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언어
태초에 말이 있었다. 1980년대나 1990년대 또는 200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에나멜가죽 구두나 닌자 거북이 티셔츠를 입기 훨씬 전에 가장 먼저 말부터 배웠다. 각자의 ‘모국어’ 말이다. 그게 나에겐 프랑스어였다. 어머니와 남동생을 제외하고는 프랑스어로 함께 대화할 사람이 없었기에, 학교에 들어간 뒤 나의 모국어는 독일에서 차츰 쓰임새가 월등히 많아진 독일어로 바뀌었다. 언어는 음절과 낱말의 배열 이상의 무엇이다. 언어에는 우리가 사회 집단으로서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개념들이 코드처럼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항상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를 형성하는 개념들이다. 그중에서 나는 몇 가지 코드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시작은 이분법이다.
말로 갈라진 피구 팀
여와 남의 구분은 유럽 언어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서로 상반된 두 범주라는 개념은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젠더 정체성은 우리가 주류 사회에 설치해놓은 이 사회적 서랍 사이에도 존재하고 그 바깥에도 존재한다.
먼저 성sex과 젠더gender를, 생물학과 사회학을 구별해야 한다. 성과 젠더는 둘 다 가부장적 디자인에서 볼 수 있지만 언어에서 중요한 건 무엇보다 젠더다. 즉, 내가, 우리 이웃이, 교육자가, 패션 디자이너가, 여자와 남자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특성이 어느 성별에 귀속되는가에 대한 사회적 구성 개념이 젠더다. 젠더가 구성 개념이라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그 결과가 현실에 나타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 그 반대다. 우리의 사고가 만들어 낸 구성물은 간단히 철저할 수 있는 기념비 같은 석조 조형물보다 훨씬 견고하다.
언어와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어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언어적 예를 들어보자. 약 100년 전에 부바 & 키키Bouba & Kiki 실험이라는 것이 나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연구에 따라서는 최대 98퍼센트가 자신이 속한 문화와 관계없이 두 임의의 도형을 부바와 키키라는 이름과 연결 지었다. 몇몇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부바와 키키에 ‘편안하다’거나 ‘재미있다’와 같은 일정한 속성을 할당했는데 이것도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다.
이것이 여자와 남자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부바 & 키키 실험에서와 비슷하게 무엇이 여성적이고 무엇이 남성적인지에 대한 생각도 완전히 자의적이다. 그런데도 여자 또는 남자와 관련한 특성을 두뇌 속 어느 서랍에 분류해 넣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커다란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 부바 & 키키 실험에서는 도형 명명이 아무런 파급 효과를 낳지 않았다. 부바나 키키 어느 누구도 관리직에 지원하지 않았고 그 이름을 딴 정류장 명칭도 없었다. 이와 달리 젠더 특성의 언어적 귀속은 우리의 상호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좋아하는 인터뷰 팟캐스트 중 하나인 《더 라스트 보헤미안스》The Last Bohemians의 어느 회차에서 알리 가디너가 페미니스트 영화 제작자인 비비언 딕을 인터뷰했다. 딕이 젊은 시절이던 1970년대 후반에 아일랜드에서 뉴욕에서 이주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가디너가 감탄하며 딕에게 말했다. “배짱이 있으니 그렇게 하셨죠.”[원문은 “It takes balls to do that.”이다. ‘ball’은 속어로 고환을 뜻한다. -역주] 비비언 딕은 이 관용구에 반응하지 않았다. 흠….
나는 흥미진진하고 색다른 삶을 살기 위한 기본 장비에 음낭이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연상 작용을 연마하는 것이 왜 가부장제에 유리한지는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이건 문화의 문제다. 누가 대단히 용감하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많은 언어에서 고환을 지칭하는 단어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독일어에서는 ‘Eier in der Hose haben’바지 속에 알이 있다로, 프랑스어에서는 ‘avoir des couilles’고환이 달렸다로 표현한다. 1932년에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그의 유명 소설 『오후의 죽음』에서 투우사의 용감성을 묘사하기 위해 고환을 뜻하는 말 ‘cojones’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투우는 스페인과 동일시되므로 용감한 스페인 고환이라는 말이니 기발하긴 하다. 남자의 생식기는 서구 문화에서 이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의협심과 용감성의 원천으로 통했다. 16세기 영국에서는 음낭에 정자만이 아니라 남자를 남자로 만드는 특성도 들어 있지 않은지를 놓고 철학적으로 논의했다. 육체적인 강인함과 남성적인 미덕이 편리하게 작은 주머니에 싸여 페니스 아래 두 다리 사이에 달려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고대 그리스인들은 고환의 크기가 당사자의 용기를 가리키는 지표인지에 대해 의견이 갈렸던 것 같다. 용기를 뜻하는 말로 가장 많이 사용된 ‘안드리아’andria라는 단어는 남자를 의미하는 ‘아네르’anēr에서 파생되었다. 또한 고대 그리스 희극에는 정력을 상징하는 거대한 고환이 있는 인물과, 허약함을 상징하는 고환이 없는 인물이 등장한다. 다른 한편으론 지나치게 큰 고환이 원인일 수 있는 불량한 남성성의 발현에 대해서도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자제력 부족과 음탕하고 위험한 행동거지가 그런 것들이다. 이런 까닭에 그리스 미술에서는 많은 영웅들의 고환이 작은 육두구 크기4~6센티미터로 묘사되어 있다. 페니스 크기에 대해서도 같은 관점에서 말할 수 있다. 영웅이 고결할수록 그의 생식기는 작다. “고환은 용감함을 뜻한다”라는 도식은 너무 자극적이어서 그런 표현을 쓰다 보면 자칫 실수하기 쉽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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