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의 시작
여름은 가벼운 계절이어서인가. 여름엔 꿈을 많이 꾼다. 푸른 꿈을 꾸던 여름날이었다. 길 위의 자동차와 입간판과 내 몸까지 욕조에 던져 넣고 싶을 만큼 무더웠다. 그러다 서핑이 떠올랐다. 서핑은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장 기묘한 것이었다. 『고아웃』 잡지사에서 일하던 첫해 여름, 2012년 6월호의 주제는 ‘서핑’이었다. 그때 『고아웃』 편집장이던 정아진 선배는 내게 우리나라 1세대 서퍼인 허석환을 소개해주었다. 그는 지금 강원도 고성에서 서핑을 가르치며 그림 그리는 아내와 즐겁게 산다. 얼마 전 허석환과 함께 서핑을 했는데 “그게 벌써 십 년도 넘었구나!” 하면서 서로를 보며 웃었다. 십 년이면 해변의 모양도 변한다. 십 년 전 그때, 우리는 서핑을 생각하면 마음이 빵처럼 부풀어올랐다.
서핑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서핑은 화성 탐험처럼 나의 경험과 지식 밖에 있었다. 단지 외계인처럼 여겨지던 서퍼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들을 만나려면 먼저 파도를 기다려야 했다. 해가 지면 새들이 숲으로 돌아가듯 파도가 오면 서퍼들은 바다로 향했다. 허석환은 기상 정보를 확인하고 출장 날짜를 정했다. 파도는 한 곡의 악보와 같이 섬세했다. 여러 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협주곡처럼 대자연의 작은 요소가 서로 맞물리며 파도타기에 적합한 파도를 만들어냈다. 너울의 크기와 방향은 물론, 조수의 간만도 파도의 컨디션에 영향을 끼쳤다.
너울만큼 바람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했다. 해변으로부터 바다 쪽으로 부는 약한 바람은 파도의 면을 깨끗하게 했다. 서퍼들은 맑고 반듯한 파도를 보고 유리 같다고 했다. 너울을 받아줄 해변의 지형은 파도가 부서지는 지점과 방향을 좌우했다. 이런 것들을 조합해보면 그날 어느 해변의 파도가 좋을지도 예측이 가능했다. 좋은 파도라니? 파도의 좋고 나쁨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 동해안에 파도가 온다는 예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허석환의 안내를 따라 양양에 갔다. 죽도 해변과 기사문 해변에 가보니 단 네 개의 서핑숍이 있었다. 그마저도 캠핑 트레일러를 개조하거나 오래된 구옥을 고쳐서 쓰는 것이었다. 수십 개의 서핑숍과 카페가 생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조용한 바닷가 마을이었다. 멀리서 파도 위를 가로지르는 서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움직임은 음악에 견주어봄 직했다.
실제 서퍼들은 때때로 그들 자신을 음악에 비유하곤 한다. 롱보드는 재즈의 선율을 여유로이 걷고, 쇼트보드는 힙합의 16비트 위를 정신없이 오르내린다. 서핑숍에 틀어놓은 음악만 들어도 그 서핑숍이 어떤 스타일의 서핑을 선호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양양에서 만난 로컬 서퍼들은 서프보드를 허리춤에 든 채 맨발로 총총 걸어 다녔다. 까맣고 작은 근육이 도드라진 몸들, 파도를 부유해온 어깨와 무릎 사이에 리듬이 착착 감겨 있다. 나는 제주도 출신의 서퍼가 운영하는 서핑숍에서 강습을 받고 서핑을 체험하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입문자에겐 꽤 큰 너울이 들어오던 날이다. 전날은 파도가 방파제를 집어삼킬 만큼 큰 너울이 일었다고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서핑은 달리는 기차에 올라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빈 과자 봉지처럼 기운이 완전히 빠져나간 뒤에도 파도는 내 몸을 붙잡고 수면 아래로 끌고 들어갔다. 크고 노련한 레슬러와 대결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꽤 오랫동안 바다에 남아 있었다. 왠지 억울한 기분도 들었다. 힘도 정신력도 젖은 종이처럼 늘어진 채 해변으로 돌아왔다. 서핑은 많이 어려웠고, 함께 바다에 떠 있던 눈이 깊은 남자들에게선 왠지 모를 냉소가 느껴졌다. 나의 어설픈 몸짓을 비웃는 것 같았고 혹여나 자신들의 파도타기를 방해할까봐 경계하는 눈치였다. 저녁에 다시 서핑숍을 찾아갔다. 녹음기를 켜고 여덟 명의 서퍼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녹취를 푸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기억이 난다. 서퍼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차갑게 느꼈던 그들의 태도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양양에서 서핑숍을 운영하고 있는 고성용은 로컬리즘에 대해 당시 이렇게 설명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중문 해변에서 서핑을 했어요. 그곳의 서퍼들은 대를 이어 제주도에서 살아온 토착민이에요. 오랜 시간 해변을 청소하고 질서를 만들어왔죠.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온 서퍼들이 해변을 더럽히고 룰을 어기며 서핑하는 경우를 봐왔어요. 조류가 강하거나 지형이 험한 구역은 조심하라고 해도 결국 사고가 나기도 했고요. 로컬 서퍼들에게 텃세를 부린다고 하지만 이런 일들이 불거지면 전체의 문제가 돼요. 로컬리즘은 그 지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서퍼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서핑 문화예요.”
로컬 서퍼는 해변의 환경과 질서를 유지하고 안전을 지킨다. 실제로 해마다 많은 해수욕객이 로컬 서퍼들에 의해 구조된다. 반대로 그들은 이방인과 마찰을 겪기도 한다. 해외의 서핑 포인트로 서프 트립을 다니다보면 바다를 독차지하려는 이기적인 로컬 서퍼들을 만나기도 한다. 몇몇은 민감한 경호원처럼 군다. 얼마 전 발리에서 만난 한 로컬 서퍼는 자신의 강습생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바다 위에서 30분 동안이나 욕을 해댔다. 그러나 모든 로컬 서퍼가 그런 것은 아니다. 성숙한 로컬 서퍼는 이방인에게 좋은 파도를 양보하고 응원을 보낸다. 외지에서 온 서퍼는 해변의 음식점과 숙소를 이용하며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므로 로컬과 이방인은 함께 살아가는 공생 관계다. 서핑이야말로 여행자가 로컬이 되는 가장 그럴듯한 이유이기도 하니까.
서프 문화를 동경하는 브랜드의 모자나 티셔츠에는 유독 ‘로컬Local’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여 있다. 그것은 바다라는 경외의 대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들의 신념 같은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는 자부심의 의미도 있을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 온 서퍼는 바다의 지형과 물 때, 조류의 방향 등에 대해 알기 위해 로컬의 조언을 존중해야 한다. 바다는 거대하고 변화무쌍하며 한눈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나는 괴롭기만 하던 첫 서핑 이후, 매달 한두 번씩 양양을 찾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여느 서퍼들처럼 서핑에 빠져버렸다. 그 이래로 십 년이 넘게 서핑을 하고 있다. 일 년에 한두 번은 하와이, 캘리포니아, 발리, 호주, 일본 등으로 서프 트립을 다녀온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서핑에 대해서 얘기할 때 눈이 반짝인다고들 한다. 서핑에 대해서라면 하루 종일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서핑은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 서핑은 독서와 같다. 서핑을 통해 삶의 관점과 태도를 배우고 있다. 지금 나는 행간을 읽어내듯 파도의 흐름에 잠시 나를 맡기는 중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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