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실내 바이옴의 식물들
“노동의 주목적은 인간의 행복이어야 하며
실내식물이라는 문화예술에 쏟는 노력은
재배자의 마음뿐 아니라 그 식물에 감탄하는
행인의 굶주린 영혼에도 행복을 가져다준다.”
― 휴 핀들레이Hugh Findlay, 1916년
이 책은 언뜻 평범해 보이는 식물 집단인 실내식물에 관한 탐험서이다. 식용식물 혹은 약용식물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실내식물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어쨌건 그것을 집안으로 들이기로 결정한 건 우리 자신이다. 다양한 식물을 키우는 집에서 듬뿍 사랑받고 자랐든, 잎이 누렇게 시들도록 방치되었든 간에, 실내식물은 우리의 생활방식, 우리에게 자연이 필요한 이유, 인간이 야생식물을 채집하고 재배화하는 과정에 관한 복잡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식물을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하는 성향을 의미하는 식물맹plant blindness에 관한 많은 글이 있다. 이런 성향은 작물 다양성과 식물 보호 같은 중대한 사안의 자원 부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실내 식물이 존재하며 수많은 실내식물이 새로운 가정에 정착해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선사한다는 사실은, 인류의 상당수가 식물맹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아주 좋은 신호다.
인간의 실내식물 사랑은 식물 재배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식물과 인간의 상리공생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를 살펴보기 위한 길을 열어준다. 일부 실내식물은 변형되지 않은 상태, 즉 야생에서 채집될 당시와 거의 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스위스 치즈 식물’이라고도 불리는 몬스테라Monstera deliciosa이다. 반면 아프리칸바이올렛Saintpaulia과 팔레놉시스Phalaenopsis, 나도풍란 같은 기본적인 실내식물은 수십 년간 육종가들의 손을 거치며 큰 변화를 겪었으며 과학과 예술이 협력하는 식물 재배화의 역사를 들려준다.
우리는 도시 종種이 되어가고 있다.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과거 어느 때보다 길어지면서 점차 인간미 없는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정원을 소유한 사람들은 줄어들고, 부동산을 임차하는 사람들은 보통 정원을 가꾸는 데 시간을 쏟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자연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자연이 우리의 행복에 필수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자연주의자이자 작가인 E.O.윌슨E.O.Wilson은 이것을 ‘바이오필리아biophilia’, 즉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추구하는 다른 생명체와의 유대’라고 정의했다. 슬프게도, 인류 역사의 많은 부분을 살펴보면 인간이 자연과 맺는 관계는 다른 종의 절멸과 야생의 땅을 경작지로 바꾸는 과정을 통해 드러난다. 하지만 최근 나타나고 있는 무해한 종류의 바이오필리아는 인류가 길들인 땅, 특히 우리 가정에 마음에 드는 식물종을 들임으로써 기쁨과 우정을 나누고자 하는 욕망을 의미한다. 실내식물은 참신한 것―점차 동질화되어가는 세계 속에서 반짝이는 녹색 생명―에 대한 인간의 내재적 욕구를 반영한다.
가정용 식물house plant의 명명법은 모호할 수밖에 없으며 실내식물indoor plant, 화분식물pot plant, 관엽식물foliage plant로도 불린다. ‘가정용 식물’이라는 용어는 1952년 영국 양묘업자 토머스 로치포드Thomas Rochford가 만든 것으로, 그가 판매하는 가정용 관상식물은 이전까지 ‘녹색 식물green plant’ 혹은 ‘관엽식물’이라고 불렸다이 책의 원어 제목 ‘House Plants’를 직역하면 ‘가정용 식물’에 가깝지만 편의상 제목과 본문에는 ‘실내식물’로 번역했다―옮긴이. 영국에서 로치포드라는 이름은 순식간에 고급 실내식물의 대명사로 떠올랐으며, 여러 원예 지침서의 저자 D. G. 헤사이온D. G. Hessayon 박사, 실내식물 비료인 베이비바이오Baby Bio와 함께 여러 세대의 실내식물 재배자들을 위한 삼위일체로 자리매김했다.
실내식물은 대부분 열대지방이나 아열대지방에서 유래한 것으로 (물론 영국에서는 아이비[Hedera helix]가 가장 사랑받는 종으로 남아 있긴 하지만), 집을 장식할 목적으로 화분에 재배되며 종종 개인의 문화적, 사회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거래된다. 런던의 실내식물이 스페인이나 플로리다에서는 정원식물일 수도 있다. 열대지방에서는 냉방이 되는 거실에 몬스테라 화분이 놓인 가운데, 창밖으로 동일한 종의 식물이 억센 덩굴 형태로 나무를 타고 올라가 열매를 맺는 기이한 광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실내식물과 표본식물의 경계는 흐릿하고 유연하며, 무해한 장식품으로서의 실내식물과 집착의 대상으로서의 실내식물도 그 경계가 모호하다. 또한, 줄기가 잘린 꽃과 실내식물 간의 구분도 불확실하다. 크리스마스 장식화로 잘 알려진 화분에 담긴 포인세티아Euphorbia pulcherrima는 실은 가지를 잘라 화분에 꽂아둔 것으로 몇 달 안에 폐기 처분될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이치로, 줄기가 잘리고 뿌리는 꼬아놓은 상태로 종종 흙도 없는 용기에 담겨 판매되는 산세리아나드라세나Dracaena sanderiana, 아이러니하게도 ‘행운의 대나무’라고 알려짐도 오래 생존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 책에서는 용어의 정의를 느슨하고 유연하게 적용하므로 어느 정도 모호한 부분이 존재한다.
실내식물의 문화는 지구 전역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며 부富, 가용 식물의 범위, 문화, 유행하는 디자인 감각의 영향을 받는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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