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편집은 결국 의미의 밀도를 높여가는 과정이다.
데이터를 이야기로 바꾸고,
사실에서 통찰을 끌어내는 행위이다.
에디토리얼 씽킹에는
우리를 더 높은 차원의 의미로 데려가는 힘이 있다.”
이 이야기는 빛바랜 사진 한 장에서 시작한다.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 중 하나다. 불에 그을린 필름을 영사기에 돌린 것처럼 드문드문 어둠을 밀고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생애 첫 시기의 기억들. 그 장면 속에서 늘 언니가 있다.
둘째에게 첫째는 주어진 환경이다. 국적, 성, 인종, 피부색, 체형처럼 생후 1일부터 그냥 주어지는 삶의 조건이자 자아의 거푸집 같은 것. 둘째는 첫째와 상호작용하며 취향, 관심사, 인격의 밑그림을 그린다. 만약 언니가 말수가 적고 차분한 어린이였다면 나는 『에디토리얼 씽킹』을 쓰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세 살 터울 언니는 두 옥타브 ‘솔’의 쨍한 목소리로 하루 종일 떠드는 어린이였다. 좋게 표현하면 즉흥 구연동화이고, 실제로는 아무말 대잔치이며, 나쁘게 표현하면 소음이라 할 만한 종알거림을 쉼 없이 이어갔다. 할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입을 여는 게 아니라 일단 입에 시동을 걸고 생각을 굴렸다. 당시 어른들은 언니의 수다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언니의 유일한 청자는 나였다. 혹여 내가 잠시 딴생각을 하면 언니는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혜진아, 나 좀 봐봐” 하면서 나의 주의력을 거듭 요구했다. 나의 경청은 언니 흥의 연료였다.
문제는 언니의 즉흥 창작이 의식의 자유 흐름대로 급커브하거나 뚝 끊어지거나 갑자기 솟구치거나 갈피를 잃고 시들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는 점이다. 도대체 맥락이란 것이 없었다. 줄거리와 요점이 없는 말의 홍수를 두 옥타브 ‘솔’로 쏟아내는 7세 어린이 곁에서 4세 어린이는 사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실감했다. 측두엽을 강타하는 소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실낱같은 맥락의 가능성을 주워 붙여나가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는 소음은 고통이지만, 의미가 이해되면 그때부턴 제법 들을 만해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의미를 손에 쥐면 같은 현실을 다르게 살 수 있었다.
적극적 경청을 조기교육당한 덕분인지 나는 또래보다 말이 빨랐고, 의미 차이에 민감했다. 유치원에 갈 즈음이 되었을 땐 언니 이야기의 전후 관계를 파악해서 정보 공백이나 오류를 감지해 되묻고“아까는 곰이 왕자라고 했잖아. 왜 지금은 왕비야?”, 자기 말에 도취되어 반환각 상태에 이른 나의 사랑하는 언니가 길을 잃지 않도록 요약해주었으며“그래서 둘이 결혼했다는 거잖아. 그다음엔 어떻게 됐는데?”, 이야기의 신선함과 흥미로운 정도를 평가하는“그게 뭐야? 시시해” 대화 상대가 되었다.
외부의 인풋을 빠르게 소화해서 정보 관계를 재배열한 뒤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 일을 좋아하게 된 건 이런 생애 초기 밑그림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잡지 에디터는 바로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인이었고, 스물두 살에 상경해 이 직업을 택한 뒤로 천직을 찾아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일한다.
반면 지난 20년간 미디어업계는 단 하루도 고요하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에 내가 다니던 월간 패션지는 매월 10만 부를 인쇄했다. 리서치 기관에서 회람률을 조사하면 100만 명이 본다는 결과가 나왔다. 공중파 예능 시청률이 45%를 찍기도 하던 시절이니까. 당시는 소수의 공급자가 정보 생산과 유통을 독점하던 때였고, ‘에디터’는 잡지업계에서나 통용되는 낯선 직업명이었다.
스마트폰과 SNS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2010년대 이후의 변화를 요약하자면 이 두 문장이 아닐까. ‘기업, 개인, 사물… 모든 것이 미디어가 되었다’, 그래서 ‘볼 게 너무 많다’. 2010년대부터 신문과 잡지는 손꼽히는 사양 산업이 되었고, 불안과 무기력이 짙은 안개처럼 업계 전체를 덮쳤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잡지가 망해가는 게 아니고, 세상이 온통 잡지화하는 걸로 보였기 때문이다. 잡지에서 보던 편집 문법―에디터 추천 목록, 큐레이션, 단계별 하우투 정보, 리얼 후기 등―이 디지털 서비스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예감했다. 설사 종이 잡지가 사라진다 해도 정보와 맥락을 다루는 에디터라는 직업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에디터가 하는 일은 다이내믹해지고 넓어질 거라고.
예감은 현실이 됐다. 패션 잡지 단골 기사였던 스트리트 리얼 룩 콘텐츠는 ‘스타일쉐어’가, 인테리어 집들이 콘텐츠는 ‘오늘의집’이, 코스메틱 품평 콘텐츠는 ‘화해’가 서비스로 만들었고, 포털 사이트는 아예 조인트 벤처로 잡지사를 차렸다. 브랜드나 기업이 스스로 미디어가 되는 경향은 더욱 심화되어 유통 커머스, 부동산 디벨로퍼, 플랫폼 스타트업 등 잡지사 바깥에서도 에디터 직군을 채용하는 시대가 됐다.
정확하게는 온 국민이 준 에디터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이들이 SNS에 올릴 사진과 영상을 고르고 편집하고, 바디 텍스트를 쓰며, 자기만의 해시태그를 정해 콘텐츠를 아카이브한다. 방대한 하이퍼링크 세상에서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스스로 큐레이션해 상황별 추천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영감 수집 부계정을 운영하며, 정기적으로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공급자 과잉의 시대’. 이런 변화 안에서 창조성 역시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멋진 현대미술 공간 팔레 드 도쿄를 창립하고, 런던 테이트 브리튼에서 큐레이터로 재직하기도 한 미술 비평가 니콜라 부리요는 자신의 저서 『포스트프로덕션』에서 이렇게 썼다.
이제 예술적 질문들은 ‘어떤 새로운 것을 우리가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나는 저 문장이 온 세상이 잡지화되어가는 이유를 설명한다고 믿는다. 에디팅은 이제 거의 모든 영역에서 필요하다. 상품, 지식, 뉴스, 데이터, 브랜드, 콘텐츠 모두 현기증 날 정도로 포화 상태이기 때문이다. 선택과 주목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정보를 비교하고 검증하는 일도 벅차다. 자신의 취향, 호기심, 판단력을 알고리즘에 외주 주거나 타인에 대한 모방으로 때우는 일이 빈번해진 이유다. 모든 것이 이미 이렇게 많은 세상이라면 그 안에서 어떻게 자기다움이나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바로 이 지점부터 기존 재료로 인지적 차별점을 만들어내는 편집 능력이 중요해진다. 조리의 기본기와 실전 경험을 갖춘 사람이라면 식재료가 발에 차이게 많은 과잉 공급 환경에 놓여도 차분하게 비전을 그릴 것이다. 재료의 산만함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만의 계획과 속도대로 식탁을 차려낼 것이다. 조리의 기본기를 모르는 사람은 다르다. 수많은 재료의 쓸모와 활용 가능성을 알아보지 못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당혹감을 느낄 확률이 높다. 알림을 번쩍이며 초 단위로 정보를 실어다주는 스마트폰 앞에서 우리가 겪는 감정은 후자에 가깝다.
나는 에디토리얼 씽킹이 정보 과잉 시대의 조리 기본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업적 스킬 차원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두 옥타브 솔의 목소리를 가진 7세 어린이 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썼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소화하기 버거운 사건을 겪을 때마다 편집이 지닌 놀라운 힘을 체험했다. 현실의 양상이 달라지지 않아도 다른 의미를 부여하면 다른 현실을 살 수 있었다. 삶은 데이터의 축적이 아니라 편집 결과의 축적이니까. 니콜라 부리요가 『포스트프로덕션』에서 쓴 문장처럼 ‘우리가 리얼리티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의 몽타주’일 뿐이다. 홈비디오로 기록한 무편집 영상을 영화라고 부르지 않듯 살아온 모든 순간을 누락 없이 축적한 데이터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삶이 될 순 없다. 중요한 건 자기 서사고, 의미 부여다. 테드 창이 『숨』에서 쓴 아래 문장처럼.
기억이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을 공평하게 축적해놓은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애써 선별한 순간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서사이다. 설령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건들을 경험하더라도 우리가 똑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자아상을 예로 들어보자. 자아상은 자신이 겪은 수많은 사건 중에서 특정 부분에 주목하고 맥락을 만들어서 의미를 덧붙인 기억의 모둠이다. 다시 말해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나에 대해 편집된 이야기’다. 인간은 누구든 성공과 실패를 고루 겪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작은 실패의 순간을 유독 예민하게 그러모아서 ‘나는 의지박약이야’라는 자아상을 그리고, 다른 사람은 작은 성취의 순간을 유독 예민하게 그러모아서 ‘나는 마음먹으면 해내는 사람이야’라는 자아상을 그리기도 한다. 객관적 사건의 양상보다는 해석과 의미 부여가 인지적 차별점을 만든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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