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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타와 시루떡
나는 사자자리, 한여름, 가장 덥고 더운 날 엄마는 나를 낳았다. 내 생일 무렵이면 엄마는 출산의 고통보다도 더위와 싸우느라 고되었던 젊었을 한때를 말하곤 했다. 지금이야 생일이란 것이 누구에게나 가장 큰 기념일이고, 1년 중 가장 바쁜 행사 주간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침에 소박하고 조촐한 밥상에 식구들이 둘러앉아 미역국을 먹는 게 전부였으니까.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부모님은 우리 형제의 생일보다 예수님의 생일이 더 기념할 만한 날이었고, 생일을 맞아도 선물은커녕 특별한 의식도 없었지만 크리스마스엔 달랐다. 나는 내 생일보다 예수님의 생일을 더 기다리곤 했다.
열 살이 되던 해, 생일 무렵이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한 친구의 생일 초대를 받았다. 연필 한 자루를 손에 쥐고 그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한 것을 보면 가히 내겐 그날이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생일에 다른 집은 이렇게 축하를 받는구나, 하는 자각보다도 어느 하루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즐거움, 부러움 같은 것을 어린 나도 알아버리게 된 것이다. 케이크에 초를 켜고 선물을 받는 주인공이 나도 한번 되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내가 생일 파티에 다녀온 뒤로 떼를 썼을 것이다.
며칠 후, 내 생일에 친구 몇 명을 집으로 불렀다. 나는 연필이며 공책 같은 것을 선물로 받았다. 둘러앉은 밥상, 아이들 앞에 각각 수박이 담긴 유리 대접이 놓였다. 그리고 엄마가 수박이 담긴 그릇에 환타를 부었다. 오렌시색 환타가 수박 때문에 더 붉어졌다. 그리고 상 한가운데 김이 모락모락 시루떡이 놓였다. 엄마도 초보일 때니까. 다른 집 아이들 생일 파티를 본 적도 없을 때니까. 엄마로서는 최선을 다한 일, 하지만 나는 감수성 강한 어린이, 그 일로 민망함을 알아버렸다. 뒤로 다시는 내 생일 파티 같은 것을 하자고 조른 적이 없으니까, 하루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기대감은 어린 나이에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얼마 전, 사우나에 갔다. 열심히 땀을 빼고 냉장고에 오렌지 환타가 보여 열 살 때의 기억을 냉큼 마셨다. 갈증이 가시자 빙긋이 웃음이 자꾸 나왔다. 무려 40여 년 전의 그 환타가 이리 맛났단 말인가. 이 정도면 민망함도 이제는 잊을 만한 일이 분명하다.
얼마 전, 엄마가 내가 새로 이사한 집에 다녀갔다. 생각난 김에 유일했던 열 살, 생일 파티에 대해 물었다. 물론 엄마는 아무것도 기억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를 가졌을 때, 엄마는 그게 그렇게 그런 음식이 먹고 싶었었다고 했다. 탄산음료와 떡, 그리고 아주 신맛 나는 과일. 그러니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 열 살의 생일상은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 먹고 싶었던 것을 내놓은 셈. 덥고 더운 날, 아들 생일이라고 시루떡을 찌느라 고생했을 엄마가 떠오르자 그날 붉디붉었던 환타마냥 눈가가 어릿하다. 열 살에 알아버린 민망함이 40여 년이 지나 짠함으로 바뀐 어느 봄날. 꽃이 환하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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