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말이 떨어질 때마다 나는 웃었다
참 곱다 고와,
봉고차 장수가 부려놓은 몸뻬와 꽃무늬 스웨터
가만히 쓰다듬어보는 말
먹어봐 괜찮아,
복지에서 갖다주었다는 두부 두모
꼬옥 쥐여주는 구부러진 열 손가락처럼
뉘엿뉘엿 노을 지는 묵정밭 같은 말
고놈 참 야물기도 하지,
도리깨 밑에서 튀어 올라오는 알콩 같은 말
좋아 그럭하면 좋아,
익어가는 청국장 속 짚풀처럼 진득한 말
아아 해봐,
아 벌린 입에 살짝 벌어진 연시 넣어주는 단내 나는 말
잔불에 묻어둔 군고구마 향기가 나는
고마워라 참 맛있네,
고들빼기와 민들레 씀바귀도 어루만지는
잘 자랐네 이쁘네,
구부려 앉아야 얼굴이 보이는 코딱지풀 같은 말
흰 부추꽃이나 무논 잠시 비껴가는 백로 그림자 같은
벼 벤 논바닥 위로 쌓여가는 눈 위에 눈
학교도 회사도 모르는
마늘에서 막 돋아나는 뿌리처럼
늘 희푸른 말
그는 아들을 내려놓지 않았다
어린 아들 무동 태우고
전등사 계단을 오르던 그가 멈춰
숨을 고르며 말했다
애가 잠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아서요,
몇 년 전 아들은 아빠를 TV에서 보았다 아빠 공장에서 전쟁 영화를 찍는 모양이었다 헬리콥터에선 투두두둑 불이 떨어지고 땅에선 물대포가 뿜어졌다 연기 자욱한 공장, 작업복 입은 아빠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도망가다 쓰러지고 잡혀서 끌려가는 엑스트라들, 경찰은 손이 묶인 채 엎드려 있는 아빠들을 몽둥이로 내리치고 방패로 찍고 군홧발로 자근자근 밟으며 끌고 갔다
한 밤 지나면 손가락 하나, 손가락이 수백번 구부러지도록 오지 않는 아빠를 기다리며 아이는 아무에게나 두두두두 손가락권총을 쏘아댔다 아무 데나 자근자근 밟으며 고함치는 경찰놀이도 했다 친구들도 고양이도 강아지도 아이를 피했다
어디로 또 없어질 것 같나봐요
잘 때도 안 떨어져요,
나무 등에 업힌 채 참매미가 전 생애를 문질러대듯 우는
울음 밑을 지나가며
울지 마라,
눈물 털어내고 있었다 번갈아 눈 질끈 감으며
그는 아들을 내려놓지 않았다
울지 못한 울음
그의 등짝이 젖고 있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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