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예고편
잔이 왔다
망이 왔다
잔망이 왔다
키코가 가고
레아몽이 가고
묘비 위의
이름들이 녹는다
말라붙은 눈물
설탕으로 코팅된 사랑
수초와 이도와 디스토피아
파란 피의 시간이 왔다
파파야아보카도바나나애플망고
끈적이는 손바닥의 시간이
죽음에서 돌아왔다
죽음에서
죽음에서
안녕
내가 왔어
먼지와 질서
책을 털자
영수증이 떨어집니다
흰
잉크가 날아간
어제의 소비들
숫자들
모두
집으로 돌아갔어요
무표정한 사서와
테이블에 책을 쌓으며
길어지는 여자들
서가를
기웃거리던 겨울바람도
모두
돌아갔어요
무인 책방에는
먼지와 질서만 남아 있어요
이 책은 료스케의 것입니다
그렇게 씌어져 있거든요
료스케는 삼십대의 어른
얼마 전 이직을 했고
뱅갈 고양이와 함께 사는
주말에는 암벽을 오르다
자신의 무게를 깨닫는
사람일까요
책 속에는 가끔
받는 사람의 이름이 있고
영원히 풀리지 않는
궁금함이 있고
왜인지
무서운 냄새도 있습니다
이것을 시간의 냄새라 한다면
책방에는 얼마나 두꺼운
미결 사건들이
쌓여가는 걸까요
무서울 때는
나의 자랑을 보세요
읽지 않은 메일
999+
검푸른 머리카락과
햇빛이 핥고 간 주근깨
느린 걸음
지나칠 만한 표지판을
자세하게 바라보는 눈
원피스에는 운동화
가끔은 누구의 눈도
피하지 않는
그래요
귀여움 한 스푼
영수증의 글씨들처럼
조용히
사라지고 싶은 날에는
따라 해보세요
따뜻한 샤워와
오로지
나를 위한 수프 한 접시
단단한 쿠키와
어떤 말에도 무너지지 않는
마음을 준비해요
종이에 베인 자국은
지그재그
작은 새가 조금씩 걸음을 옮기듯
가만가만히
마음을 준비해요
무엇이든 사랑해버려요
무엇이든지……
책방에 혼자 남아
료스케를 생각해요
시간의 냄새를 맡으며
눅눅하고
검은
그의 마음 생각해요
료스케는 지금쯤
퇴근길 열차 안에서
미워하는 사람 생각할까요
그 사람의 손가락이
종이에 베였으며 좋겠다
생각할까요
어쩌면 책방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르겠어요
책을 털자
이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초록색 지폐 두 장을 들고
서성거려요
잔돈을 거슬러 줄 사람이 없어
네모난 상자에 두고 옵니다
영수증은
바닥에 그대로 있어요
먼지와 질서를
흩뜨리면서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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