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메로스의
눈먼 음유시인
호메로스는 서구 문학에서 가장 오래된 두 작품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호메로스는 눈먼 음유시인의 전통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그와 그의 삶에 관해서 알려진 것이 거의 없어 대다수의 학자는 눈먼 그를 전설상의 인물이라고 믿기도 한다. 호메로스에 관해 우리에게 전해진 대부분은 그가 살았다고 알려진 때로부터 수백 년 후에 나왔으며, 그가 장님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심지어 고대인들도 회의적이었다. 고대 그리스 말기의 철학자 프로클로스Proclos는 『호메로스 전기Life of Homer』에서 그런 의구심을 일종의 경구로 간결하게 표현했다. “호메로스가 장님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내가 보기에 정신적으로 장님이다. 호메로스는 그 어느 인간보다 더 또렷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비록 이런 식의 시각 중심주의눈이 안 보이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는 세계에 관해 명쾌하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는 훗날 밀턴부터 켈러까지 나머지 눈먼 작가에게까지 메아리치지만, 호메로스가 장님이었다는 생각은 변함없이 이어졌다.
호메로스 하면 떠오르는 위대한 서사시 두 편은 아마 기원전 8세기에서 7세기 사이에 지어졌을 것이다. 각각 트로이 전쟁 도중『일리아스』과 이후『오디세이아』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트로이 전쟁은 그보다 수백 년 전인 아득한 영웅시대의 일이었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이 두 편의 서사시는 수많은 음유시인이 수많은 판본으로 노래한 옛 전설과 이야기를 섞어 짠 일종의 태피스트리로, 그중 일부가 호메로스라는 저자의 이름으로 체계화되었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서구 문학 속 눈먼 음유시인의 전통은 호메로스의 이야기나 전기가 아니라 『오디세이아』 작품 자체에서 유래했다. 오디세우스가 알키노스 왕의 궁전에서 눈먼 음유시인 데모도코스Demodocos를 만난 그 순간은 다소 초월적으로 느껴진다.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이 허구의 눈먼 음유시인은 전설적인 눈먼 작가 호메로스를 대신한다. “그때 전령이 소중한 가인을 데리고 왔다. / 뮤즈 여신은 가인을 사랑하시어 좋은 것과 나쁜 것 두 가지를 그에게 주셨으니 / 그에게서 시력을 빼앗고 달콤한 노래를 주셨던 것이다.”
이 부분은 에밀리 윌슨Emily Wilson의 2018년 『오디세이아』 번역본에서 가져왔다. 이 유명한 장면은 서구 문화에서 계속해서 반복한 관념을 제시한다. 시적 재능은 물리적 시각 결핍에 대한 보상이라는 것이다. 시각 결핍과 시적 재능 모두 신에게서 나온다. 위대한 서사시의 서두마다 뮤즈에 대한 기도가 그 시인의 감수성을 선언하는데, 그 감수성은 눈이 아닌 귀의 문제이다. 시인은 뮤즈에게 보여달라고 호소하지 않는다. 대신에 들려달라고 호소한다. “말씀해주소서, 뮤즈 여신이여!”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오디세이아』를 읽은, 아니 읽기를 시도한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때는 시력이 안 좋아져 그다지 많이 읽지 못했다. 내 눈앞에 펼쳐진 건 끝없는 네모난 텍스트의 덩어리들이었고아마도 고등학생용으로 만든 신문 판본이었나보다., 겨우 몇 페이지를 읽는 데 몇 시간이 걸린 나머지단어들이 눈앞에서 흩어지는 바람에 거의 해독이 불가능했다. 나는 도저히 다 읽었다고는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과제물을 쓰기로 했다. 그 과제에서 난생처음으로 D를 받았고 정말 참담했다. 영어 우등생이자 한때 열혈 책벌레였던 나는 나의 실패를 선생님 탓으로 돌렸고 선생님을 미워했다. 내가 『오디세이아』를 끝까지 완독하게 된 건 여러 해가 지난 후,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타크루즈 캠퍼스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공부하면서였다. 삼나무 숲과 마리화나로 유명한 학교의 고전 전공자라는 기이한 존재였던 나는 그제야 비로소 온갖 복잡성과 모순 속에 놓인 눈멂을 처음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눈멂이 그저 내 미래의 재앙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기도 함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사람은 장애 학생 서비스 프로그램에서 과외비를 받고 나에게 특별 과외를 해주는 나의 그리스어·라틴어 개인 교사였다. 그가 물었다. “고대인들이 맹인을 시인이나 예언자로 숭배했다는 거 알아요?”
물론 그때쯤 나는 호메로스를 알고 있었지만, 그 눈먼 음유시인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을 수 있는지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집에서는 나의 CCTV나의 그리스어와 라틴어 텍스트를 1인치 크기 글자로 보여주는 17인치 모니터가 포함된 거추장스러운 확대 장치를 만지작거리고, 학교에서는 40포인트 크기로 인쇄된 단락의 두툼한 꾸러미그래도 여전히 읽기 힘들었지만, 수업을 따라가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를 들고 다녔으므로, 어쨌거나 나는 시인이나 예언자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확실히 나는 『오디세이아』에 제시되어 있고 서구 문학에서 계속 되풀이되었던 그 보상적 힘을 느끼지 못했다. 개인 교사의 그 말이 계기가 되어 내가 눈멂의 현실에 반대되는 은유적 눈멂을 해석하게 될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러나 나는 은유적 유형의 이 다른 눈멂이 어쨌거나 약간의 보상이 되리라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은유적 눈멂과 나를 동일시함으로써 내가 사춘기 내내 느꼈던 극심한 수치심을 누그러뜨리게 될 거라고 말이다.
열두 살 무렵부터 시각 손상과 관련해 내가 자주 느꼈던 감정이 바로 수치심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해낼 수 없는 일로 인한 수치심,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수치심, 도로 표지판을 보지 못한다는 수치심, 무엇보다 글을 읽지 못한다는 수치심. 만약 내가 다른 부류의 친구를 둔 다른 부류의 아이였다면, 캐치볼을 못한다는 이유로 낙담했을 것이다. 확실히 시력이 나빠서 놀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내 친구들은 대체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예술을 하고, 책을 읽고, 레코드점과 서점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부류였다. 나는 그들을 따라 샌프란시스코 클레먼트가의 중고 서점인 그린애플 주변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사방에서 느껴지는 오래된 종이의 친숙한 냄새를 들이마시고, 내가 알아볼 만큼 충분히 큰 어떤 단어, 이를테면 제목이나 저자 이름이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잘하면 그걸 사서 자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꼼꼼히 책 표지를 살피곤 했다.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나는 아주 큰 글자 정도는 아직 읽을 수 있었고, 표지를 보고 내 책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인쇄된 지면은 나에게는 그저 검은 잉크로 찍힌 장식적인 줄에 지나지 않았다. 단어 모양이 춤추는 것은 볼 수 있었지만, 아주 크게 확대하지 않으면 아무리 실눈을 뜨고 책장을 눈앞에 가져가더라도 단 한 단어도 읽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CCTV와 음성 출력 컴퓨터, 나중에는 점자 디스플레이까지, 오늘날 디지털 서적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준 온갖 테크놀로지를 알기 전, 심지어는 열여덟 살 때 오디오북을 알기도 전의 내가 『오디세이아』를 읽을 수 없었다는 사실은 눈먼 호메로스 전통의 핵심에 있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라고 전해지는 책들은 먼 옛날 구전되던 것을 글로 옮겨 적은 텍스트이다. 문자가 구술 전통을 지배하면서, 눈먼 작가는 고사하고 눈먼 독자가 존재하기는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런 현실은 18세기와 19세기에 돋음 문자에 이어 점자가 발명될 때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눈먼 작가가 사업 도구다른 작가의 작품과 글쓰기 수단를 얻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정말입니다.” 보르헤스는 세상을 뜨기 1년 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눈멂의 장점은 크게 과장되어왔어요. 만약 내가 볼 수 있다면,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나를 둘러싼 수많은 책을 읽으며 집 안에서 지낼 겁니다. 이제 그 책들은 내게는 아이슬란드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죠. 그래도 아이슬란드에는 두 번이나 가봤지만, 내 책에는 영원히 가닿지 못할 거예요.”
이 말이 가슴 아프다. 더구나 한때 아르헨티나국립도서관 관장을 지냈고 난해하게 빚어낸 서적 지향적 이야기 「바벨의 도서관」을 쓴 사람에게서 나온 말이라니 더욱 가슴이 저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놀라우면서 기묘한데, 이 말이 읽는 능력을 상실한 후에도 오래도록 화려한 경력을 누렸던 사람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설사 눈멂의 장점에 관한 보고서가 실제로 과장되어왔다 해도 보르헤스 자신은 결백하지 않다. 그는 에세이 「눈멂」에서 설명한다. “눈멂은 내게 완전한 불행은 아니었다. 눈멂을 동정의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삶의 한 방식, 삶의 스타일일 뿐이다.” 이 말을 옮기고 보니 장애 문화disability culture를 구체화하는 데 이바지한 배우이자 극작가 닐 마커스Neil Marcus의 구호가 생각난다. “장애는 용감한 투쟁도 아니요 ‘역경에 맞선 용기’도 아니다. 장애는 하나의 기예art이다.”
보르헤스는 “맹인이 된다는 것에는 장점이 있다.”라고 단언함으로써 이런 생각의 맥락을 이어나가고, “어느 정도의 거짓과 어느 정도의 오만함으로 『어둠을 찬양하며In Praise of Darkness』라고 제목을 붙인” 또 다른 책을 포함해 많은 재능으로써 그 장점을 인정한다. 이어서 그는 “이제 나머지 사례, 빛나는 사례를 이야기”한다. 그는 “시와 눈멂의 우정을 보여주는 확실한 예이자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 불리는 인물인 호메로스”로 시작해서 “눈멂은 자발적”이었다는 밀턴과 “영어에 새로운 음악을 안겨준” 조이스 등 우리가 이 책에서 만나게 될 인물을 언급한다.
(본문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