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길
─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번화가.
‘유럽 여행’, 늦으면 못 간다. ‘젊었’을 때 가봐야 한다. ‘청춘’이라면 사서 고생해야 한다. 군 생활을 하던 내게 선후임 할 것 없이 유럽 여행에 대한 낭만을 떠들었다. SNS에는 유럽 여행으로 청춘을 즐긴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치 이국땅 한번 안 밟아보면 청춘 취급을 안 하려는 것 같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에 한번 아파보려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아프려면’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군대를 전역하고 나도 한번 ‘아파보려고’ 돈을 벌고자 했다. 전역과 동시에 휴학을 하고 백화점에서 일을 했지만 돈이 모이지 않았다. 박봉에 돈 쓸 일이 많았다. 일을 그만두고 쉬던 중에 가로수길에 있는 친구 아버지 가게에 직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월급 200만 원’이라는 말에 바로 연락을 했다. 그때는 ‘월급 200’만 눈에 들어왔으니까. 돈 쓸 시간도 없었기 때문에 세 달 만에 목표했던 돈을 모았다. 나도 이젠 ‘아플’ 수 있겠지. 용기를 내 500만 원을 들고 유럽으로 떠났다.
‘아픈 청춘’은 유럽에 다녀온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유럽 여행을 다녀오니 빈털터리가 되었다. 드디어 나도 한번 ‘아파본’ 청춘이 되었는데, 청춘은 계속 아파야 하는 존재였다. 당장 복학을 해야 했고 돈이 필요했기에 나는 다시 신사동 가로수길로 일을 나갔다. ‘사장님’, ‘저기요’, ‘여기요’, ‘소주/맥주요’, ‘주문이요’, ‘오빠’, ‘아저씨’, ‘총각’… 오후 5시부터 새벽 5시까지 내 호칭은 다양해진다. 보통 데이트 코스나 쇼핑거리, 젊음 등을 떠올리는 그 거리에서 나는 제일 먼저 ‘손님’을 떠올린다. ‘청춘’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나는 그 청춘들을 맞이하는 또 다른 ‘청춘’이 되었다.
정말 다양한 손님들을 많이 봤다. 데이트 코스답게 연인들도 많이 오고, 잠재적 연인들과 잠재적 남남도 많이 왔다. 다양한 방식으로 배설물을 쏟아내는 사람도 있었고, 멱살을 잡다가 가게를 부순 사람도 있었고, 술에 취해 남의 물건을 가져간 사람도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풀어내고 고된 하루를 달래고 다음을 기약하는 곳. 나는 가로수길의 ‘여기요’이고 ‘저기요’였다. 복학만 하면 밤 생활은 청산해야지 이제 밤에 달이랑 살지 말고 낮에 해랑 살아야지. 그러나 방학이 되면 나는 다시 달을 찾아 신사동 가로수길로 갔다.
오후 5시부터 새벽 5시까지. 해질녘 출근해서 동틀 무렵 퇴근하는 게 썩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출근 때 차로 가득했던 강남대로는 퇴근 때 공허한 신호등 빛만이 도로를 채우고 있었고, 사람으로 가득했던 가로수길이 고요해지는 것도 볼 만했다. 새벽 첫차에 사람이 가득한 걸 보고 나 같은 사람이 적지 않구나 하며 위로를 얻었고, 다들 힘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주일에 하루만 쉬니 돈도 금방 모였다. 저녁 7시부터 9시, 밤 10시부터 12시 피크타임만 지나면 크게 할 일도 없었다. 혼자 일하니 마치 내 가게 같았고, 금토에 일 도와주러 오는 형도 좋은 사람이었고 마찰도 없었다. 술을 파는 곳 치고 진상 손님이 잦은 것도 아니었다. 손님 없는 일요일이나 한가한 시간대면 핸드폰을 보고 있거나 가게 티브이를 보거나 옆 가게 사장님과 시시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퇴근하고 샤워하고 잠자리에 들면 하루가 너무 뿌듯하고 보람찼다. 그렇게 나는 가로수길의 한 부분이 되어갔다.
오후 5시부터 오전 5시까지. 겨울엔 해를 보기 어렵고, 여름엔 해가 중천일 때 나가서 해가 뜨면 집에 들어왔다. 새벽 첫차에 몸을 싣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새벽 퇴근인데도 사람들 틈바구니에 눌려 간다는 게 싫었고, 밤새워 놀다가 첫차를 탄 사람을 보면 짜증부터 났다. 일주일에 하루만 쉬니까 사람 만날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 하루는 혼자 휴식을 취하는 데만 써도 모자랐다. 저녁 7시, 밤 10시만 되면 사람이 싫어진다. 저들에게는 ‘불금’, ‘불토’가 나에겐 불지옥이었다. 혼자 있으면 외로웠고, 사람으로 가득 차면 죽을 맛이었다. 금토에만 추가로 직원을 붙여주는 사장님이 야속했다. 이 시간대의 술집은 진상 천국이다. 문만 열고 들어와도 진상이고, 술을 많이 먹어도 진상이고, 안주만 먹고 있어도 진상이다. 한가한 시간대면 여기서 내 젊음이 이렇게 소진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옆 가게 알바 형이랑은 눈으로 손님 욕을 주고받았다. 퇴근 후 샤워하고 누우면 몇 시간 후에 또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 ‘염병’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 ‘청춘’은 이렇게 월 200만 원짜리가 되었다.
‘학기 중에는 공부에 집중하자. 기숙사에 있으면 공부만 해도 될 거야.’ 그러나 주말이 되면 나는 또 손님을 맞이하러 가로수길에 갔다. 주말의 가로수길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신사역 8번 출구로 나와 각자의 이유로 가로수길에 진입한다. 내가 일하는 가게만 해도 하루에 수십 명이 오간다. 다양한 사람들이 더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태운다. 술을 마시면 사람들의 입에서 불만 섞인 이야기들이 터지기 시작한다.
취기 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은 “내 얘기 좀 들어봐”다. 평소 얼마나 ‘내 얘기’를 듣는 사람이 없으면 취기를 빌려 ‘내 얘기’를 들어보라고 하는 걸까. 네 명이 앉아 서로에게 “내 얘기 좀 들어봐”라고만 하니, 정작 듣는 사람은 없고 말하는 사람만 생긴다. 그렇게 술집에 있는 손님들의 목소리는 커진다. ‘내 얘기’들은 공감하지 못한 채 허공으로 흩어진다. 다 타버린 담배꽁초, 비워진 술병, 먹다 남은 안주 등으로 남겨진 그 흔적은 당연히 술집의 시급 얼마짜리 청춘이 치운다. 이제는 한 손에 술병 예닐곱 병은 기본으로 나르는 어느 휴학생 말이다.
금토일 밤을 새고 학교에 가면 월요일은 수업만 듣고 잠만 잤다. 화수목에는 어떻게든 다시 낮 시간에 적응해도, 금토일에는 어김없이 가로수길에서 야행성이 되었다. 토요일 오전에 스터디라도 있으면 두 시간만 자고 출근하기도 했다. 일하다 터진 코피가 서빙하는 음식에 들어가 다시 내놓은 적도 있다. 일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그만둘 수 있었다. 여유가 생겨서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취업 준비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금요일에 알바 해라’라고 찍힌 문자가 왔다. ‘해줄 수 있냐’, ‘시간 되냐’ 정도만 되었어도 가로수길로 향했겠지만, 일방 통지 같은 문자에 이제 더 이상 일할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나의 알바는 그렇게 누군가에겐 당연해졌나 보다.
가로수길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 강남대로 건너편에는 높은 건물들이 즐비하다. 다양한 직급, 다양한 직종, 다양한 정규/비정규 노동자들이 가로수길과 길 건너 높은 빌딩을 채우고 있다. 손님을 제외해도, 가로수길에서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소규모 영업장인 옆 가게 사장님부터, 자기 꿈이 있었던 그 가게의 알바 형, 사장과 싸우고 그만둔 다른 가게 형, 작은 가게로 시작해 몇 군데 체인점을 둔 사장님, 하루 8만 원을 받고 주방보조를 나왔던 파출 아주머니들, 장성한 손자를 둔 주방이모, 일 해보겠다고 왔다가 하루만에 그만둔 직원, 술 대여섯 짝을 등에 짊어지고 오던 주류업체 직원들, 한겨울에 술집 곳곳을 돌며 주류 판촉을 나왔던 ‘처음처럼’과 ‘참이슬’ 청년들… 그들에게는 각자의 이야기와 각자의 불만이 있다.
12명이 휩쓸고 간 테이블을 3분 안에 치우고, 다음 손님을 받고, 양손 가득 빈 병을 나르고, 한 손에는 안주, 다른 손에는 여러 테이블의 술을 들고, 포스기에서 뛰쳐나오는 각종 오류들과 씨름하면서 주문을 받는 동시에 계산을 하고, 새로 온 손님들을 위해 테이블을 치우고 다음 세팅을 하는 나는 정작 대학생이다. 하지만 공부하고, 발표하고, 자료조사를 하고, 시험보고, 과제하며, 연애하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나는 가로수길의 알바생이다. 나는 친구들과 술을 마셔도 테이블 벨소리에 눈을 돌리거나, 손님을 맞이하고 안주를 서빙한 뒤 조별 과제 단톡방에서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이들은 최저임금이 오르면 많은 청춘들이 취업의지를 상실하고 알바로만 생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한다. 알바를 잘 대우해주는 것이 마치 세상의 모든 직업정신을 무력하게 만들 것처럼 얘기한다. ‘알바도 능력’이고 ‘알바를 리스펙’하라는 광고와 달리, 알바는 그저 한낱 알바일 뿐이다. 그러면서 우습게도 알바에게 ‘직업정신’, ‘서비스 정신’, ‘희생’, ‘근로’를 요청한다. 그 일을 하는 이유와 그 일의 가치는 외면당한 채 수많은 알바 노동자들은 ‘시급’으로만 존재 가치가 표현된다. 그러나 내가 그랬듯 그들 역시 인간의 존엄함을 지닌 노동자이며, 각자의 삶을 위해 고단한 하루를 살아내야 사람들이다.
가로수길에서 나는 가장 뜨거운 안주와 가장 차가운 술을 서빙했다. 차가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뜨겁게 하루를 살아내고 식어버린 사람들에게 열기와 취기를 대령했다. 뜨겁게 달궈진 그들은 나름의 불만을 토해냈다.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의 한편에는 공감할 수 있는 불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임금으로 표현된 사람들이 삶을 채워 넣으러 오는 곳. 나는 가로수길의 술집 알바 노동자다.
신진호(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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