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불의 게임을 하는가
처음에 나는 그 사진 속 인물이 해수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 벽보에 붙은 CCTV에 찍힌 사진을 보고 사진 속 인물이 해수일 거라고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나는 두번째 그 벽보를 본 순간 해수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고, 세번째로 봤을 때 해수라고 확신했다.
퇴근해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컬러 벽보 사진을 다시 마주쳤을 때 오늘은 기필코 해수에게 물어보고 말리라 결심했다. A4용지 제일 윗줄에는 ‘긴급 공지문 : 방화범을 찾습니다’라는 문구가 굵은 고딕체로 쓰여 있었다. 그 아래로 방화 장면, 발화 중, 소화 장면, 피해 상황을 담은 사진 네 장이 실려 있었다. 방화 장면 사진에는 발목까지 오는 검정색 롱패딩을 입고 패딩 모자를 쓴, 초등학생 정도의 체격을 가진 사람이 무언가를 휙, 정원수와 잔디밭으로 던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사진 아래에는 ‘3월 25일 오전 1시 53분경 1게이트 뒤쪽 놀이터에서 화재가 발생함. 방화범을 아는 사람은 아파트 관리사무실이나 경찰서로 신고해주십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아파트 현관문을 열기 전에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내뱉었다. 해수는 자신의 방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현관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을 텐데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해수는 항상 그랬으니까 크게 이상할 것도 기분 나쁠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방화범이 해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니 그 아이와 간신히 이어져 있던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지는 것 같았다.
나 혼자 살고 있는 아파트에 해수가 오게 된 것은 3월 개학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났다. 현관문 비디오폰을 보려고 일어서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엄마였다. 네 육촌 동생이 곧 갈 거야. 이름은 조해수. 당분간 네 집에서 지내야 해. 설명은 내일 할게, 하고는 엄마는 먼저 전화를 끊었다.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게 한마디 말도 없이 육촌 동생이라는 아이를 집에 들이라고 하다니. 나는 여태 육촌 동생이라는 아이의 존재를 한 번도 떠올려본 적이 없었다. 엄마에게서 두어 번 그 아이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지만 귓등으로 들어서인지 이야기는 휘발되고 남아 있지 않았다. 엄마는 무슨 일이든 일방적으로 진행하지. 휴, 짜증이 섞인 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초인종이 계속 울려 문을 열었다. 키가 작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제 등짝보다 배로 큰 백팩과 캐리어 가방 하나를 가지고 서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 아이를 집에 들였다.
다음 날, 좀 일찍 퇴근해서 엄마가 일하는 K 유적지 사무실로 찾아갔다. 나와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엄마 집이 아닌 내 집으로 해수를 밀어 넣은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전화로 따질 문제가 아니었다.
“은혜 이모 기억나니? 은혜의 딸이 해수야. 해수와 너는 육촌지간이고. 해수는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했어. 서울에서 대입학원 다닐 거란다. 주연이는 은혜를 이모라고 불러야 하고, 해수는 나를 이모, 주연이를 언니, 라고 부르면 돼.”
엄마가 서로의 호칭과 촌수에 대해 부산스럽고 길게 소개했지만 나는 그런 것은 궁금하지 않았다. 단지 해수라는 아이가 왜 내 집에서 당분간 지내야 하는지 그 이유가 알고 싶었다.
엄마가 작년에 김 교수라는 남자를 집으로 데리고 와 함께 살겠다고 선언한 날, 나도 엄마에게 집에서 독립하겠다고 말했다. 불과 십 개월 전까지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집에서 엄마의 남자와 단 하루도 함께 있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는 그를 꼬박꼬박 김교수님이라고 불렀는데 오래전, 그러니까 엄마의 남자가 삼십대 때, 지방의 어느 대학교에서 강사 생활을 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나는 독립을 선언한 후, 작은 아파트를 월세로 얻어 혼자 살게 되었지만 쓸쓸하지도 않았고 집 안에 적막감이 돌지도 않았다. 먼 친척에게 방 하나를 세놓을 만큼 궁핍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방 하나를 누구에게 그냥 내어주고 챙길 만큼 여유로웠다는 말은 아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받던 공무원 연금의 절반이 매달 엄마의 계좌로 또박 또박 입금되어 엄마를 경제적으로 부양해야 할 일은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엄마는 문화유산 해설가로 활동하며 용돈 정도는 손수 해결했는데 엄마의 남자(나는 그 남자를 그렇게 명명했다)와 함께 살고 있는 마당에 내가 엄마를 걱정할 일은 없었다.
글쎄, 엄마에 대해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엄마에게 좀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다. 그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생긴 것들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다른 남자와 사실혼 관계가 된 엄마를, 아버지의 연금을 계속 타기 위해 혼인신고는 일부러 하지 않은 엄마를 담담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폐암으로 팔 개월 동안 투병 생활을 하다 돌아가셨다. 엄마는 그때 아버지가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엄마의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는 병원에 노모가 입원해 있던 처지였다.
“처음엔 해수가 우리 집에 와서 지내기로 했는데 내가 재혼한 거 알고는 은혜가 안 되겠다고 하더라. 그러니 네가 수능시험 칠 때까지만 좀 데리고 있어줘. 해수가 곧 대입학원 등록한다고 했으니 집에서 서로 볼 일도 없을 거야.”
엄마는 말을 마치자마자 내 기색을 살폈다. 나는 왜 내가 그래야 해, 라는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봤다.
“너는 고등학교 교사라는 사람이 어찌 그리도 차갑니? 해수도, 해수 동생 민혁이도 다 딱한 사정이 있어.”
엄마가 미니 냉장고에서 캔 식혜를 하나 꺼내 내게 건넸다.
“네 아빠 병원 계실 때 은혜가 병원비 보태라고 돈 봉투를 몇 번이나 놓고 갔어. 예전엔 은혜 아버지가 매년 농사지은 쌀을 우리 집에 한 가마니씩 보내줬고. 은혜 아버지가 농사를 그만둘 때까지 쌀을 보내왔으니 몇십 년 동안 그렇게 해온 거야. 요즘 생각해보니 그런 일,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더라. 그게 내내 고맙더라고.”
엄마가 옛 생각에 잠긴 듯이 눈을 반쯤 감은 채 창문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창문 너머로 외국인 관광객 무리가 매표소 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엄마는 관광객을 맞을 채비를 하는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건 엄마 일이고. 기숙학원이라는 데도 있는데 왜 내 집으로 보낸 거야? 은혜 이모네 공장 잘된다면서? 공장 바로 옆에 전원주택도 크게 지었다면서? 그런데 딸한테 오피스텔 하나 얻어줄 형편 안 돼?”
뾰족한 어투로 엄마에게 대들다시피 물었다.
“너도 참, 은혜가 해수를 혼자 두기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대. 은혜가 해수도 자기도 절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이라고 하더라.”
나는 더 이상 엄마에게 따지지 않았다. 그제야 무슨 상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절벽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심정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수는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다가 방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노트북으로 돌렸다. 해수는 언제나 저런 식이었다. 말수가 적었고 표정이 없었다. 편의점에 가는 길 외에는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다. 불안이 밴 눈빛을 감추기 위해서는 아예 표정을 지워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건지도 몰랐다. 해수는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밥하고 김치찌개 해놨어요, 하고 말했다. 어느 대학이든 아시아 어문 계열로 합격하는 대로 가겠다는 그 아이는 다음 달인 6월부터 대입학원에 다닐 거라고, 그동안은 인터넷 강의만 들을 거라고 했다. 그래, 곧 하루 세끼 식사를 학원 구내식당에서 하고, 밤 열한시가 넘어 집에 올 텐데 부딪힐 일이 거의 없겠지. 못마땅해도 조금만 참자는 생각이 들었다. 혹, 그저께 새벽에 나갔다 들어왔니? 그 시간에 어디 갔었던 거야? 편의점 갔었던 거야? 엘리베이터에 붙은 방화범 사진을 봤니? 하고 다그치듯 물어보지 않았다. 어차피 해수는 대답하지 않을 테니까. 내 방으로 들어와 길게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그 애가 오고부터 평온했던 일상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교사라는 내 직업에 만족했고, 엄마가 다른 남자와 동거에 들어간 상황도 어쨌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남자 친구인 상훈과는 순조롭게 결혼까지 이어질 듯했다. 걱정거리라고는 담임을 맡은 반 아이들의 성적이 좀 올라줬으면 하는 바람밖에 없었다. 해수가 오고부터는 상훈과 전화하는 시간도, 주말에 개그 프로그램을 보며 혼자 웃음보를 터뜨리는 일도 줄었다. 수험생이 제 방에서 꼼짝 않고 있으니 집 안 분위기는 점점 가라앉았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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