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어떤 틀에도 맞지 않는 아이
이누이트 문화처럼 유구한 문화에서는 얼핏 보기에 무척 이상한 문학 장르가 있다. 바로 탄생 또는 태내의 기억을 기록한 글이다. 어느 학회에 참석했다가 그 분야의 전문가인 베르나르 살라댕 당글뤼르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때의 일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한동안 그 만남이 자주 생각났다. 그는 그 문학 장르가 잊히기 전에 누나빅에서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나에게도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 있지 않다. 몇몇 영상이 떠오르긴 하지만, 정말 있었던 일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누나는 나보다 운이 좋아서 유년의 몇몇 순간을 기억한다. 그녀보다 덜 조숙한 이 남동생은 할 이야기가 하나도 없지만.
내 오랜 기억은 대부분 스위스의 풍광과 관련이 있다. 사람 혹은 누군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으며, 그나마 떠오르는 것도 윤곽만 희미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는 스위스가 여러 번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스위스 시민이 아니고 심지어 그 나라에 은행 계좌도 없다. 그저 독일어권 스위스 쪽 알프스산맥에서 보낸 긴 휴가가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형성했고, 그 시간을 아직 잊을 수 없을 뿐이다.
말은 못 하면서 중세 라틴어 문서를 읽는다고?
불교 승원에 입회할 때 지원자가 가장 먼저 받는 질문은 “당신은 사람인가 아니면 영혼인가?”라고 한다. 서구문화에서 ‘인간’을 정의하는 기준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언어 능력’을 중심으로 일종의 기준이 정립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기준은 무척 합당해보인다. 구체적으로 말해 내가 몇 년간 전혀 말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사람일까? 이 경우 자기실현적 예언을 하게 될 위험이 있다. 말할 능력이 없다고 판정된 아이는 대부분 말을 배울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그러다 보면 말할 능력을 영영 갖추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운 좋게도 말하는 법을 배었다. 내가 언제 말문을 뗐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오랜 시간 힘겨운 과정을 겪으면서 의사표현 능력이 서서히 나아진 것은 분명하다. 내가 예닐곱 살 때쯤에는 부모님과 누나만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내 말을 알아듣겠답시고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게 한 뒤 결국 ‘통역’해주기를 바라며 부모님을 바라보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린이에게 무엇을 요구하기에 앞서 ‘말하기’가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어른처럼 능숙하게 말하길 원하는가 아니면 그 나이에 걸맞게 말하길 원하는가? 맥락을 이해하길 원하는가? 그렇다면 대체 어떤 맥락을 이해해야 하는가? 쓸데없는 질문은 아니다. 어떤 어린이가 중세 라틴어 문서를 줄줄 읽고 심지어 그에 대한 주석을 글로 쓸 줄 알지만 말할 줄 모른다면, 그 아이는 저능아일까? 거기 더해 그 아이가 지금껏 중세 라틴어 문서를 한 번도 접한 적 없다면? 지금 우리는 오늘날의 학교교육이 당면한 문제로 서서히 다가가는 중이다. 굴렁쇠를 굴릴 줄 모르고 신발 끈을 묶지도 못하지만 미분 계산을 아주 좋아한다면, 그 아이는 학교에서 다음 학년으로 진급할 능력을 충분히 갖춘 걸까? 그 아이는 이른바 공부를 제대로 시작한 것인가?
나는 일부 자폐 아동들처럼 특이하지는 않았지만, 나만의 독특함이 있었다. 지금은 여유로이 웃어넘기는 일들이 그때는 하나같이 비극으로 다가왔다. 말할 때 겪는 어려움에 또 다른 문제들이 추가되었다. 나는 발성은 완벽했더라도 상대가 대체로 이해하지 못할 단어를 말하곤 했다. 별 이름 목록이 단적인 예다. 당신이 심리상담사라고 가정해보자. 누군가 자폐 아동을 당신에게 데려왔는데, 아이가 처음부터 이런 단어들을 말한다. “알니타크, 알닐람, 민타카.” 당신은 자폐증이 인간적인 의사소통을 저해한다고 여기면서 아이의 증상이 소아정신병에 해당한다고 진단할 것인가? 아니면 오리온자리의 허리띠를 이루는 별 세 개의 이름을 알아듣고 천문학과 관련된 소재를 꺼내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갈 것인가? 이는 내가 직접 경험한 상황이다. 심리상담사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말이다.
내 부모님의 친구인 어느 아주머니가 처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아주머니와 잠시 동안 단둘이 남겨졌을 때 그분에게 프랑스가 다시 왕국이 되지 않은 이유를 체코어로 물었다. 당연히 내가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한 후에야 그분은 내 의도를 이해했고,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와는 그런 대화를 나누지 않는 법이니까.
비슷한 기억이 하나 더 있다. 체코 태생인 부모님은 파리에 사는 체코인 소모임에 자주 참석했다. 나는 가끔 그 모임에서 관심사인 천문학에 대해 ‘주제 발표’를 하곤 했다. 나는 일고여덟 살 때부터 수년간 천문학에 푹 빠져 있었다. 어른들은 땅딸막한 꼬마가 이런저런 별의 특징에 대해 말하는 걸 재미있어했다. 어쩌면 아이가 흥분해서 떠든다고 생각하며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정신과 의사가 그곳에 있었다면 ‘정신병’을 이겨내도록 내게 약을 주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그 시기에 사회적인 담화, 즉 관계를 만들어내는 담화, 더 근본적으로는 말한 사람을 ‘정신이 온전한 인간’으로 보게 만드는 담화를 할 능력이 거의 없었다.
내 생각에는 글쓰기가 말하기보다 쉬운 것 같다. 움직임이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조절하는 일이 덜 까다롭기 때문이다. 원하면 속도를 늦추거나 멈출 수 있다. 글을 쓰기 위해서 키를 누르기만 하면 되는 자판을 얻기 전부터 그랬다. 내가 다른 자폐 아동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말하는 법을 체득하기 전에 읽고 쓸 줄 알게 된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내가 언제, 어떻게 읽고 쓰기를 배웠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몇몇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1983년 12월, 나의 만 2세 생일날어쩌면 성탄절일지도 모른다 집에 소포가 도착했다. 부모님의 친구들이 누나와 내게 선물을 보냈는데, 그중에는 평범한 남자아이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 트럭과 유아가 가지고 노는 작은 인형이 있었다. 지금도 우리 가족은 내가 그 털북숭이 작은 인형을 그린 그림을 가지고 있다. 서투르지만 내가 지금 끼적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솜씨다. 난 그 인형 그림에 탄생도착 날짜와 몇몇 단어를 적었다. 대문자 알파벳 몇 개는 거꾸로 썼다. 왼쪽과 오른쪽을 구분하는 것은 내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난 동쪽과 서쪽도 단번에 구분하지 못한다. 유럽 지도를 대충 알지만 누가 나더러 독일 서쪽에 있는 나라를 하나 말해보라고 한다면, 내가 지도에서 동쪽의 위치를 올바르게 떠올리는 몇 초 동안 그 자리에 껄끄러운 침묵이 감돌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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