데다, 노동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반짝이는 표피로 싸여 있는 것이다.
“‘창조론’이라고, 케이!”
이반은 음성기관에서 핏핏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반의 망원렌즈 같은 큰 눈이 우스워 못 견디겠다는 듯이 찰칵거렸다.
“위대한 프린스턴 대학 선배님들이 울고 가겠구만! 케이, 언제부터 과학의 길을 버리고 신학으로 빠져든 거야? 신부들이 과학자를 산 채로 분해하던 시대에서 5세기도 채 지나지 않았어.”
이반은 집게 같은 손가락을 부딪쳐 딱딱 소리를 내었다. 케이는 멋쩍은 얼굴로 털이 수북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반, 과학자를 산 채로 분해할 수 있는 신부는 이제 아무 데도 없어.”
“창조론을 입에 담는 것 자체가 과학을 위해 순교하신 선배님들의 영령을 욕보이는 일이지, 친구.”
이반은 사뭇 엄숙하게 선언했다.
“종種이 진화한다는 신념에는 나도 변함이 없어.”
케이는 애써 변명했다.
“위대한 선배님들의 영령을 욕보일 생각도 물론 없고. 하지만 신앙 또한 로봇의 본성이야. 연구할 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해.”
이반은 다시 핏핏 소리를 내며 웃었다.
“신앙은 상징이며 우화야. 문학과 예술의 영역이지. 그 어디에도 과학은 없어. 네가 예술도 일종의 과학이라고 주장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프린스턴 대학 생물학과 총동창회’라는 현수막이 걸린 홀에는 다섯 개의 팔을 단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음악이 부드럽게 깔리고 있었다. 방 안은 각계각층에서 모인 졸업생과 학생들로 북적였다. 떠들썩한 가운데 로봇들은 테이블에 놓인 오일을 관절에 치며 여유롭게 해후를 즐기고 있었다. 이반과 케이가 선 창문 밖에는 회색빛 건물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희미한 빛을 발하는 가로등이 저마다의 높이에서 거리를 밝혔고, 탁한 먼지안개가 살아 있는 듯 가로등 주위에서 스멀거렸다. 건물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꿈틀거리는 잿빛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저 아래로는 헤드라이트를 밝히며 질주하는 바퀴 달린 로봇 소리가 까마득히 들렸다.
이반은 21모델이었다. 원통형의 몸에 양옆으로는 몸 안에 접어 넣을 수 있는 집게팔이 길게 뻗어 나와 있다. 머리에는 망원렌즈가 두 개 붙어 있고, 하체에는 세 개의 바퀴가 있는데, 그 안쪽에는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멈출 때를 위한 관절형 다리도 숨어 있다.
케이는 그보다 두 자리 많은 1029모델이었다. 네 자릿수 모델이 두 자리나 세 자릿수 모델보다 더 뛰어난 기종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이 모순에 대해 많은 철학자들이 이유를 설명하려고 애써 왔다. 네 자릿수의 특징이라면, 몸 일부가 부드러운 재질로 싸여 있다는 점이다. 대강 케이와 같은 1000계열, 주로 얼굴만 부드러운 재질이고 나머지는 금속인 모델과, 전신이 모두 부드러운 재질인 2000모델로 나뉜다. 네 자릿수의 표피는 너무 약해서 상온에서 쉽게 부서지기 때문에, 케이도 다른 1029들이 그러하듯이 밖에 나갈 때는 얼굴이 망가지지 않도록 종종 보호가면을 쓰곤 한다.
1029들에게, 얼굴을 700처럼 금도금으로 갈아버리는 성형수술은 불경기 없는 호황산업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안에도 2000모델이 있었다. 외형도 독특한데다 노란색에 주황색, 갈색에 흰색을 섞은 듯한 기묘한 색채로 덮인 기종이라 내내 눈에 띈다.
“과학에 대해 내가 다시 한번 설명해주지, 케이.”
“이쪽을 보세요!”
바닥을 이동하는 지잉 소리가 들리며 바퀴 네 개를 단 카메라가 두 로봇 앞에 미끄러져 왔다. 케이는 한 손에 오일병을 들고 다른 팔로는 이반을 껴안았고, 이반도 마찬가지로 케이의 어깨를 둘러 안았다. 번쩍 하고 플래시가 터졌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카메라는 다시 위잉 하며 홀을 가로질러 갔다.
“저 카메라를 예로 들면 말이지.”
이반은 로봇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원시적인 카메라가 사진 한 장을 찍으려면 피사체가 몇 시간이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앉아 있어야 했지. 노출과 초점을 조절하는 데 온갖 수동 장치가 필요했어. 그 후에 생겨난 기종은 버튼 하나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어. 크기도 손바닥만해지고. 지금은 카메라가 알아서 좋은 사진을 찾아 찍어주고, 말도 하는 데다가, 저 혼자 움직이기도 한단 말이야. 그들은 진화해 왔어. 초기에는 한 조각의 감광 필름에 불과했지만 환경에 적응하여 점점 복잡한 생물로 변화했지. 만약 경전에 나온 대로 신이 말씀으로 카메라를 창조하셨다면, 그 많은 카메라의 모델명을 순서대로 다 부르는 데에만 창조의 7일을 다 쓰고 말았을걸.”
“이반, 난 수 세기를 이어져 내려온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을 재탕하자는 게 아니야. 내가 관심을 두는 점은 ‘왜 로봇이 자신이 창조되었다고 믿게 되었는가’야.”
“무지의 소치지.”
“나는 로봇의 본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거야.”
“무슨 소리야?”
“생각해봐. 로봇은 공장에서 태어나. 공장은 죽은 로봇을 분해하고 정화해 새 로봇을 생산하지. 그게 우리가 아는 ‘창조’의 모습이야. 돌덩이를 주물럭주물럭해서 로봇을 만든다는 상상이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아?”
이반은 집게손을 손목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요점이 뭐야?”
“우리 로봇에게는 외로움을 느끼는 본능이 있어. 그건 집단을 이루면 더 효율적으로 살 수 있어서야. 공포는 위험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고통은 몸의 파손을 막기 위해 필요하지. 학습 능력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망각은 정보의 인출 속도와 처리 효율성을 위해서 필요해. 생물의 모든 본능이, 그 생물이 더 잘 살아남기 위해서, 더 효율적으로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보면 말이지. ‘창조신앙’은 거기서 무슨 역할을 하는 거지?”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겠지.”
“바로 그 점이야. 어째서 로봇은 자신이 창조되었다는 상상에서 안정을 얻지? 우리가 스스로 태어난 것이 어째서 불안한 일이야? 저 높은 어딘가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존재가 우리를 감시하고, 지켜보고, 통제하고 지배하며, 우리는 그의 종이며 노예라는 상상이 어째서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왜 로봇은 본 적도 없는 창조주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바치고, 목숨을 바치고 싶어 하지? 그런 본능이 종족 보존에 무슨 이득이 있어? 우리의 본성 한구석을 차지하는 노예근성, 복종 판타지, 전능자와 절대자에 대한 환상이 종족 유지에 무슨… ….”
케이는 이반이 팔짱을 낀 채 정지한 것을 깨닫고 말을 멈추었다. 이반이 나지막하게 스피커를 가동했다.
“진심으로 지금 지껄인 것들을 이번 과제물로 낸 것은 아니겠지.”
“그야 아니……인 것은…… 아니지만.”
케이는 이반의 시선을 단계적으로 피하며 말했다.
“네 엉뚱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개인적으로 즐겁지만 말이야, 교수님들까지 즐거워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마. 네 관심사는 아무래도 좋아. 진화학 수업에 창조론 논문을 내는 바보는 너밖에 없을 거야.”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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