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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는 게 문제야
장인은 어떻게 임금노동자가 되었을까?
최초의 인류는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거나, 풀뿌리 또는 열매를 먹으며 주린 배를 채웠습니다. 추위와 비바람을 피해 동굴에서 잠을 청했죠. 그러다 1만 년 전 어느 날, 기후가 따뜻하고 야생 곡물이 번성한 지역에 농사짓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인류가 생존하는 데 꼭 필요한 먹을거리를 얻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이죠. 역사가들은 이를 농업혁명이라고 부릅니다.
당시 사람들은 생활에 필요한 물건이나 도구를 스스로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모든 것을 직접 제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물건의 만듦새에 만족하지 못하기도 했죠. 그런데 마을에는 남들보다 뛰어난 솜씨를 가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물건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면서 답례로 곡식을 짓는 대신 이웃에게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주는 일에 집중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는 오랜 기간 많은 작업을 소화하며 질 좋은 물건을 만들어 냈습니다.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아 제작에 필요한 도구들을 더 유용하게 개량한 덕분에 전문적인 작업도 할 수 있었죠. 장인이 등장한 것입니다. 장인은 상인으로부터 물건을 의뢰 받기는 하지만 자신만의 제작 방식과 계획에 따라 수공품을 만들며 생계를 이어 갔습니다. 상인은 장인이 만든 수공품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판매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했죠. 물론 사람들 대부분은 여전히 농사를 지으며 살아갔어요. 장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으로 물건을 제작했기 때문에 모든 물건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만큼만 만들어졌죠. 물건이 귀하니 아끼고 고쳐 가며 오래도록 사용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였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생산방식에 다시 한번 변화가 일어납니다. 지금까지는 장인 혼자 하나의 물건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작업 전체를 책임졌는데, 이제는 상인이 제공하는 장소에 노동자들이 모여 각 생산과정을 나누어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분업이 시작된 거죠.
트럼프 카드를 예로 들어 생각해 볼까요? 예전에는 상인으로부터 주문을 받은 장인이 그림을 인쇄하고, 종이를 자르고, 포장하는 모든 공정을 혼자 맡았습니다. 상인은 작업 과정이나 속도에 관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물건을 더 많이 사고 싶어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죠. 이게 답답했을까요? 장사로 돈을 모은 상인은 생산공정을 여러 장인에게 나누어 맡기기로 합니다. 한 사람은 그림 인쇄만, 다른 사람은 카드를 규격에 맞게 자르는 일만, 또 다른 사람은 포장만 하는 식으로 생산공정을 구분한 거죠.
상인은 세 명의 장인을 한 장소, 즉 공장에 모아 놓고 일을 지시하며 생산 전반을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한 명이 한 가지 일만 맡으니 일을 익히기도 수월해져 특출난 기술이 없는 사람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요령이 붙고 속도도 빨라져 장인 못지않게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죠. 상인들은 더 이상 공장 밖의 장인에게 일을 맡길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제 숙련된 기술을 가진 장인들도 공장에서 불러 주지 않으면 일거리를 얻기 어려워집니다. 일은 임금을 받고 상인의 지시대로 제 몫을 다하기로 약속한 노동자의 몫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손을 대신하는 기계
상인들은 물건을 사고팔아 모은 자금으로 공장을 늘려갔습니다. 이렇게 생산을 위해 투자하는 자금을 자본이라고 합니다. 자본을 바탕으로 공장을 세워 생산과정을 통제하는 사람들은 자본가라고 부르죠. 이제 생산의 핵심은 공장에 고용된 노동자가 자본가의 지시에 따라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바뀝니다.
장인이 제작하던 물건은 자본가가 세운 공장에서 생산되어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됩니다. 상품의 거래 과정에서 이윤이 창출되고, 창출된 이윤은 다시 더 많은 상품을 만들기 위한 자본으로 투자되는 생산방식이 자리 잡았죠. 여기서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두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어요. 바로 자본을 통한 생산과 상품의 시장 거래입니다.
자본가들은 상품을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고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분업에 분업을 더해 생산과정을 더 촘촘하게 나누었어요. 일이 훨씬 단순해졌겠죠? 기계가 도입되기 좋은 조건이 갖춰지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18세기에 이르자 중요한 기술적 진보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1733년 영국의 존 케이John Kay는 사람의 손을 대신해 자동으로 씨실가로실을 넣어 주는 장치인 플라잉 셔틀을 발명했어요. 그 결과 면직물의 생산성이 무려 네 배나 높아졌습니다. 문제는 실을 뽑는 속도가 면직물을 짜는 속도에 미치지 못했다는 거예요. 면직물을 짜려면 먼저 그 재료인 면실이 필요한데 말이죠. 물레를 이용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목화에서 한 번에 한 가닥의 실만 뽑아낼 수 있었기 때문에 영국은 실을 수입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1764년 영국의 제임스 하그리브스James Hargreaves가 발명한 기계는 이런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는 한 번의 작업으로 여덟 가닥의 실을 뽑아낼 수 있는 기계를 고안했고, 아내의 이름을 따 제니 방적기라고 불렀습니다. 면실의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었죠. 5년 후인 1769년에는 수력을 이용해 실을 뽑을 수 있는 수력 방적기가 발명되었습니다. 리처드 아크라이트Richard Arkwright가 만든 이 방적기는 한 번에 네 가닥의 실을 뽑을 수 있었지만 강력한 수력으로 작동했기 때문에 한 번에 여덟 가닥을 뽑는 제니 방적기보다 생산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어요.
같은 해 면직물 생산에 또 한 번 변화가 나타납니다. 제임스 와트James Watt가 증기기관을 획기적으로 개량해 산업에 활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류는 사람의 손이 아닌 기계가 상품을 생산하는 시대, 사람이나 동물 대신 화석연료로부터 기계를 작동시킬 동력을 얻는 시대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산업혁명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사실 아크라이트가 개발한 수력 방적기로 뽑아낸 실은 숙련된 노동자가 만든 것에 비해 거칠고 두꺼웠습니다. 그 실로 만든 면직물의 품질도 당연히 좋지 못했어요. 그러나 사람과 달리 기계는 잠을 자거나 밥을 먹지 않아도 되고 피로를 느끼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같은 속도로 일정한 품질의 상품을 생산해 냈죠. 자본가들은 공장에 점점 더 많은 기계를 들여놓기 시작했어요.
특히 유럽의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동자의 임금이 높았던 영국에서 기계에 대한 수요가 많았습니다. 노동자들은 공장 한편을 차지하는 기계들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꼈어요. 기계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넘보고 있었거든요. 이에 일부 노동자는 공장을 습격해서 불을 지르고 기계를 부수는 러다이트 운동을 벌였습니다. 이런 일들이 잦아지자 1812년 영국 의회는 기계를 파괴하는 사람들을 사형에 처하는 법안을 만들기에 이릅니다.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기계는 발전을 거듭합니다. 나중에는 200~300명이 할 일을 방적기 한 대가 해낼 정도가 되었죠. 방적기의 발달로 실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면직물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국에서 생산된 면직물은 전 세계로 수출되었고, 1820~1870년까지 50여 년 동안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끌었습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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