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린 고백
불을 처음 피웠을 때
오래 비어 있던 난로의 문을 열고
나무껍질과 마른 잔가지를 바닥에 놓고
지난여름을 막 지내고 들여놓은 장작을 넣었네
겨울의 첫 불을 피웠네
오래전 열반에 들어 보이지 않던 불을 데려왔네
적멸의 얼굴을 보려고
다시 춤추게 하려고
고백하거니와
잠이 깬 불길이 일어섰을 때
난로 안에서 새가 무쇠 벽에 부딪던 소리
열지 못한 문 너머 무서웠던 비행
사라져버린 일은 너무 많다
어제도 막 꺼진 불의 장례에 갔지
내가 집어넣어 태워버린 기억
겨우내 노변에서 한 장씩 한 장씩 불사른 지난 꿈
언제 다시 난로 안에 둥지를 틀었나
불길과 함께 잠시 춤추다 사라진 불새
그을린 주전자는 난로 이마 위로
끓는 헛소리를 울컥울컥 쏟고
언제 내 안에 깃들였었나
내려왔던 좁은 연통으로 다시
비명도 없이 날아 올라간 검은 새
재난처럼 앉아 있다가
두 개비의 장작과 함께 꺼졌던 밤
그 겨울의 첫 불을 다시 만날 때
나도 그리로 들어가리라
새를 꺼내다
팔이 타서 검게 그을린다 해도
빛의 그물질
한겨울 바다는 한가롭고 잔잔해
섬들을 네가 손가락으로 하나씩 하나씩 누르면
어떤 노래가 태어날까
작은 고기만 한 고깃배 포구로 들어가네
뒷전에 이는 잔물결 위로
햇빛은 빠진 자리 하나 없이 잘 앉아
그 배는 반짝이는 빛의 그물을 끌고 가네
밀물을 아침으로 데려가네
나도 저 그물에 담기고 싶네
겨울 거미줄에 걸린 마른 잎처럼
아침밥 안치는 냄새를 따라 포구로 끌려가
사랑으로 다시 지어지고 싶네
아궁이 안에 나란히 누운 두 개비의 장작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길같이
물마루와 물마루 사이로 해는 다시 떠오르고
첫날의 첫 아침
걸어놓은 솥에 들어가 끓고 싶네
모든 아침은 새날이고
세파에 잡힌 잔주름도 윤슬처럼 반짝이고
세상에 낡은 일은 하나도 없어
사랑도 늘 새로 지은 밥이라면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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