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사는 여자
가혜 이야기
― 이재임
이 글의 주인공은 주민등록증이 없다. 그녀는 1959년생, 이가혜라 말한다. 화장실에 터를 잡은 대가로 공원과 화장실을 쓸고 닦는다. 밤이면 문이 잠기지 않는 화장실에 누워 자주 잠을 설친다. 끌 수 없는 천장 등을 바라보며 전쟁을 떠올린다. 이따금 자신에게만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다. 2021년 봄부터 가을에 걸쳐 가혜를 만났다.
가혜는요, 제가 지은 이름이에요. 오래됐어요. 십 년 넘었죠. 제가 지은 제 이름들 중에서는 제일 나아요. 누가 안 훔쳐가는 거고요.
저는요,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자랐어요. 2007년 2월 28일부터 제가 바깥 생활을 시작했어요. 문래동 홈플러스 앞에서요. 추울 때 지하도에서 박스 깔고 자기도 하고요. 근데 지하도도 하나도 안 따뜻해. 들어가나 밖에 나오나 똑같아요.
을지로 입구에도 한 삼 년 있었어요. 거기 지하도도 노숙자실이거든요. 근데 역무실 직원들이 못 있게 해요. 왜냐면요 백화점에서 사진들 붙여 놓잖아요. 뭐 화장품 모델, 옷 입고 찍은 모델들이요. 기둥에 항상 바꿔 가면서 붙어 있어요. 그러니까 그 기둥 앞에 있지 말라고 그러더라고요. 어이구…… 잠자리를 또 어디 가서 잡어?
여기 공원으로 2015년 봄에 왔어요. 낮에는 여기 있다가 저녁에는 종각역으로 갔어요. 거기도 지하도로 들어가서 자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그 사람들하고 안면도 있고 하니까 저더러 거기서 자라고도 말해 줘요. 그러다가 2018년인가…… 아마 18년일 거예요. 8월 말 9월 초쯤 가을이 돼서 거기서 나왔어요. 종각역 거기서도 노숙인들을 재울 수가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경비가 전부 다 내보내요. 그 지하도 입구로 나와서 자리 깔고 몇 명이랑 자다가 저 혼자 이 공원으로 아주 옮겨서 아직까지 있죠.
제가 시간을 어떻게 이렇게 잘 기억하냐면요, 저는 항상 주머니에 시계를 몇 개 넣고 다녀요. 책상 위에 놓는 조그만 카렌다도 항상 갖고 있어요. 또 『벼룩신문』 『교차로』 거기 보면 날짜 나오잖아요. 오늘이 수요일이죠? (오늘은 일요일이에요.) 아 참, 오늘이 일요일이죠. 일요일은 저기 명동성당에서 도시락 준다는 말이 있던데. 서울역도 밥이 나오지만 걸어서 가기엔 멀죠. 잘 안 가요. 옛날에 가방 메고 돌아다닐 때는 그런 쪽으로 뺑 돌았어요. 아이구 근데 계속 서있게 해서 어떡해요. 다리 아프시죠. 여기가 화장실이라 어디 앉으라고 할 수가 없어요. 안으로 들어갈래요?
화장실에 사는 여자가 있다고 했다.
“공원 화장실에서 청소해 주면서 사는 여자가 있어요. 거기 오래 살았을 걸. 나도 본 지 오래됐는데……”
아랫마을에서 함께 활동하는 홈리스야학 학생회장 서가숙이 먼저 가혜의 이야기를 전했다.
금요일마다 서울역 일대의 거리 홈리스를 만나는 아웃리치 활동을 해온 나와 동료들은 여성 홈리스가 너무 보이지 않는다고 곧잘 말하곤 했다. 서울역은 노숙인종합지원센터 등 홈리스 지원 체계가 밀집된 공간이다. 그 공간의 다수를 차지하는 남성 홈리스와는 비교적 꾸준히 관계를 이어 갈 수 있었던 반면, 여성 홈리스는 그 수가 적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금세 거처를 옮기는 탓에 좀처럼 관계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듣게 된 여성 홈리스의 이야기는 반가웠다. 서가숙의 소개로 가혜와 만날 수 있었다. 더운 날에는 캔맥주를, 쌀쌀할 때는 따뜻하게 데운 두유를 나눠 마시며 가혜와 이야기를 나눴다.
2021년 8월, □□공원 화장실을 세 번째로 찾았을 때는 여름 장마가 한창이었다. 가혜는 세면대의 물기를 닦고 있었다. 그간의 안부를 나누며 화장실 세면대 앞을 서성이는 동안 어느새 대걸레를 쥔 가혜는 내 뒤를 쫓아 발자국이 찍히는 대로 얼른 자국을 지워 나갔다. 가혜의 정수리 근처에서 대걸레 손잡이가 부지런히 움직였다. 수다가 길어질 기미가 보였는지 자신이 살고 있는 장애인 화장실 칸으로 나를 들였다. 비에 젖은 신발로 들어가기가 뭐해 문가에서 주춤거리는 나를 가혜는 방이 아니라서 괜찮다며 변기 앞에 깔린 박스에 앉혔다. 사실 어디나 드러누워도 될 만큼 깨끗했지만 가혜의 목소리에는 못내 미안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 변기 위에는 여행 가방 세 개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바닥에는 비닐에 쌓인 작은 짐들이 가지런히 정렬해 있었다. 뒤이어 들어온 가혜는 남은 박스 몇 개를 단단히 겹쳐 세워 문이 열리지 않도록 고정했다. 화장실에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렀다.
음악은 밤에는 꺼졌다가 새벽 5시 되면 또 나와요. 그러면 저도 일어나요. 저 위에 불이 좀 밝죠. 24시 켜있어요. 공동화장실이니까 문도 못 닫고 불도 못 끄게 법적으로 정해져 있대요.
드나드는 사람은 수도 없죠. 지나가던 사람들도 화장실 보면 아무 때나 들어가서 볼일 보는 거고. 저는 밤 10시 되면 청소 마치고 들어와요. 잠을 못 이룰 때도 많아요. 밖이 시끄러워서일 때도 있지만 잠이 안 와서요. 새벽에 일어나면 나와야 되는데요, 앞에 경찰서 형사분들이 막아요. 너무 일찍 나오면 위험하다고. 괜히 붙잡혀서 당하지 말고 한 5시 반 되면 나오라고 그래요. 그 시간 되면 가로등이 다 나가고 날이 밝아요. 양치하고 세수하고 그러면 날이 훤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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