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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위대하다는 나라 어디에 사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밸과 엑스라지 사이즈인 그녀의 아들, 빅터 주니어에게 자칫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곳은 다른 대부분의 지역과 비슷하다. 너무 끔찍하거나 불편한 것도 없고, 변치 않는 경관이나 감탄할 만한 독특한 전통도, 특이한 억양도, 영 의문스럽거나 혐오스러운 지역민의 습관도 없다. 이곳을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지만 나는 ‘스태그노’액체가 고여 흐르지 않는 상태.라고 부르겠다. 사방이 육지로 둘러싸인 내륙이면서도 군데군데 혼탁한 물이 고여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찌개가 부글부글 끓으면 표면에 생기는 거품처럼, 계속 건져 내야 하는 그것처럼 엉겨 붙는다.
그래도 스태그노는 나름 우리의 목적에 어울린다. 이곳은 너무 평범해서 특이한 사람은 절대 살지 않으려는 곳이다. 인구도 꽤 많아서 밸과 빅터 주니어, 내가 눈에 띄지 않고 살 수 있다. 우리는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대학생 정도의 애가 서른 몇 살쯤 된 아줌마 그리고 그녀의 여덟 살짜리 아들과 한집에 살고 있으니 이게 무슨 영문인지, 왜 어른들은 직장에 다니지 않고 애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지 묻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집에서 나가기는 하느냐고? 그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별로 나다니지 않는다. 영화와 공연은 스트리밍 서비스로 본다. 밸은 식료품을 포함한 모든 걸 다시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있다. 밸이 위험을 무릅쓰고도 정기적으로 나가는 건 기름으로 범벅된 30센티미터짜리 긴 샌드위치용 빵을 사러 갈 때뿐이다. 위도 메이커라는 이름의 이 빵은 빅터 주니어가 홈스쿨링을 받다가 한계에 다다른 날 주는 당근이다. 당근은 있지만 채찍은 없다. 밸이 사회와 예술 과목을 가르치고 내가 수학과 과학을 가르친다. 전반적으로 우리의 아이디어와 실행, 노력에 점수를 매겨 보자면 C 플러스 정도다. 빅터 주니어는 그 사실을 잘 안다. 언젠가는 엄마에게 불리하게 사용하려고 이 사실을 아껴 두고 있기도 하다. 빅터 주니어는 뛰어나게 똑똑하고 귀여운 아이다. 유난히 털이 많긴 하지만 이는 유전적으로 뭔가 엉킨 게 틀림없다. 보통 빅터 주니어 나이에는 팔과 다리, 등에 털이 나지 않는다. 보송보송한 콧수염이 나서도 안 된다. 빅터 주니어는 인간 아동으로서의 시련을 고민할 때마다 그 콧수염을 쓰다듬곤 한다.
미래에는 빅터 주니어가 전략적으로 내 성을 따르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내 존재가 빅터 주니어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완전히 예측하지 못한다. 우리가 아는 건, 밸과 내가 잘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범위나 강도 양면에서 우리의 역할을 제한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홈스쿨링에서든, 파트너로서든 위대해지겠다는 야심 같은 건 없다. 우리는 서로에게 소위 말하는 바람직한 역할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내가 밸에게 선언한 나의 역할은, 통제 불능의 발랄 강아지 빅터 주니어를 때로 그 이상의 존재로 대해주는 것이다. 또 밸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의 ‘uberant’한 섹스 파트너가 되는 역할uberant 앞에는 ex-와 prot-를 붙일 수 있다. exuberant는 왕성하다는 뜻이고, protuberant는 발기했다는 뜻이다.도 있다. 마지막 역할은 도심과 교외 사이에 위치한 이 비좁은 집이 지독하게 싫어지지 않도록 청소하는 것이다. 그 대가로 나는 밸이라는 훌륭한 사람과 함께할 수 있고, 우리가 서로 원하는 한 언제까지든 이곳에 숨어 있을 수 있다. 나는 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내 가족에 대해서나 몇 달 전 밸을 만나기 전에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밸을 만난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물건이 입고 있는 옷, 아주 작은 일제 주머니칼, 최근까지 마법적으로 현금을 소환해 낸 짙은 색의 무광 ATM 카드뿐이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달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내가 밸에 대해 조금이나마 아는 이유는 홍콩 국제공항의 푸드 코트에서 처음 만났을 때 밸이 자기의 최근 인생에 관해 얘기해 주었기 때문이다. 밸은 빅터 주니어와 함께 내 앞에 줄을 서 있었다. 빅터 주니어는 평소처럼 손에 든 게임기에 열중해 있었다. 그때 밸의 신용카드 승인이 거절됐다. 그녀에게는 현금이 없었다. 빅터 주니어는 심한 허기에 울부짖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는 녀석의 허기에 바닥이 없다는 걸 안다. 당시 나는 면세점에서 충동적으로 산 토블론 초콜릿을 이상할 정도로 조그만 빅터 주니어의 이 사이로 쑤셔 넣었다. 이에 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면서도―아시아 여자 중 일부가 이렇게 눈웃음을 짓는다. 사람을 볼 때 눈이 멋지게 위로 살짝 휘어지며 까맣게 빛난다. 대단히 너그럽게 ‘진짜 이러기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마치 차라리 가시관을 쓰고 바이킹의 화장용 장작더미에 올라가고 싶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나는 주저할 것 없이 둘의 음식값을 내주고, 내 몫의 샤오롱바오 찜통을 들고 떠나려 했다. 그때 밸이 우리 부모님께 내가 얼마나 신사적이었는지에 대해 인사를 전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실제로 ‘신사적인’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내가 혼자 산다고 답하자 그녀는 내게 팔짱을 껴 식탁에 주저 앉혔다. 밸은 자기 아들이 뜨거운 우한 건면 무더기를 빠르게 허무는 동안 자신도 빅터 주니어만 없으면 독신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어 그녀는 아무런 동요 없이 덤덤하게 남편인 빅터 시니어가 실종됐으며 아마 죽었을 거라고 말했다. 나 역시 도저히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기이한 상황에 정신이 나가 외로웠던 걸까? 나도 그녀처럼 태연하게 남편이 좋은 곳에 갔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밸의 널찍하고 상냥한 얼굴에서 무언가가 한 꺼풀 벗겨졌다. 그녀는 얘기를 이어 나갔다. 그녀는 연방 요원들에게 남편이 했던 거래에 대해 샅샅이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남편의 거래란 몽골의 광물 채굴권과 가짜 철갑상어알, 어깨에 메는 꽤 현실적인 로켓 추진기에 관한 것으로 뉴저지에 근거를 둔 타슈켄트인들이 그 대상이었다. 연방 요원들은 그 거래가 돈을 벌면서도 서유럽에 있는 잠재적인 고객들을 무장시키려는 ISIS 파생 분파의 작전이라고 생각했다. 이 모든 일이 빅터 시니어가 이번 생에서 갑자기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중대한 일이었고 밸이 미국으로 돌아가 목격자 보호를 받아야 할 만한 심각한 일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거래였다. 법적으로 남편의 무역 회사를 공동 소유하고 있던 밸은 자금 세탁과 탈세 혐의에 더해 사랑하는 빅터를 위탁 가정에 맡겨야 하는 위기까지 마주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밸은 나에게라면 자기 얘기를 믿고 털어놓아도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내 얼굴이 “솔직하고 따뜻하다”면서. 나도 그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나를 믿지 말아야 하는 순간에도 나를 믿는다. 요즘에는 사람들의 생각보다도 더 자주 그런 것 같다. 밸은 빅터 주니어와 함께 카오룽에 사는 친척을 만나고 오는 길이라고 했고, 나는 마카오와 선전에 갔던 일을 편집해 관광객의 여행담처럼 들려주었다. 이어 우리 둘 다 미국 동부 연안의 생기 없는 삶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나는 밸에게 나 역시 뉴저지 출신이고 밸이 남편과 함께 살던 곳에서 약간 남쪽에 있는 카운티에 살았다고 했다. 밸은 내게 이메일 주소를 물었고―나는 더 이상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상황이 그럭저럭 정리되는 대로 보름 안에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어쩌다 이쪽 세계에 오게 됐느냐고 묻지 않았다. 밸다운 행동이었다. 그녀는 질문을 던지고 나의 기본적인 대답을 듣고 나면 다시는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게 내가 단숨에 그녀를 아끼게 된 이유 중 하나다. 밸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삶과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내가 여기 있다는 것, 내가 차지하고 있는 이 공간에 속해 있다는 것, 그 공간 전부가 내 것이며 오직 나만의 것이라는 사실을 전적으로 받아들인다. 내 소견으로는 희귀한 일이다. 생각해 보면,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을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의 일, 당신의 생각, 당신의 바람의 좌표를 물은 뒤 자기들이 보기에 더 매끄럽도록 당신을 다시 줄 맞춰 세움으로써 자신들의 조마조마한 영혼을 진정시키고 싶어 하지 않았던가?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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