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고소득층 백인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가 저소득층 소수인종 아이들이 많은 학교보다 좋은 학교다.” 미국에서는 부유한 아이들이 많은 학교가 학생들의 교육적 발달과 성장에 더욱 도움이 된다는 이런 믿음이 지배적이다이 책에서 나는 학교 안팎의 ‘불평등’을 다룰 것이다. 이를 사실이라 여기는 학부모는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거나 ‘좋은’ 공립학교가 있는 부자 학군으로 이사를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학부모들은 학교 개혁을 지지하며 자녀를 차터 스쿨정부가 재원을 제공하지만, 운영 방식에는 간섭하지 않는 일종의 자율형 공립학교―옮긴이 주에 보낸다. 학교와 불평등에 관한 이러한 이야기는 워낙 흔한 문화적 가설이 되는 바람에, 별다른 증거가 없어도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러한 전제가 틀렸다면 어떨까? 가난한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나 부유한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나 배우는 것에 별 차이가 없다면 말이다. 사람들이 학교가 교육 불평등을 만들어 낸다는 전제를 당연한 듯 말하는 이유는 학교 간 교육 자원의 차이가 우리 눈에 직접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컴퓨터실이 마련된 신설 학교에 다니는 백인 아이들과, 시설이 부족한 낡은 학교에 다니는 흑인 아이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언론에도 부유한 지역의 학교가 가난한 지역 학교에 비해 국어 및 수학 점수가 높다는 이야기가 자주 보도된다. 그런데도 좋은 학군에 대한 우리 생각이 오해라고 할 수 있을까? 자녀를 ‘좋은’ 학교에 다니게 하려고 부모들이 쏟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는 그저 낭비일 뿐일까?
이 책은 학교와 불평등에 대한 기존 증거를 다시 살펴보고, 새로운 증거를 바탕으로 학교와 불평등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기존 이야기가 다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부유한 지역의 학교와 가난한 지역의 학교 간 교육 자원의 격차가 상당하다는 점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학교가 불평등의 주범이란 주장에 동의하기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 몇 가지 경험적 양상들이 있다.
부유한 학생이 많은 학교가 가난한 학생이 많은 학교에 비해 훨씬 잘 가르치는 것이 사실이라면, 부유한 학생과 가난한 학생 간 성취도 격차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기 중에 더 벌어져야 한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학교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학교에 면죄부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취도 격차가 발생하는 시점과 이유를 정확히 알아내기 위해서다. 학업성취도 격차를 줄이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내가 학교가 불평등의 주범이라는 전제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1992년 어느 봄날 오후부터다. 나는 인디애나대학교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열심히 쓰고 있었다. 지도교수였던 브라이언 파월Brian Powell 교수가 존스홉킨스대학교의 도리스 엔트위슬Doris Entwisle과 칼 알렉산더Karl Alenxander가 쓴 「여름방학 동안 뒤처지는 성적Summer Setback」이란 제목의 논문을 권했다. 무언가를 읽고 나서 세상을 보는 눈이 뒤바뀐 경험이 있는가? 그날 이후 그 논문은 이후 25년 가까이 내 지적 여정의 이정표가 되었다. 그 논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학교는 부유한 아이들보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더 도움이 된다. 학교는 가난한 아이들이 겪는 불리함을 보완하는compensatory 역할을 한다.
그 논문이 보여준 바는 간단했다. 볼티모어의 고소득층 아이들과 저소득층 아이들 간 수학 실력 격차는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 여름방학 동안에 크게 벌어졌지만 학기 중에는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여름방학 동안 성취도 격차가 벌어지는 양상은 사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고학력 부모를 둔 부유한 아이들은 방학 동안에도 부모가 건강하게 보살피며 도서관도 다니고, 안정적인 가정환경을 만끽하면서 학습을 꾸준히 이어나가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것은 학기 중의 결과였다. 학기 중에는 저소득층 자녀나 고소득층 자녀 모두 똑같은 학습 성장을 보였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가정환경도 열악하고, 다니는 학교도 열악한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논문을 읽고 난 뒤 내 생각이 바로 바뀌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학교가 불평등을 만드는 주범이라 믿었다. 볼티모어 연구에 뭔가 잘못된 것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엔트위슬과 알렉산더의 주장이 단번에 깨달음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ubler-Ross가 말한 슬픔의 수용 단계부정→분노→절충→우울→수용처럼 학교에 대한 내 생각은 점진적으로 변했다. 논문을 읽은 직후에는 부정과 분노 사이 어디쯤 있었다. 어쩌면 약간의 타협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나는 학교와 불평등에 대한 기존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책은 내가 그 주장의 수용 단계에까지 도달한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학교가 불평등의 주범이라는 시각은 학계의 주류 관점이었다. 내 입장이 바뀌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다.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는 동안 나는 부유한 아이들이 가난한 아이들에 비해 더 좋은 학교의 혜택을 누린다는 점을 강조하는 연구에 익숙해져 있었다. 예를 들어, 조너선 코졸Jonathan Kozol의 『야만적 불평등Savage inequality』은 부유한 동네의 학교와 가난한 동네의 학교 간에 존재하는 교육 자원의 불평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부유한 집 아이들은 더 안전한 학교 환경 속에서 과외활동에도 더 활발히 참여하고, 뛰어난 역량을 갖춘 교사로부터 최신 교육과정을 접한다. 가난한 흑인 아이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는 자원은 제한되어 있는 반면 학생은 너무 많다. 코졸은 인종에 따라 학교가 어떻게 분리되어 있는지, 가난한 집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건물이 얼마나 낙후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을 읽고도 느껴지는 바가 별로 없다면 〈미국 학교의 아이들Children in America’s Schools〉이란 영화를 보라. 오하이오주의 부자 학군인 더블린에서 학생들이 누리는 첨단 시설과 남동부 애팔래치아 지역의 학교에서 컴퓨터조차 부족한 상황 간의 극명한 대비를 볼 수 있다.
같은 학교 내에서도 잘사는 집 학생이 더 유리하다.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은 실력이 부족해도 우수반이나 대학교 진학반에 배치될 가능성이 더 크다. 교사들도 열악한 가족 배경의 아이들에 비해 부유한 아이들에게 더 높은 교육적 기대를 한다. 이런 결과를 보여주는 연구를 보다 보면 학교의 질이 매우 중요하다는 기존 통설이 맞는 듯하다. 부유한 학생들이 가난한 학생들보다 훨씬 더 좋은 학교 교육을 누리고 있다. 학교는 교육 불평등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메커니즘인 것이다. 아무래도 볼티모어 연구 결과는 이상하다.
그러던 중 2000년대 초반 연방 교육부에서 수집한 「초기 아동기 종단 연구ECLS-K:1998」 자료가 공개되었다ECLS-K 자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부록 A〉 참조. 이는 볼티모어 연구 결과를 엄밀한 방식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 새로운 자료였다. 미국 전역의 학생을 대표하는 전국 수준 자료가 처음 공개된 것은 아니었지만 ECLS-K 자료에는 아주 독특한 특징이 있었다. 기존 자료는 학생들을 1~2년에 한 번씩 조사했지만 ECLS-K의 경우 매년 두 번씩, 학기가 시작하는 시점과 학기가 끝나는 시점에 조사했다.
이와 같은 자료 수집 방식은 학교 효과를 연구하고자 하는 학자들에게 귀한 기회를 제공한다. 한 학년이 끝날 때 학생들의 성적을 측정하고, 여름방학이 지난 후 새 학년이 시작할 때 한 번 더 측정하면 학생들이 여름방학 동안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 나오는 기간과 학교에 나오지 않는 기간에 불평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전국 표본 자료로 처음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과연 볼티모어 연구 결과가 전국에서도 똑같이 재현될까?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연구팀은 ‘불평등이 학교에 다니는 중에 더 빠르게 확대될까, 아니면 학교에 다니지 않을 때 더 빠르게 확대될까’라는 큰 질문에 집중하기로 했다. 학교가 어떻게 불평등을 강화시키고 있는지 보여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볼티모어 연구 결과를 반박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던 중에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전국 표본 자료인 ECLS-K 자료에서도 볼티모어 연구와 거의 유사한 결과가 발견된 것이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아이들 사이 학습 능력 차이가 학기 중보다 방학동안 더욱 빠르게 커졌다. 볼티모어 연구 결과가 반박되기는커녕 오히려 전국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확인한 셈이었다.
우리는 2004년에 이 연구 결과를 「학교는 위대한 평등 촉진자일까?Are schools the great equalizer?」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남아 있었다.
성취도 격차가 학기 중에 더 커지는 것이 아니라면, 부유한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가 가난한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에 비해 정말 더 좋다고 할 수 있을까? 부유한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가 더 좋다는 믿음과 달리, 우리의 계절 비교seasonal comparisons 연구여름방학 전후에 학생들의 교육적 결과를 조사하여 학기 중과 방학 기간을 비교한 연구―옮긴이 주는 그렇지 않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적어도 아이들의 국어와 수학 점수에서는 그랬다. 이를 엄밀히 확인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학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가정환경과 거주지역 효과를 학교 효과와 세심하게 분리해 따로 살펴봐야 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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