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예측 오류의 짜릿함 선사하기
뜨거운 의구심만큼 지성을 자극하는 것도,
구불구불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오솔길만큼
아직 덜 여문 인간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도 없다.
─ 슈테판 츠바이크
어디든 통하는 미스터리 박스
라이언은 세 살 때부터 장난감을 소개하는 유튜버였다. 영상은 예상의 범주를 조금도 비껴가지 않는다. 장난감 가게에 간 라이언은 레고 듀플로 기차를 고른다. 상자를 열고 플라스틱 블록을 맞춘다. 기차를 카펫 위에 놓고 앞뒤로 움직인다. 그러다 쓰러뜨린다. 4분 정도 뒤 라이언이 지루해하기 시작하면 영상은 끝이 난다.
〈라이언 토이스리뷰Ryan ToysReview〉의 초창기 영상은 어린아이들의 변덕스러움을 잘 보여주는 콘텐츠다. 토마스 기관차가 등장하기도 하고, 라이언이 플레이도우를 가지고 지저분하게 놀기도 하고, 픽사의 여러 캐릭터가 욕조에 둥둥 떠다니기도 한다. 화면은 흔들리고, 편집도 거의 없고, 라이언이 열어보기 직전까지 무척 열광했던 새로운 장난감의 비극적인 몰락 말고는 아무런 서사도 없다.
여기서 멈추었다면 라이언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장난감을 개봉하는 또 한 명의 어린이가 됐을 것이다유튜브에는 수많은 ‘장난감 리뷰’ 채널이 있다. 하지만 라이언의 부모님이 아이의 노는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났을 무렵 탄생한 32번째 영상에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 영상에서 라이언의 어머니는 조금 색다른 시도를 감행했다. 영상은 침대에서 자는 라이언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엄마는 라이언을 깨워 디즈니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인 거대한 종이 반죽 달걀을 보여준다. 라이언은 달걀 포장을 뜯고 그 안에 든 이런저런 장난감을 닥치는 대로 끄집어낸다. 피셔 프라이스 주차장도 나오고, 조그만 자동차는 수십 개나 나온다. 큼지막한 노란색 덤프트럭도 한 대 있다. 라이언은 거의 7분에 걸쳐 달걀 안에 든 장난감을 모두 꺼내 공개하고 방바닥에서 자동차를 잠깐 가지고 논다. 가히 과소비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짧은 영상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015년 7월 1일에 올라온 이 유튜브 영상은 조회 수가 10억이 넘는다. 아직 어린 우리 아들도 어찌나 마르고 닳도록 보는지 달걀에서 꺼낸 장난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외울 지경에 이르렀다“다음은 맥퀸 트럭이야”. 라이언의 부모님은 그들의 채널이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게 바로 이 영상이었다고 했다. 〈라이언 토이스리뷰〉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유튜브 채널로 구독자는 거의 3550만 명에 달하고 조회 수는 550억 뷰가 넘는다. 2017년에 이 채널이 거둔 수익은 2600만 달러로 추정된다. 이들은 나아가 ‘라이언스 월드’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서프라이스에 그 장난감을 기획했고, 현재 미국의 대표적인 대형마트인 월마트와 타깃에서 판매 중이다.
성공은 모방을 낳는다. 장난감이 든 서프라이즈 에그는 유튜브 키즈계의 선도적인 카테고리가 되었다. 이제는 〈디즈니 토이스리뷰〉의 ‘초대형 프린세스 서프라이즈 에그’도 있고2억 9700만 뷰, 〈토이푸딩Toypudding〉의 채널의 ‘트럭 장난감 자동차 서프라이즈 에그’9900만 뷰와 ‘초대형 마이 리틀 포니 서프라이즈 에그 컴필레이션 플레이 도우’도 있다1억 2100만 뷰. 각 영상에는 가장 최근에 출시된 장난감이 등장한다는 것 외에도, 허술한 장치를 바탕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선물이 달걀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 어떤 장난감이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아이들 사이에서 이 영상들이 이토록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역시 미스터리의 매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서프라이즈 에그는 예측 오류를 유도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라이언이 다음에는 라이트닝 맥퀸을 꺼낼까? 왜 자동차 장난감 핫휠 사이에 비행기가 끼어있지?
할리우드에서는 이걸 ‘미스터리 박스’ 기법이라고 부른다. TV 시리즈 〈로스트〉를 제작하고 〈스타트렉〉과 〈스타워즈〉의 후속편을 만든 작가 겸 감독 J. J. 에이브럼스의 정의에 따르면, 미스터리 박스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작품 속 비밀을 말한다. 영화 〈시민 케인〉에서는 로즈버드의 의미이고, 영화 〈행오버〉에서는 신랑의 행방이다. 〈죠스〉에서는 대형 백상어의 모습이고(관객들은 영화가 시작되고 80분이 지난 다음에서야 그 해양생명체를 온전히 볼 수 있다), 〈유주얼 서스펙트〉에서는 카이저 소제의 정체다. 에이브럼스가 가장 좋아하는 미스터리 박스의 예시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이다. “두 안드로이드가 정체 모를 여자와 헤어져요. 그 여자는 누구일까요? 관객들은 알 수 없죠. 미스터리 박스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루크 스카이워커가 등장해요. 그가 드로이드를 입수하자 홀로그램 영상이 나오죠. 그러면 관객들은 알게 됩니다. 아! 메시지로구나. 여자는 오비완 케노비를 찾으려고 해요. 오비완이 자기의 유일한 희망이라면서요. 아니 그럼 도대체 오비완 케노비는 누구지? 다시 미스터리 박스인 거죠!” 에이브럼스의 말처럼 〈스타워즈〉는 서스펜스를 위해 정보를 아주 조금씩만 흘리며, 미지의 세계에서 또 다른 미지의 세계로 이동하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덕분에 영화에는 흥미진진한 긴장감이 넘쳐 흐른다.
에이브럼스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타넨스 마법 미스터리 박스를 통해 미스터리의 힘을 처음 깨달았다. “마법 미스터리 박스의 기본 전제는 이거였어요. 15달러를 내면 50달러어치의 마법을 살 수 있다.” 에이브럼스는 테드 강연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그러니까 남는 장사죠.” 하지만 에이브럼스는 미스터리 박스를 개봉하지 않았다. 원래 포장된 그대로 자신의 산타모니카 사무실 책꽂이에 모셔두었다.
왜 열어 보지 않았을까? 그가 미스터리 박스의 매력을 알았기 때문이다. 에이브럼스는 이렇게 말했다. “열지 않은 상자는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하죠. 희망과 잠재력을 뜻하기도 하고요. 미스터리 박스를 좋아하는 이유, 그리고 일을 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내가 무한한 가능성에 끌린다는 거예요.”
스티브 잡스라면 이 말을 즉각 이해했을 것이다. 그는 ‘가능성’을 영업 기술로 활용한 홍보의 귀재이니 말이다. 2007년 잡스는 최초의 아이폰을 선보였다. 커다랗고 근사한 신제품 사진과 함께 기조연설을 시작할 수도 있었겠지만, 잡스는 새로 출시된 세 가지 장치를 소개하겠다며 특유의 알쏭달쏭한 말로 포문을 열었다. 그가 말한 세 가지란 와이드스크린 아이팟, 휴대전화 그리고 혁신적인 인터넷 인터페이스였다. 핵심은 이 세 가지가 하나의 기기 안에 다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애플에서 선보이려는 완전히 새로운 휴대전화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휴대전화는 거기 없었다. 잡스는 아직 미스터리 박스를 열 생각이 없었다. “사실은 여기 있습니다.” 잡스는 무대 위에 서서 반짝이는 아이폰을 (마치 부끄러운 듯이) 살짝 보여주고는 바로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잠깐 여기 넣어두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휴대전화 시장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가장 궁금한 것을 감춤으로써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전형적인 지연 작전이었다. 몇 분 뒤에 잡스가 드디어 아이폰의 사진을 공개하자 사람들은 장난감이 가득 담긴 서프라이즈 에그를 뜯는 아이들처럼 즐겁게 환호를 터뜨렸다.
도파민 기폭제
미스터리 박스의 심오한 매력은 인간의 기본적인 소프트웨어에 새겨져 있다. 2개월짜리 신생아에게 여러 물건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훨씬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처음 보는 물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러한 참신함에의 추구는 곧 정체를 알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으로 발전한다. 어느 연구에서 심리학자 프랭크 로리머는 며칠 동안 네 살짜리 남자아이를 따라 다니며 아이가 ‘왜’라고 물은 걸 모두 기록했다. 아이의 질문 목록은 여러 장에 걸쳐 이어졌고 대부분 두서가 없었다. 이런 식이었다. 왜 병아리는 껍질 안에서 자라요? 어떤 물뿌리개는 왜 손잡이가 두 개예요? 엄마는 왜 수염이 없어요?
부모들은 지칠 줄 모르는 아이들의 호기심에 때로 피곤해지기도 할 것이다어디선가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의 엄청난 호기심은 우리의 지적인 출발점이 어디인지, 우리를 인간으로 규정하는 초기 본능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아이들은 세상을 볼 때 자기들이 아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모르는 것에 주목한다. 따라서 계속 왜? 왜? 왜 그런 건데? 하고 질문한다. 그렇게 이 미스터리 박스에서 저 미스터리 박스로 폴짝폴짝 점프하며 생각하는 능력을 키운다.
이는 아주 중요한 능력이다. 미스터리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훨씬 좋은 성적을 거둔다. 미시간대학교 연구팀은 어린 학생 62명을 대상으로 오랜 기간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아이들을 생후 9개월 때부터 수차례 측정하고 그들의 부모를 면담했는데, 그 결과 미지의 대상에 대한 호기심은 학업 성취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수업 집중력 같은 다른 심리적인 변수를 통제한 후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일수록 이 상관관계는 더욱 두드러졌다. 저소득층 학생들은 전반적으로 고소득층 아이들보다 성적이 낮았지만, 호기심이 많은 저소득 가정의 학생들은 이런 격차가 없었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나의 가설은 미스터리가 경제력이 높은 가정에 주어지는 주요한 혜택이라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부모는 아이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하거나 박물관 관람 등을 시켜주며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다. 또는 새로운 미스터리 박스를 원 없이 사줄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같은 호기심 함양은 학업의 성과로 이어질 수 있고아이는 학습법을 학습한다, 따라서 고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이 종종 좋은 성적을 얻는다. 하지만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이 호기심의 격차를 메울 수 있다면, 고질적인 성적 격차도 사라진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미스터리를 즐기도록 가르치는 것은 근사한 호사가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되는 교육의 일부다.
뇌과학을 통해서도 이런 일련의 작용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최근 UC 데이비스대학교의 과학자들은 ‘호기심의 강도에 따라 달라지는 학습 방식의 변화’를 주제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원들은 피험자를 fMRI 기계 안에 넣고 역사“엉클 샘(미국을 상징하는 마스코트)이 수염을 길렀을 때 미국 대통령은 누구였을까?”와 언어“영어 단어 공룡dinosaur의 실제 뜻은 무엇일까?” 등 다양한 주제로 소소한 질문을 던졌다. 연구진은 이어서 피험자들의 호기심 등급을 매기고 그들과 연관 없는 사람의 얼굴 사진을 언뜻 보여주었다. 그런 다음 질문의 정답을 알려주었다프랭클린 피어스, 무시무시한 도마뱀. 연구진은 스캐닝을 끝낸 후 피험자들이 질문과 정답을 얼마나 잘 기억하는지, 처음 보았던 얼굴들을 얼마나 잘 가려내는지 테스트했다.
드러난 양상은 뚜렷했다. 피험자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질문을 훨씬 잘 기억했다. 이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예상치 못한 대목은 피험자들이 호기심이 고조된 상태에서 본 얼굴을 훨씬 더 잘 기억했다는 것이다. fMRI 데이터가 이유를 설명해준다. 호기심을 더 자극하는 질문을 들었을 때 피험자의 중뇌에서는 도파민 회로 활동량이 증가했다. 보상을 처리하고 예측 오류에 반응하는 이 영역이 가지각색의 미스터리 박스에 자극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따로 있다. 호기심으로 도파민이 분출되자 학습과 기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해마의 활동도 급증한 것이다.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의 호기심이 “불협화음을 감지하듯 지식의 틀 안에서 모순이나 구멍을 느낄 때” 시작된다고 주장했다. 이 새로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와 같은 모순이나 구멍은 우리의 학습 메커니즘에 기폭제 역할을 한다. 우리는 새로운 정보에 단순히 관심을 기울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하드 드라이브에 저장한다. 우리의 기억에 남는 장난감은 달걀 안에 숨겨져 있던 장난감인 것이다.
여러 면에서 미스터리 박스는 미스터리를 창출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미스터리 박스는 결정적인 정보를 안에 감춘다. 때로 정보는 커다란 달걀 안에 숨겨져 있기도 하고 공주와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는 이야기 플롯 사이에 있기도 있다. 방법은 다를지 몰라도 목적은 하나다. 우리가 찾는 비밀을 숨기며 인식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것.
하지만 모든 미스터리 박스가 똑같진 않다. 인간의 욕망을 정확히 파악하고, 결과에 상관없이 잔혹할 정도로 밀어붙일 수 있다면, 도저히 뿌리칠 수 없을 만큼 중독적인 미스터리 박스를 고안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전 재산을 다 바쳐서라도 그 박스를 열려고 들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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