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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보호〉라는 이름의 카멜레온
녹색당의 무역사성
1986년 4월 22일 독일 녹색당에서 비상 회의가 열렸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벌어지기 나흘 전의 일이다. 그러나 회의 안건은 환경 문제가 아니라, 반유대인주의였다. 이에 울리히 피셔Ulrich Fischer: 1942년생의 독일 정치가. 녹색당 의원으로 활약하고 있다.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라고 하면서, 〈녹색당에는 역사가 없다〉고 발언했다. 이런 식으로 역사를 동원한 공격에 녹색당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며, 심각한 정치적 약점이 아닐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울리히 린제Ulrich Linse: 1939년생의 독일 역사학자. 현대사 전공으로 무정부주의, 청소년운동, 신종교, 환경 운동 등을 중점적으로 연구한 학자다. 역시 자신이 쓴 책 『생태 평화와 무정부주의. 독일의 생태 운동 역사』1986의 서두를 다음과 같은 확인으로 장식했다. 〈역사가 없다는 것이야말로 독일에서 새로운 사회 운동이 갖는 두드러진 특징이다.〉 혹자는 체르노빌이야말로 녹색당에게 최고의 기회를 선사하리라는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녹색당의 역사적 뿌리가 반反원자력 운동에 있음을 상기시킬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모든 사람이 원자력에 반대했다. 체르노빌이라는 뿌리는 정치적 정체성 확보에 더는 쓸모없는 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실제 뿌리를 찾아 더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러나 어디로? 녹색당이 역사를 끌어대지 못하는 게 역사를 공부하지 않은 게으름 때문은 아니다. 여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아무리 불철주야 연구하는 역사학자라 할지라도 당시 녹색당에게는 별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오늘날까지도 환경 운동의 역사가 무엇이고, 그 뿌리는 어디에 있는지 하는 물음을 놓고 온갖 주장이 횡행할 따름이다. 심지어 어떤 〈역사의 가르침〉이 정말 있을까 하는 물음은 애매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덩그러니 남는다.
환경 운동의 반대편에서 환경 운동의 발생을 두고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을 퍼뜨리는 일은 바로 이런 상황을 악용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혹자는 나치스에 가까운 반동적 낭만주의가 환경 운동의 온상이라 을러댔으며, 또 다른 이는 공산주의의 전체주의가 다른 수단을 동원해 연명하려는 꼼수가 환경 운동이라고 힐난했다. 공산주의 운운하는 주장은 특히 미국의 과격한 〈안티 환경 보호주의자〉의 입에서 나왔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유럽의 환경 운동에 정말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체코의 대통령 바츨라프 클라우스Václav Klaus: 1941년생의 체코 정치인. 2003년부터 체코의 제2대 대통령으로 재임중이다.도 책 『녹색 사슬에 묶인 푸른 별Blauer Planet in grünen Fesseln』2007에서 아주 기묘한 드라마를 선보인다. 어떻게 해서 국가의 최고 수반이, 그것도 평소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인품을 자랑하는 사람이 그처럼 말도 안 되는 선동을 할 수 있을까? 마이클 크라이튼Michael Crichton: 1942~2008. 미국의 작가이자 영화 프로듀서. 영화 「쥬라기 공원」(1991)의 원작을 썼다.의 공상과학소설 『공포의 제국State of Fear』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대통령께서는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생태 당파〉라는 괴기한 그림을 그려 내기에 이르렀다. 이 생태 당파는 몰락한 소비에트제국을 대신해 우리가 새롭게 획득한 자유를 위협할 거라나. 대통령은 원자력 로비의 박수갈채를 받느라 넋이 나간 나머지, 환경 운동의 다양함과 분열을, 민주주의의 기초 원리에 충실한 자세를, 또한 기후 온난화가 환경 운동계에 커다란 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던 모양이다. 이런 종류의 책이 나왔던 이유는 간단하다. 일반 대중이 환경 운동의 역사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총체적 무지가 각양각색으로 요리되는 것이다.
도대체 각종 관련 단체의 잡탕이 아닌 일관된 맥락을 갖는 운동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새로운 사회 운동〉의 이론가들은 정당의 설립이, 곧 의회 정치에 참여하는 게 이 운동의 본질과 충돌한다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녹색당원들은 운동의 뿌리가 어디 있는지 그 역사적 고찰을 해보는 즉시, 그들이 벌이는 정당 프로젝트의 무의미함을 깨달아야만 하지 않을까? 실제로 그 의미를 두고 많은 사람은 고민을 거듭한다. 그리고 역사의 뿌리를 찾아 더욱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결국 나치스의 혈연과 지연 이데올로기에 빠지는 게 아닐까?
이런 물음을 살펴보면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생각의 벽이 있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도 않다. 그러나 동시에 역사의 유령이 곳곳에서 떠도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맹목적인 향토애랄지 자연 사랑 또는 고목 숭배 같은 지역 농민의 전통 의식은 일종의 고정 관념으로 언제나 나치스의 색채로 오염되기 마련이다. 앞서 언급한 비상 회의의 말미에서 요아힘 뮐러Joachim Müller: 1947년생의 독일 정치가. 녹색당 의원이며 출판업자다.라는 의원은 자신의 〈경악스러웠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농민 대회에 내걸린 녹색 플래카드를 처음으로 보았을 때였다. 독일 참나무가 남근이 무슨 상징인가!처럼 플래카드를 가로지르며 우뚝 서 있는 것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이런 공포는 정당한 것일까? 아니면 왜곡된 역사관이 녹색당 정치가로 하여금 환경 의식의 생생한 뿌리를 뽑아내게 했을까?
환경 운동에서 역사의식의 결여는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도회지 서식지 프로그램Urban Habitat Program〉의 공동 발기인인 칼 앤서니Carl Anthony: 1939년생의 미국 건축가이자 사회정의 운동가. 〈도회지 서식 프로그램〉이라는 운동을 창시하고 이끌었다.는 2005년 〈오늘날의 환경 정의 운동Environmental-Justice-Movement〉을 두고 〈역사적 맥락의 결여〉에 시달렸다고 진단했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의 환경 운동은 옛날에 미국 도시에서 약자들의 더 나은 생활 환경을 위해 싸운 투사들을 전혀 모른다. 더 나아가 현재의 〈주류 환경 보호주의〉의 영향 아래 〈환경〉이라는 개념은 오로지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 환경〉만을 뜻할 뿐, 천연자원의 문제는 담아내지 못하는 너무 좁은 게 되고 말았다는 주장이다. 하필 미국의 환경 운동에서 역사의식의 결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일단 놀라운 일이다. 미국 환경 운동은 헨리 소로Henry Thoreau: 1817~1862. 미국의 수필가이자 사상가다. 순수한 자연생활을 예찬한 글을 썼다.에서 존 뮤어John Muir: 1838~1914. 스코틀랜드 출신의 미국 이주민으로, 자연 과학자이자 탐험가, 작가, 발명가, 지리학자로 활동한 인물. 일찍부터 미국의 야생을 보호할 것을 주장했으며, 자연 탐사를 벌이다가 환경 보호 운동가로 변신했다.와 앨도 레오폴드Aldo Leopold: 1887~1948. 『모래땅의 사계A Sand County Almanac』라는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환경 운동 개척자다.를 거쳐 레이철 카슨까지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위대한 선인의 갤러리에 한껏 자부심을 갖지 않았던가? 드러내놓고 자랑할 만한 위인의 갤러리는 독일의 환경 투쟁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환경 정의 운동〉을 위해 이런 우상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운동을 위해서는 다른 종류의 환경 의식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 갤러리가 1970년의 〈생태 혁명〉에서 끊기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당시 〈환경 보호주의〉가 계속 여러 갈래로 갈라지면서 환경 운동의 정체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우상이 누구인지를 묻는 격렬한 공방이 벌어진 게 그 혁명의 내용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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