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시대의 대학에 바치는
뒤늦은 진혼곡
대학, 고뇌하는 지식인의 고향
안은 눈을 맞고 있는 어느 앙상한 가로수 밑에서 멈췄다. 나도 그를 따라서 멈췄다. 그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김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살짜리죠?”
“난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두 그건 분명합니다.” 그는 고개를 한번 갸웃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그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김승옥의 단편 「서울 1964년 겨울」의 결말 부분이다. 대학원생 ‘안’과 구청 직원인 ‘나’는 지난밤 우연히 만나 술잔을 나누며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눈 사이다. 나중에 합류한 우울한 ‘사내’는 밤사이 여관방에서 자살했다. 사태가 시끄러워지기 전에 빠져나가던 둘이 나누는 대화다. 1960년대 지식인의 허무주의, 개인화되고 소외된 삶을 문제화한 대표작으로 꼽힌다.
여기까지가 이 유명한 소설에 대한 표준적인 설명이리라. 나는 그보다든 이 허무주의에까지 깃들어 있는 지식인의 중압감에 주목하고 싶다. 대학원생 안은 겨우 “스물다섯살짜리”인 주제에 이 중압감에 “너무 늙어버”렸다. 안의 개인사나 심성은 알 길이 없다. 안은 그 시대 대학원생, 나아가 지식인의 표상이다.
1964년의 대학원생 안이 그렇게 특이한 존재는 아니다. 그는 20세기 한반도에서 장기 지속한 지식인의 어떤 존재양식, 즉 ‘고뇌하는 지식인’의 전형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 군상들은 어떤 모습일까? 잠시 일별해보자. 서울 전문학교에 유학을 가서 철학을 공부하던 최영진은 3·1운동으로 체포되어 고문당하고 미친 것으로 여겨진다나운규 『아리랑』. 김희준은 도쿄의 대학에서 고학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소작농이 되고 농민운동에 뛰어든다. 이윽고 노동운동과 연대하며 성장해간다이기영 『고향』. 남에도 북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철학과 대학생 출신 전쟁포로 이명준은 결국 제3국행을 선택한다최인훈 『광장』. 1990년대의 소시민 ‘나’는 어느 날 우연히 맞닥뜨린 허름한 옛 여관 앞에서 시대와 불화하던 1980년대의 대학생 ‘나’를 회고한다김소진 「경복여관에서 꿈꾸기」. 실천하든 회피하든 심지어 미치든, 그들은 천형처럼 시대를 고뇌했다.
교수라고 달랐을 리는 없다. 1938년 연희전문학교 상과 교수 백남운, 이순탁, 노동규는 학생들과 함께 만든 ‘연희전문 경제연구회’ 사건으로 구속되어 실형을 살았다. 형기를 마치고도 복직하지 못했다. 1967년 서울대 문리대에서는 ‘민족주의 비교연구회 사건’으로 지도교수 황성모사회학과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구속되어 처벌받았다. 유신 반대 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옹호하던 서울대 법대 교수 최종길은 1973년 중앙정보부에 출두하여 조사를 받던 중 의문사했다. 1980년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비판적인 교수 수백명을 대학에서 해직했다. 이들은 재야 지식인이 되어 학생들과 함께 공부터를 마련했고, 체제에 대한 체계적 비판에 나섰다.
고뇌하는 지식인이 난데없이 나타난 것은 아니다. 이런 존재양식을 떠받친 것은 대학, 정확히는 근대의 대학이라는 제도적 기반이었다. 근대의 대학은 권력과 지위, 돈 같은 실용적 목적을 추구하는 곳이기 이전에 진리 탐구의 전당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 위에 설립되고 유지됐다. 근대를 대표하는 대학들이 내세우는 표어들만 봐도 진리의 위상은 압도적이다. ‘진리’하버드대학, ‘빛과 진리’예일대학 같은 표어들, 거기서 영향을 받은 ‘진리는 나의 빛’서울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연세대, ‘자유, 정의, 진리’고려대 같은 표어들이 모두 그렇다. 중세에 세워진 더 오래된 대학들이 대개 종교적인 표어를 갖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진리를 탐구하는 ‘상아탑’ 모델로서의 대학 제도 위에서 고뇌하는 지식인이 태어나고 번성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왜 진리를 탐구하면 고뇌하게 될까? 진리 탐구가 즐거운 일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근대 대학이 제도화되던 19세기라는 시대의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 종교적 진리의 절대성이 의심스러워지고, 변덕스런 인간의 욕망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으로 부상하던 시절이었다. 불변하는 진리의 위상은 가없는 것, 위태로운 것이 되었다. 카를 맑스Karl Marx는 「공산당 선언」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 시대의 정신을 이렇게 묘사한 바 있다.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에 녹아내리고, 신성한 모든 것은 모욕당한다.”
견고하고 신성한 모든 것이 덧없이 사라지는 세상에 진리를 붙들고 탐구한다는 건 어떤 일인가? 자신이 찾은 진리 또한 언제든 덧없어질 수 있다는 위험을 스스로 감수한다는 것이다. 신이나 다른 권위에 의존하지 않은 채 스스로 감히 인식하려 드는 것, 인식의 주체를 자임하되 그 한계까지 인정하는 것, 그로써 진리 인식이 수반하는 책임과 고통까지 스스로 감수하는 일이 진리 탐구의 본질이 되었다.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이라는 소논문에서 칸트가 계몽이란 ‘정신적 미성숙 상태를 벗어나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을 때 함축하는 바가 대략 이런 것이었다. “감히 알려 하라!”Sapere aude!
거짓이 횡행하고 모든 것이 덧없어지는 속된 세상에서 위험을 무릅쓰며 진리를 탐구하는 것, 혹은 진리를 위해 싸우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것, ‘고뇌하는 지식인’을 둘러싼 낭만적 서사다. 그런 대학의 신화시대는 사라진 지 오래다. 왜 사라졌을까? 되살리는 게 가능할까? 우선은 그 대학이 사라지던 무렵의 이야기를 잠시 돌이켜보자. 뜨겁게 진리를 탐구했다던 마지막 시절의 이야기는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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