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야자수. 나는 야자수를 떠올리고 있다.
물론 내가 떠올리고 있는 것은 하와이나 발리에 놀러가면 볼 수 있는 야자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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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헝가리 출신 사진작가의 전시회장에서 사진의 분위기와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야자수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관람객들 사이에서 우재와 닮은 뒷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우재와 나는 십여 년 전에 한 문학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다. 우재는 규모가 작은 동아리 내에서 몇 안 되는 동기였고, 이십대 초반 나를 들뜨게도 갈급하게도 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있을 때 그런 마음이 되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걸 그 시절 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벚꽃이 만개한 텅 빈 캠퍼스를,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바람이 부는 한강 둔치를 달아오른 얼굴로 함께 걷던 밤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몇 번의 우연과 엇갈림 끝에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는 않았고, 우리는 각자 연애를 하는 동안엔 서로에게서 멀어졌다가 한쪽의 연애가 끝나면 다시 조금쯤 애달파지는 그런 사이로 차츰 변해갔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우재는 2학년 겨울방학에 군대에 갔다. 우재가 나에게 이따금씩 보내오던 편지들, 다른 무늬는 없이 검은색 줄만 그어진 편지지에 정갈하게 적힌 문장들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었는지는 이제 잊었다. 우재가 내게 편지를 자주 보내던 그즈음 나는 아르바이트하다 만난 인근 학교의 남학생과 밋밋한 연애를 막 시작한 참이었고 우재는 군대에 가기 얼마 전부터 사귀기 시작한 연상의 애인에게 실연을 당한 상태였다. 애인이 갖고 있던 우재의 물건들을 돌려주고 싶어한다는데 우재가 본가로 보내라 하고 싶지는 않다고 해서 소포를 우리집으로 받았던 기억이 난다. 택배 상자 속에 들어 있던 김광석과 이문세의 테이프들―시디도 아니고 테이프였다!―과 1920, 30년대에 프랑스나 미국 등지에서 활동했던 사진작가들의 사진집 같은 것들. 그 물건들을 내가 우재에게 돌려줬던가? 그건 잘 모르겠다. 우리가 언제부터 서로의 소식을 모르고 살게 되었는지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우재가 군대에 간 이후부터는 우리의 캠퍼스 생활이 많이 겹치지 않았다는 것도 우리가 멀어지게 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우재가 복학했을 때는 내가 휴학중이었고, 내가 복학하니 우재가 전공 공부에 몰두하느라 도서관에 처박혀 있는 식이었다.
졸업하면서 자연스럽게 더 소원해진 우재를 동아리 선후배들의 결혼식장에서 몇 번인가 마주친 적이 있긴 했다. 결혼 계획도 없는데 남의 결혼식 따위 가고 싶지 않아서 늦장을 부리다가 예식이 시작된 후에나 헐레벌떡 식장 안에 들어서면 나처럼 늦은 것인지 자리에 앉지 못하고 문가에 선 우재의 모습이 보일 때가 있었다. 아이라인을 그리고 마스카라까지 칠한 내가 어색한 것은 우재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말쑥한 정장 차림의 우재는 정말이지 낯설어서 내가 나이를 먹고 있구나 하고 실감하게 했다.
하지만 그렇게 지인들의 결혼식장에서 우재와 스치듯 마주친 것도 벌써 오래전의 일이었다. 서른 살까지는 그래도 청첩장을 받으면 일정을 비워두곤 했지만 언젠가부터는 축의금만 보내고 있었으니까. 어차피 친한 사람 중 결혼할 사람들은 진즉 다 했고, 그나마도 나는 인간관계를 좁게 유지하는 편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서울 한복판에 열린 사진전에서 우재와 마주칠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금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은 넓고, 천만 명이 사는 도시니까. 물론 안드레 케르테스를 내게 처음 소개해준 사람이 우재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내가 우재를 발견한 것은 2월 중순의 어느 금요일, 폐관 시간이 가까워졌을 즈음이었다. 퇴사 후 할 일이 딱히 없던 나는 거의 한 달째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출근 도장 찍듯 전시관에 가서는 폐관 시간까지 똑같은 사진들을 관람하고 있었다. 사진을 보는 것이 좋기도 했지만 내가 전시관을 찾은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전시회장에서는 누구와도 사교적인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었고, 누구도 나를 바라보지 않았으니까. 그런 이유로 우재의 뒷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것과 별개로 알은척을 할까말까 잠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늦은 시간이라 전시회장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우재인 것이 확실해 보이는 남자 관람객 혼자 벽면에 쓰인 작가의 문장을 읽고 있었다.
나는 빛으로 글을 쓴다. 무엇인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거나 찾지 않고 보기만 한다. 나는 기록하지 않는다. 해석할 따름이다.
나는 우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려 먼저 전시회장을 빠져나왔다.
전시회장 입구에는 안드레 케르테스의 〈엘리자베스와 나〉 연작 중 하나로 만든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절반만 모습을 드러낸 한 여성과 그 여성의 어깨에 얹힌 남성의 손을 찍은 그 흑백사진은 오랜 세월 동안 작가가 아내와 함께 찍어온 사진들 중 하나로, 엘리자베스를 향한 깊은 사랑이 느껴지는 이 연작을 볼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쓸쓸한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바깥에 진눈깨비가 날리는 탓이었을까? 그날따라 마음이 평소보다 더 스산했다.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네. 출입문 앞에서 나는 목도리를 여민 후 가방 속에 접어 넣어두었던 우산을 꺼냈다.
“혹시 이해미?”
우산이 활짝 펴지는 순간 뒤쪽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엔 잿빛 코트 차림의 우재가 서 있었다.
“이게 얼마 만이야.”
“그러게.”
커피 한잔하고 헤어질까? 하는 우재의 말에 근처 눈에 띄는 카페에 들어오긴 했지만 막상 마주앉아 어색해서 대화가 자꾸 끊어졌다. 우리의 정적 사이로 〈My Funny Valentine〉이 나지막이 흘렀다. 여기서 볼 줄은 몰랐네, 여전히 케르테스를 좋아하나보구나,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게 S의 결혼식이었나? 어색한 기분에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놓다가 “아, 너는 결혼했어? 소식을 들은 게 없어서 못 갔는데, 혹시 했으면 미안” 하고 말하자 우재가 고개를 저었다.
“나 결혼 안 했어.”
“아, 그래?”
“애인도 없고…… 넌?”
무심한 말투로 질문을 던진 우재는 커피잔 손잡이를 엄지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도.”
“너나 나나 외로운 인생이구나.”
우재의 농담에 웃음이 났고, 그러자 어색했던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아냐, 희망을 버리진 말자. 우리도 머지않아 엘리자베스 같은 존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자연스럽게 전시회를 언급하며 우재가 장난처럼 덧붙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 둘 중 누구도 연애를 하지 않는 상태로 만나는 건 스물한 살 이후 처음인데 우재는 그걸 알까? 나의 마지막 기억 속 우재의 애인은 중학교 선생님이었다. 문득 우재같이 다정한 사람이랑 왜 다들 헤어진 걸까 궁금해졌다. 하긴, 연애를 하다보면 이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한둘은 아니지.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계속 꽃길만 걷나. 나 역시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술술 풀렸다면 백수가 되어 평일의 전시회장을 날마다 찾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케르테스보다 엘리자베스가 먼저 죽었잖아. 그렇게 소중한 누군가를 가졌다가 잃는 건 너무 무서워.”
나는 나를 쳐다보는, 세월 탓에 볼이 꺼진 우재의 눈을 피하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눈깨비는 어느새 비가 되어 내리고 있었다. 빗줄기가 금을 긋는 유리창 위로 잊고 살았던 동아리방의 풍경이 떠올랐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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