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4일월요일
성균관대학교 개교 이래
최대규모 시국선언
오늘 오전 11시에 성균관대학교의 교수·연구자들 248명이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이라는 말은 꼬집어 말하지 않았지만, “전면적 국정쇄신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정권을 종식시키는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명료하게 말했다. 눈에 띄는 것은 “248명”이라는 숫자인데, “개교 이래 최대규모의 선언” 사건이라고 한다. 성균관대학교라고 하면 조선왕조 최고교육기관이며 유학교육의 권위 있는 전당인 성균관이라는 이미지의 연계선상에서 생각하게 마련이지만, 성균관을 현대적인 대학교육기관으로 변모시킨 사람은 심산心山 김창숙김창숙, 金昌淑, 1879~1962이라는 존경스러운 유자儒者였다. 심산은 진실로 치열한 독립운동가였으며, 매사에 정의로운 판단력을 잃지 않은 심오한 민족주의자였다. 한민족 전체의 대의를 위하여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로 세파를 헤쳐나간 꼿꼿한 선비이자 유림의 대표였다. 우당 이회영, 단재 신채호와 더불어 “북경삼걸”로 불리었던 민족의 지도자 심산을 나는 평생 흠모하였다. 성균관대학의 교수들이 이대로 가면 이 정권은 대한민국을 파탄으로 휘몰아갈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면서 분기한 이 사건이야말로 심산정신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명증이 아니고 무엇이랴!
4·19와 4·25 대학교수단시위
1960년 4월 19일, 전국이 피로 물들고 이승만의 독재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지만, 그 혁명의 열기는 계엄령 선포와 계엄군의 진압으로 다시 소강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 주저앉으려는 정국을 다시 일깨워 혁명을 완수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이 이른바 “4·25대학교수단시위”라는 것이다. 각 대학의 교수대표 258명이 “피의 화요일”4·19 엿새 후인 4월 25일 오후 3시 동숭동 서울대학교 교수회관에 모여 14개 항목의 시국선언을 채택하고초안은 고대철학과 국학의 대가 이상은. 참석자 전원이 싸인 오후 5시 45분 교문을 나와 종로, 을지로입구, 미대사관을 거쳐 국회의사당 앞까지 행진하였다. 당시만 해도 대학교수의 사회적 권위는 신성한 그 무엇이었다.
플래카드 쓴 성대 사학과 교수 임창순.
보은 우당고택 관선정에서 한학 수학
이 시위는 민심의 이반을 결정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이승만은 다음날 4월 26일 오후 1시 라디오연설을 통해 하야를 발표한다. 이 교수단시위는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라는 플래카드를 맨앞에 들고 행진하였는데, 그 플래카드를 쓴 사람이 바로 성균관 대학 사학과 교수이자 탁월한 금석문 학자였던 임창순任昌淳, 1914~1999이었다. 교수단선언문에는 이전의 선언문에는 들어가지 않았던 “대통령 하야”라는 구호가 들어갔는데 그것도 임창순의 주장에 의한 것이라 한다.
시작부터 퇴임요구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서 취임한 지 1년도 안되어 “대통령 노릇을 그만 좀 하소”라는 소리, “윤석열 퇴진촉구”니 “윤석열정권의 종식”이니 하는 구호가 모든 시위움직임의 보편적 구호가 된 사례는 없는 것 같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너무도 어처구니없고 너무도 예기치 못한 사태이라서 어안이 벙벙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어쨌거나 민주적 절차를 거쳐서 당선된 사람이고, 또 “진보정권”이라 자처한 사람들의 행태에 반성의 여지가 많았기 때문에, 여태까지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리더십 아래서 참신한 체험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 서린 전망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청와대를 떠나는 방식으로부터 시작해서 10·29이태원 참사, 그리고 그 참사를 덮어버리는 교활한 추태…… 하여튼 그의 행보를 여기 시시콜콜 나열할 필요조차 없겠지만, 대한민국의 시공간에서 일어난 그의 언어와 행동방식이 엄밀한 포폄의 대상이기 전에 너무도 상식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하라서 평가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그를 옹립하고, 두둔하고 옹호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보수인사들조차도 겉으로는 그를 야단치거나 민심을 동요시키는 발언을 하지 않겠지만, 속으로는 뭔가 근본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는 것이다.
공인 의식이 부재
윤석열이라는 인간의 최대의 특징은 하나의 개체로서의 사인私人일 뿐, 지도자로서의 공인公人됨이 거의 부재하다는 것이다. 사적인 개인일 뿐 공적인 리더임을 망각하거나 지향하지 않거나, 아예 존재의 과제상황에서 제외시킨 매우 특유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공무원을 평생했다고 공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공적 사용이 중요한 것이다. 그의 “퇴진”이 이 사회의 보편적 언어로서 임기초기에 이미 등장했다는 사실은 그 자신이 그러한 언어에 무감하거나, 무시하거나, 묵살할 배포가 있거나, 오히려 그러한 비판이나 요구를 엔죠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특종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그 특종적 성향이 개인적 사태에 머문다면 그냥 그러한 상태로 5년만 참고 지내는 것도 국민교육의 한 단계이거니 하고 봐줄 수도 있겠지만 그는 놀라웁게도 명료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돈많은 사람들이 마음놓고 돈을 더 벌 수 있는 사회, 국민의 공적인 복리에 기여하는 조직을 될 수 있는 대로 사유화시켜 경쟁구조 속으로 집어넣어 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것, 남북의 관계는 북한이 정신차릴 때까지 계속 압박해야 한다는 것, 일본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일본의 과거 침략만행을 더 이상 들추지 말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한·미·일 경제·군사동맹을 강화함으로써 안전한 보금자리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
신자유주의가 말하는 자유는 전쟁을 부를 수 있다
하여튼 대강 이런 비젼이 그의 개체로서의 사인적私人的 의식 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고, 또 신념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념은 대화를 거부하고 토론이나 타협의 장을 벗어나 있다. 그의 자유는 전쟁을 하기 위한 자유가 될 수도 있고, 그의 돈벌기는 약자를 깎아 부자를 배부르게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돈많은 자들을 붕괴시킬 수도 있다. 미국은 전쟁위협을 빌미 삼아 이윤이 많이 나는 한국과 대만의 기업을 발라 먹으려 하고 있다. 복지는 그가 말하는 경쟁 때문에 영락할 수도 있고, 그가 말하는 동맹은 불필요한 대적관계를 증가시키고 궁극적으로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을 고립시킬 것이다.
대통령의 권한은 함부로 써서는 아니 된다
일정수준 이상 초과생산된 쌀의 정부매입을 의무화한 양곡관리법에 대해 윤석열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가뜩이나 쌀농사가 위축되고 있는 판에, 그리고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인해 식량이 무기화되고 있는 이런 중대한 시기에 돈많은 정부가 가난한 농부의 주머니를 더욱 빈곤하게 만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요, 졸렬한 시책일 뿐이다. 본시 비토라는 것이 대통령의 권한이라고는 하지만 함부로 사용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농민은 아무리 눌러봐야 끽소리 못한다는 안도감이 있기 때문에 비토권 행사의 최적 대상으로 선정되었을 것이다. 내가 시골에 강연 나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농사짓는 사람들은 나의 비토비판을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응원한다. 그런데 비극적인 사태는 농민의 대다수가 보수적으로 투표를 했다는 사실에 있다. 뻔히 자기를 죽일 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자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다. 즉 자기를 억압하는 자를 지도자로 모시는 것이다. 무지의 광란일까? 도대체 민주주의라는 것이 무엇일까? 과연 “민주”라는 이상은 인간세에 있는 것일까? 벼라별 생각이 다 드는 것이다.
윤석열과 연산군
윤석열이 아무리 광기 서린 비상식적 행동을 일삼아도 끄떡없는 지지층이 30%는 있다. 그리고 이 30%는 항상 50% 정도로 불어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아무리 퇴진을 읊어대고 종식을 울부짖어도 기득권의 지속은 깨지기가 어렵다. 일례를 들면 이런 생각을 한번 해보자! 연산군의 치세는 양대사화를 일으키면서 유례없이 난폭한 나날이 이어졌는데 어떻게 해서 12년을 끄떡없이 지속할 수 있었을까? 우선 『조선왕조실록』그중에 『연산군일기』이 묘사하고 있는 모든 치세의 사실은 궁궐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며 조선대중의 삶과 직접 연동되어 있었던 사태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그가 일으킨 사화史禍의 본질을 지나치게 비대해진 사림파신진 학구파의 세력을 훈구파세조찬탈의 공신들 계열의 반격을 통해 억제하고, 갑자사화연산군의 엄마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을 빌미로 일어난 사화를 통해 결국 훈구와 사림을 모조리 척결해버린 정치권력역학의 사태라고 규정할 때, 최종적 사실은 신하에게 빼앗겼던 왕권의 권위를 회복하는 연산군의 술책이었다고 간주할 수도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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