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건조한 기호와 촉촉한 글자
생각을 생각하라
현대는 정보의 시대다. 단순한 ‘정보의 시대’가 아니라 ‘정보 과잉의 시대’이다. 현대인은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러니 정보가 없어 대응하지 못한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넘치는 정보 가운데 정확하고 체계적인 정보를 골라내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다.
사회를 멍들게 만드는 가짜뉴스가 넘친다. 과잉 정보에는 엄청나게 많은 쓰레기 정보junk information/junkformation가 뒤섞여 있다. ‘익스포메이션exformation’이라는 신조어가 주목받는 건 그 때문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폴 케네디Paul M. Kennedy나 미국의 전 부통령 앨 고어Albert Arnold Gore Jr. 등이 자주 사용하면서 일반화된 이 말은 정보를 뜻하는 ‘인포메이션information을 변형한 신조어다. 인포메이션은 ’in’과 ‘form’, 즉 ‘안으로 들어가 만든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이처럼 기존의 정보는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와 형성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보의 옳고 그름을 가려낼 수 있는지가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쓰레기 정보를 ‘밖으로ex’ 내보낼 수 있는 판단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이 당면한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쓰레기 정보를 분별하는 데 교사나 부모 또는 상사 등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최종 판단은 개개인의 몫이다. 그러한 분별이 어디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주목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현시대는 전문적 지식과 여러 분야에 대한 일반적 지식을 함께, 즉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를 동시에 요구한다. 지식의 단순한 소유와 운용은 예전의 힘을 잃었다. 그것을 활용하는 법을 깨우치되, 더 나아가 이미 있는 것들을 내 안에서 새로운 가치로 재창조해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전문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갖추도록 요구하는 것은 정보가 충만한 상황에서사실상 범람하는 상태에서 필요한 것들을 명확하게 골라내고 융합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한다. 바로 ‘생각’이다. 균형 잡히고 창의적인 생각의 다양성은 바로 그러한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생산적 주체이자 동시에 대상이다.
인간이 생각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생각한다. 모든 것에 반응하고 대처하는 기본 요소가 생각이다. 문제는 그 생각을 넘어서는 생각, 즉 ‘생각을 생각하는’ 능력을 얼마만큼 갖추고 있느냐다. 왜 ‘생각을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한가? 최상의 콘텐츠는 결국 탐구, 직관, 영감, 통찰, 상상력 등이 깊이를 갖추며 다양한 경우의 수로 융합되고, 이를 주체적 자아로 수렴시켜 창조할 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른바 ‘6i’탐구investigation, 직관intuition, 영감inspiration, 통찰insight, 상상imagination, 나I/individual가 다양한 방식으로 엮어 기존의 정보와 지식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그 이상의 생각, 즉 ‘생각에 대한 생각’일 수밖에 없다.
기본적인 지식과 정보를 무시하거나 경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날것의 지식과 정보 자체는 경쟁력이 없다. 섬세한 사유와 다양한 감각, 풍부한 감정이 가미되는 가공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생각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창의력과 상상력은 기존의 것들을 무시하거나 부정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이해와 재구성 또는 재창조로부터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생각은 일차적으로 기능적 수월성이 아니라 인간사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추구해야 한다.
지식과 경험은 상상력의 토대이며 재료가 된다. 상상력은 공상이 아니다. 지식과 경험을 여러 가지로 묶고 얽고 짜볼 수 있을 때 생겨난다. 그것들이 어우러져 새로운 의미와 드러나지 않았던 가치를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상력은 생각을 물질로 구현하는 잠재적 힘이 있으며, 지식과 경험의 합을 몇 배로 키워주는 놀라운 촉매다. 그러나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상상력을 불어넣는 것은 생각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생각을 생각’할 때 비로소 싹튼다. 그런 생각의 토양에 다양한 간접경험들과 지식들이 쌓이고 그것들이 내 삶을 통해, 내 지식의 진보를 통해 결합되고 화학적으로 반응하면서 새로운 가치와 인식의 지평을 만들고 펼쳐낸다.
창의력의 절대조건은 완전한 자유다. 그리고 자유는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에게 더 많이 보장된다. 상상력은 개인과 사회에 무한한 자유를 제공하고, 자유는 새로운 창조를 이끈다. ‘생각을 생각’하는 것은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일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찾아내야 하는 일인데, 이는 자유와 자율성이 개인에게 보장되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따라서 주체적 자아를 찾아내고 완성시킬 내재적 동인에 대한 능동적 발견이 갈수록 요구되고 있다. 우리의 모든 논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올바른 판단력은 ‘생각을 생각’하는 주체적 사유의 과정을 거칠 때만 가능하다. 무한한 콘텐츠를 생산해낼 수 있는 상상력 또한 ‘생각에 대한 생각’을 토대로 했을 때 강화·증대될 수 있다. 판단력은 ‘생각을 생각’하는 힘의 발현이다. 정보가 범람하는 시기일수록 객관적이고 명확한 판단력이 절대적이다. 판단력이 없으면 쓰레기 정보의 홍수에 휩쓸려 그릇된 판단을 내리게 될 뿐 아니라, 또 다른 쓰레기 정보나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암적 존재가 될 수 있다. 올바른 판단력은 늘 필요한 법이지만, 특히 오늘날처럼 과잉 정보와 그릇되고 왜곡된 뉴스에 오염될 때 더 필수적이다. 왜곡과 오염 속에서 판단력 없이 멋진 콘텐츠가 싹트기를 꿈꾸는 건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생각을 생각’하는 것이 답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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