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니니의 조각
3개월 뒤.
낯선 사람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어깨에 힘을 빼고 그 사람을 힐끔 쳐다보았다. 키가 큰 남자였다. 그는 당당하고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전시실을 성큼성큼 가로질러 나에게 다가왔다. 그의 눈길은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그의 시선에 강하게 묶였다. 그의 두 눈은 내 몸 전체를 훑은 뒤,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나에게 왔다가, 또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가며 조심스러운 기색도 없이 위아래로 내 키를 가늠했다. 인간은 새로운 것을 보면 흥분한다. 그리고 나는 항상 새로운 그 어떤 것이다. 내 모습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그는 고개를 돌려 우리 앞에 놓인 베르니니Bernini의 조각상을 쳐다봤다.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의 한 장면이다. 이제는 내가 그를 빤히 쳐다볼 차례였다.
그는 말 그대로 설계도와 자를 가지고 정확하게 만들어진 사람 같았다. 턱에서 목까지, 어깨에서 몸통까지, 엉덩이에서 무릎까지, 모든 선이 반듯해서 몸 전체가 의도적으로 설계된 것처럼 보였다. 나는 너무 더워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에게는 고약한 냄새가 났고, 자책의 물줄기 같은 땀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이제 그는 나와 가까워졌는데,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미소를 띤 얼굴이었다. 그의 깔끔한 모습에 나는 기가 죽었다. 한낮에 호텔에서 나온 게 실수였다. 날이 더워서 길바닥이 반짝거렸다. 공기는 마치 사람의 입 속처럼 축축하고 끈적끈적했다. 옅은 안개 속에서 날아오른 먼지가 둥둥 떠다니는 바람에 나는 먼지를 뒤집어썼다.
우리의 뒤쪽에는 보르게세 미술관Galleria Borghese을 찾은 관광객이 가득했다. 관광객들이 밀려들어와 나와 그 낯선 사람의 주위를 울타리처럼 둘러쌌다. 멀리서 봤다면 우리 둘은 유명한 조각 작품을 감상하는 예의바른 사람들로 보였겠지만, 군중의 안쪽에 갇힌 나는 우리 둘의 느리고 음흉한 눈짓, 벌개진 얼굴, 튀어나온 혈관, 웃음과 맥박과 흥분을 고스란히 보고 있었다. 나는 관중들의 낮은 목소리에 붙들리고 그들의 붉은 에너지의 파도에 씻겨나갔다. 우리의 눈은 조각상의 이음새 중 플루토의 손이 페르세포네의 맨다리 사이로 깊숙이 들어간 곳에 한참 머물렀다.
조각상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었다. 줄거리를 대략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지하 세계의 신 플루토가 사랑의 여신 비너스의 성미를 건드린다. 비너스는 복수를 위해 큐피드에게 플루토의 심장에 화살을 쏘아 폭풍 같은 사랑에 빠지게 하라고 지시한다. 마침 세레스 여신의 딸 페르세포네가 근처에서 꽃을 꺾고 있었다. 플루토는 페르세포네를 납치해 그가 다스리는 캄캄하고 외롭고 안전한 세상으로 데려간다.
베르니니는 플루토가 페르세포네를 보고 사랑에 빠진 순간, 그녀를 거칠게 꽉 붙들어 지하 세계로 데려가는 장면을 정지시켜 조각상으로 표현했다. 플루토는 페르세포네의 허벅지에 억센 손을 두르고 있었는데, 베르니니는 바로 그 접촉 부위의 변형된 돌을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부드러워 보이게 조각했다. 대리석으로 조각된 손가락이 대리석 살갗 아래를 파고드는 모습과 공격적으로 묘사된 성적 표현이 불편하긴 했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가 조금 더 내게로 가까이 왔다. 그의 팔꿈치가 내 어깨에 닿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의 몸이 서로 닿은 곳에 더위, 무게, 축축한 나뭇잎 같은 냄새로 하나의 온전한 감각 세계가 만들어졌다. 잠시 후 그의 팔이 내 팔과 아주 살짝 멀어지고, 그 세계는 우리를 분리하는 그 좁은 공간까지 확장되었다. 그 공간을 통해 모험의 가능성이 덜덜 떨며 앞으로 나아갔다.
고운 머릿결과 붉은 살갗이 부풀어올라 내 몸과 그의 몸 사이의 틈을 메웠다. 나의 생각이 나의 피부를 따라 번져갔다. 낯선 사람과 나는 서로의 몸짓을 기대하며 잠깐 참았던 숨을 동시에 들이미셨다. 마치 플루토가 페르세포네를 꽉 잡은 것처럼 그가 나를 꽉 잡는 상상을 했다. 그의 몸이 더 가까이 기울어지고, 내 안에서 싹튼 온기가 꽃을 피운다. 생각은 쾌락을 향했다. 그가 무릎을 꿇고 나의 맨다리에 달라붙은 로마의 먼지를 혀로 핥는 장면이 그려졌다. 바로 그때 그가 몸을 앞으로 확 기울이며 급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마치 그대로 있으면 그가 흡수할 수 있는 베르니니의 아주 작은 조각과, 그가 미술관을 떠나고도 한참 동안 그의 내부에 고이 간직하고 싶은 어떤 것이 떨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그는 다시 발꿈치에 체중을 싣고 서서 조각상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존경을 표현하는 독특한 몸짓이리라. 그러고 나서 그는 나를 남겨두고, 보르게세 미술관의 관람객들 사이를 이리저리 헤치며 걸어갔다. 나는 얼마 동안 혼자 서서 페르세포네의 몸에 조각칼로 올록볼록하게 새겨진 소름을 응시했다.
그 신화를 묘사한 다른 작품들에서는 화가들이 여주인공을 더 연약하게 표현했다. 뒤러의 동판화에는 프로세피네베르니니에게는 프로세르피나였고, 그리스인들에게는 페르세포네였다를 어지럽게 돌아가는 손발 달린 풍차 바퀴처럼 묘사했다. 바퀴의 중심점에 해당하는 그녀의 양 가슴은 마치 튀어나온 두 눈처럼 우스꽝스럽게 부풀어올라 있었다. 알레산드로 알로리Alessandro Allori는 페르세포네를 마치 자기가 납치당하는 것을 따분하게 느끼는 사람처럼 유순하고 밋밋하게 그렸다. 루벤스의 작품 속에서는 빠르게 내달리는 플루토의 전차 바깥으로 페르세포네의 등이 뒤로 꺾여 있었다. 그 순간의 강렬함 속에 그녀의 의지는 간 곳 없었다. 렘브란트가 그린 페르세포네는 멍한 상태로 플루토의 얼굴을 힘없이 움켜잡고 있었다. 테오도르 반 툴덴Theodoor Van Thulden의 작품 속에서 페르세포네는 깜짝 놀라 고개를 기울이고 두 팔을 하늘로 치켜든 모습이었다. 마치 더 힘센 신에게 어서 그녀를 운명으로부터 구해달라고 호소하는 듯했다.
하지만 베르니니의 프로세피네는 살아 있었다. 그녀의 몸은 강인하고, 그녀는 신의 의지에 반해 몸을 힘껏 비틀며 빠져 나오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녀는 손바닥의 가장 단단한 부분으로 플루토의 뺨을 가격했다. 플루토는 얼굴을 찡그렸다. 베르니니는 플루토를 멍하고 심란해하며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남겨놓아, 큐피드의 화살이 그의 주체성도 함께 앗아갔음을 상기시켰다. 오비디우스의 신화는 두 가지 강요된 변신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베르니니는 움직이고 있는 두 사람을 보여줬다.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에 맞서려고 헛되이 노력하고 있다. 그건 훌륭한 조각 작품이었고, 그 전시실 안에서 가장 훌륭했으며, 상처 입은 사람들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플루토는 비너스에게 상처를 주었고, 비너스는 플루토를 다치게 했고, 플루토는 페르세포네를 다치게 했다. 이렇게 순환하는 상처는 페르세포네의 허벅지에, 그녀의 대리석 살갗이 플루토의 손아귀에 잡힌 곳에 있었다. 그건 감각을 마비시키는 경험이었다. 나는 공포, 혐오, 욕망으로 정신이 혼미해져서 얼떨떨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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