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다윗의 고정관념을 거스르는 암컷들
동물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서글픈 부적합자가 되었다. 그건 내가 거미를 사랑하고 길가에서 죽은 동물을 발견하면 해부하고 동물의 배설물이 눈에 띄면 똥의 주인이 뭘 먹었는지 보려고 기어이 헤집어보기 때문이 아니다. 내 동기들도 모두 그런 별난 호기심꾼들이었기에 그런 일로 부끄러울 건 없었다. 내 불안의 근원은 성性이었다. 이 분야에서 여자는 딱 한 가지를 뜻했으니까. 패배자.
“암컷은 착취당하는 성이다. 착취의 진화적 근거는 난자가 정자보다 크다는 사실에 있다.” 대학 시절 우리를 가르쳤던 리처드 도킨스가 진화론의 바이블인 『이기적 유전자』에 쓴 말이다.
동물학 법칙에 따르면 우리 난자 제조기들은 덩치 큰 제 생식세포에게 배신당했다. 이동성이 뛰어난 수백만 개짜리 정자가 아니라 영양이 풍부한 난자 몇 개에 유전물질을 투자하는 바람에 그 옛날 여성의 선조들이 생명의 복권에서 꽝을 뽑았다는 것이다. 이제 죽을 때까지 여자는 정자를 쏘는 자들의 보조 역할이나 할 운명이다.
나는명백히 사소한 이런 성세포의 차이가 성 불평등의 확고한 생물학적 토대라고 배웠다. 도킨스는 “암컷과 수컷 사이의 다른 모든 차이가 오직 이 한 가지 근본적인 다름에서 비롯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암컷에 대한 착취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동물의 수컷은 저돌적인 주체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주도권과 여자를 두고 서로 싸웠으며 자신의 씨를 되도록 멀리 많이 뿌려야 하는 생물학적 책무에 따라 상대를 가리지 않고 섹스했다. 수컷은 사회적으로도 우위에 있다. 수컷이 앞에서 이끌면 암컷은 얌전히 뒤를 따른다. 암컷에게 주어진 것은 온전히 자기를 내어주는 어머니의 역할이었다. 어머니의 일이란 대개 한결같다. 암컷은 경쟁심이 없으며 암컷에게 섹스는 욕구가 아닌 의무에 불과하다.
진화를 이끌어가는 주체도 수컷이다. 암컷은 수컷과 DNA를 공유한 덕분에 고분고분하기만 하면 무임승차가 가능하다.
난자를 제조하는 진화 전공자로서 나는 성역할을 구분하는 이 올드한 1950년대 시트콤에서 내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뭐 여자 돌연변이쯤 되는 걸까?
고맙게도 답은 “아니요”이다.
과거 성차별적 신화가 생물학에 도입되면서 동물의 암컷을 바라보는 방식이 크게 왜곡되었다. 실제 자연 세계에서 암컷의 형태와 역할은 대단히 폭넓은 스펙트럼의 해부구조와 행동을 아우른다. 물론 헌신적인 어머니상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동물의 세계에는 자기가 낳은 알을 버리는 암새도 있고, 바람난 아내를 둔 수컷들의 하렘에서 새끼를 키우는 물꿩도 있다. 정절을 지키는 암컷도 있지만 전체 종의 7퍼센트만 성적으로 일부일처이며, 많은 암컷이 여러 상대를 전전하며 섹스하는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하다. 동물 사회가 전적으로 수컷에 의해 지배되는 것도 아니다. 알파 암컷은 여러 분류군에서 진화했고, 자애로운 보노보에서 잔인무도한 여왕벌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암컷은 수컷들만큼이나 서로 살벌하게 경쟁한다. 토피영양 암컷은 잘난 수컷에 접근할 기회를 두고 거대한 뿔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 미어캣 여족장은 지구에서 가장 흉악한 포유류로서 경쟁자의 새끼를 죽이고 번식을 막는다. 팜파탈은 또 어떤가. 암거미는 교미가 끝나면, 아니 심지어 교미도 하기 전에 연인을 먹어치우는 동족 포식을 일삼는다. ‘레즈비언’ 도마뱀은 수컷의 도움 없이 오직 복제만으로 번식한다.
지난 수십 년간 암컷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두고 혁명이 일어났다. 이 책은 그 혁명에 관한 것이다. 나는 세상의 다채로운 암컷과 암컷을 연구하는 과학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소개할 것이다. 종의 암컷뿐 아니라 진화의 엔진 자체를 재정의한 인물들이다.
빅토리아 시대와 진화론의 아버지
어쩌다 인간이 자연을 보는 이런 삐딱한 관점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파악하려면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으로 돌아가 내 우상인 찰스 다윈을 만나야 한다.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내세운 다윈의 진화론은 어떻게 공통 조상에서 시작해 생명의 풍부한 다양성이 유래했는지를 설명한다. 환경에 잘 적응한 생물은 살아남아 자신의 성공을 도운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준다. 이 과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와 종의 분화를 유발한다. 종종 ‘적자생존’이라고 잘못 인용되는―이 용어는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가 만들어낸 것으로 『종의 기원』 제5판1869에서 다윈이 어쩔 수 없이 끼워 넣게 되었다.―이 발상은 단순하기에 더없이 훌륭하며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지적 혁명의 하나로 정당하게 환영받는다.
그렇기는 하나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연선택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다윈의 진화론도 수사슴의 뿔이나 공작의 꼬리로 인해 허점이 드러났다. 저런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형질은 당장 살아남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일상생활에 방해가 된다. 자연선택 같은 철저한 실용주의적 원칙의 산물일 리가 없다는 말이다. 다윈도 이 같은 사실을 인지했기에 오랫동안 괴로워했다. 마침내 다윈은 자연선택과는 전혀 다른 진화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바로 성에 대한 추구였고, 그래서 그는 그것을 ‘성선택sexual selection’이라고 불렀다.
새로 밝혀진 진화의 원동력은 현란하고 이색적인 형질을 잘 설명했다. 거추장스러운 장식물의 유일한 목적은 이성을 차지하거나 유혹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다윈은 그런 형질이 본질적으로 생존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생식기관처럼 생명을 영속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일차적 성적 특성’과 구분하기 위해 ‘이차적 성적 특성’이라고 불렀다.
세상에 자연선택을 제안한 지 10년이 넘어갈 무렵 다윈은 두 번째 위대한 이론적 걸작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을 발표했다. 이 묵직한 후속작에서 그는 성선택이라는 새 이론을 개괄했고, 이는 그가 두 성 사이에서 관찰한 크나큰 차이를 설명했다. 자연선택이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면, 성선택은 본질적으로 짝을 찾기 위한 투쟁이다. 다윈에게 그 경쟁은 대개 수컷의 영역이었다.
다윈은 “거의 모든 동물에서 수놈의 열정이 암놈보다 강하다. 따라서 싸움을 벌이고 암컷 앞에서 부지런히 매력을 발산하는 것은 수컷이다.”라고 설명했다. “반면에 암컷은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수컷보다 덜 열심이다…… 암컷은 일반적으로 ‘구애를 받는 쪽’이다. 암컷은 수줍음이 많다.”
이렇듯 다윈 앞에서 암수의 성적 이형성sexual dimorphism은 행동으로 연장되었다. 각 성의 역할은 신체적 특징만큼이나 예측 가능했다. 수컷은 암컷을 ‘소유’하기 위해서 특별히 진화된 ‘무기’나 ‘매력’을 들고 치열하게 싸움으로써 진화의 주도권을 잡는다. 경쟁은 수컷의 번식 가능성을 다양하게 이끌고 성선택은 승리한 형질로 진화를 추진한다. 반면 암컷은 애초에 변이의 필요성이 적다. 암컷의 역할은 수컷이 진화시킨 특성을 받아들여 후대에 전달하는 것이다. 다윈은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확실히 알지 못했지만 그 근원이 성세포로까지 거슬러간다고 보아 암컷은 어미의 역할에 투자하는 바람에 기운이 소진했다고 의심했다.
다윈은 성선택의 역학에서 수컷끼리의 경쟁 외에도 ‘암컷의 선택female choice’이라는 요소의 필요성을 알았다. 하지만 이 사실을 설명하기는 몹시 껄끄러웠으니, 암컷에게 수컷을 쥐락펴락하는 불편할 정도로 적극적인 역할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발상이었고, 앞으로 2장에서 보겠지만 궁극적으로 다윈의 성선택 이론을 과학적 가부장제의 입맛에 맞지 않게 만들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다윈은 암컷의 선택이란 수컷들의 허세전에 ‘관중으로 서 있는’ 여성에 의해 ‘비교적 수동적’이고 덜 위협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말함으로써 여성의 영향력을 축소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다윈이 성을 적극적인 수컷과 소극적인 암컷의 이미지로 굳힌 것은 수백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한 마케팅 회사의 작품처럼 효과적이었다. 우리 뇌는 이런 깔끔한 이분법을 직관적으로 옳다고 판단하여 크게 반기기 때문이다. 옳거나 그르거나, 흑이거나 백이거나, 친구이거나 적이거나.
그러나 이런 편리한 성적 분류의 원조가 다윈은 아닐 터, 아마 그도 동물학의 아버지인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개념을 빌려왔으리라. 기원전 4세기에 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는 최초의 동물 연감이자 번식에 관한 논문인 「동물의 발생에 관하여On the Generation of Animals」를 썼다. 다윈이 이 기념비적 연구를 그냥 지나쳤을 리 없고,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성역할의 분담이 아주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두 가지 성이…… 있는 동물에서…… 수컷은 효율성과 적극성을…… 암컷은…… 수동성을 상징한다.”
암컷의 수동성과 수컷의 활력이라는 고정관념은 동물학 자체만큼이나 오래됐다. 그만큼 오랜 시간의 시험을 버텨왔다는 것은 수 세대의 과학자들이 계속해서 ‘옳다고 느꼈다’는 뜻이지만, 그렇다고 진짜 옳은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모든 영역에서 과학이 가르쳐준 한 가지가 있으니 직관은 종종 인간을 오도한다는 사실이다. 군더더기 없는 이분법적 분류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틀렸다는 점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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