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가구는 시대 그리고 당대의 산물이자 나만의 작은 문명이다.
올여름 한동안 ‘경수진 인테리어’가 화제였다.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그것과 관련된 블로그와 기사뿐 아니라 쇼핑몰 상품까지 등장했다.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배우 경수진의 룸 인테리어가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MZ세대가 주도하고 있는 온라인 리빙몰 ‘오늘의 집’ 앱 다운로드 횟수가 2천만을 넘었다.
그뿐인가? 국내에 상륙한 지 7년이 지난 이케아는 4개 매장에서의 매출이 6,600억이라고 한다. 또한 선진국 중에서도 선별된 국가에만 있다는 ‘더콘란숍’이 2019년 1호점에 이어 작년에 2호점을 냈다.
이처럼 요즘 가장 핫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중 하나는 단연코 리빙 트렌드다. 여기서 리빙Living의 의미는 주거와 관련된 생활양식과 공간 문화 모두이다. 그래서 ‘홈리빙’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유가 뭘까? 당연하겠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상황 탓이 가장 크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자, 기존의 의식주에는 물론 집과 방을 꾸미는 데도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힐링, 여가 등 주로 밖에서 이루어지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역시 집으로 들어왔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는 홈리빙이 쇠퇴할 것인가? 보복 소비로 인하여 잠시 주춤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계속해서 발전할 것으로 본다. 현재 홈리빙 열풍은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에도 이제야 자기 취향을 찾는 문화가 도래한 데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배고프던 1960~70년대, 굶지 않아도 되던 1980년대 그리고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1990년대를 지나 이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1인당 GDP 1만 달러를 넘었던 1990년대에 재즈 음악이 유행했고 2만 달러 시대인 2000년대에는 와인 신드롬이 일었다. 그리고 3만 달러를 넘어서자 캠핑 붐이 불었고 최근에 와서는 서핑과 요트같이 낯설던 레저 문화까지 보편화되어가고 있다. 리빙 문화에 대한 관심 역시 이 시점에서 꽃피고 있다.
특히 홈리빙 문화는 남들에게 과시하고 자랑하려는 외적 동기보다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취향을 만끽하려는 내적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즉 내가 사는 집에 관심을 가지며 잘 꾸미고 관리한다는 것은 ‘나만의 작은 문명’을 만드는 일이자 ‘개인이 주체가 되는 문화’를 누리는 것이다.
물론 전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홈리빙에도 트렌드를 좇거나 거기에 영합하는 소비문화 역시 존재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나의 디자인 사조로 일관한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이 홈리빙 시장을 지배했다. 그것도 거의 10년 가까이 말이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반부터 약 10년 동안은 화이트 색상의 앤티크 가구와 벽지가 온 집안을 도배했고 그 뒤를 이어서 스칸디나비안 디자인, 즉 북유럽 스타일의 가구와 인테리어가 트렌드의 정점에 올랐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같은 조형과 색상을 가진 한가지 스타일로 방이나 거실을 꾸몄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미드 센추리 모던 디자인이 가장 핫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공간에 수용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 소비자들은 거시적 콘셉트만 따를 뿐 디자인, 소재, 색상, 브랜드가 모두 다른 다양한 것들을 한데 모아 그들의 공간을 꾸민다. 거기에는 개인의 취향, 즉 자기만의 큐레이션이 들어가 있다. 대세를 따르지만 개성과 다양성이 갖춰진 것이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이러한 변화의 원인 무엇인지 궁금했다. 살펴보니 그 중심에는 개성, 자기표현, 다양성, 삶의 질, 사회윤리 등을 삶의 가치관으로 삼고 있는 MZ세대가 있었다.
세상이 변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가 세상의 중심에 선 것이다. 사실 과거 세대는 그대로 있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수용하거나 그 변화에 동참할 뿐이었다.
그런데 몇 세대를 거치면서 이룩한 경제적 풍요로움 하나만으로 이들이 탄생한 것일까? 아니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고수해왔던 공동체 문화에서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개인주의 문화롤 변화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예술,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갈구하는 절실한 욕구가 있었고, 그것이 점차적으로 성취되어가는 과정에 변화와 발전이 뒤따르면서 어느새 지금의 자리에 도달한 것이다.
예를 들어, 워라밸일과 라이프의 밸런스에 대한 염원은 주 5일제 근무, 칼퇴근, 회식 문화 근절 같은 제도와 문화를 이끌어냈다. 그렇게 변화된 일상에서 남은 시간들은 취미활동이나 주말 레저와 여행 등을 즐기는 데 소비되었고 나다움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한 생각이 더더욱 공고해졌다. 물론 경제적 풍요 속에 가려진 소득 양극화, 개성과 다양성의 뒤편에 자리잡은 기울어진 공정성 등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의 양상과 흐름이 놀랍게도 수백 년 전 서구 사회와 너무나 닮았다. 신神 중심의 세계관으로 점철되었던 서유럽의 중세가 막을 내리자 인본주의, 즉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문화가 도래했으며, 근세에 들어 왕정 중심의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구체제이 몰락하자 도시의 상인이었던 부르주아계급이 중심이 되어 근대 시민 문화가 창출됨에 따라 지금의 자유민주주의의 토대가 완성되었던 것이다.
결국 개인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은 시민계급이 주축이 되어야 개성과 다양성의 문화가 그 사회를 누빌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 어떤 지점에 와 있는 것일까? 그것을 파헤치고 싶었던 심경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중략)
1장
리빙
나는 카페 같은 집에
산다
내가 이 카페를 자주 찾는 이유는 이곳에 오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 때문이지.
― 최양락(개그맨)
대한민국은 가히 카페의 천국이다. 도시의 대로는 물론이고 복잡한 미로 같은 골목길 어디에서든 카페를 찾기가 어렵지 않다. 현재 국내 커피 전문점 시장은 미국, 중국에 이어 43억 달러2018년 기준로 전 세계 3위라고 한다. 인구수를 감안하면 세계 1위라 해도 손색이 없다.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 검색을 해보면, ‘맛집’은 2,795만 개, ‘카페’는 3,230만 개가 나온다. 참고로 ‘커피’는 1,586만 개가 나온다. 카페가 커피를 능가하고 맛집 역시 넘어선다는 것은 카페라는 공간이 단지 커피를 마시기 위한 곳은 아님을 보여주는 셈이다. 사람들이 카페를 찾는 데에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어떤 사회학자는 이렇게 진단한다. 현대인의 대다수가 작은 집에 살고, 쾌적하지 못한 좁은 환경이 싫기 때문에 카페 같은 곳에 자주 가게 된다는 것이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수의 30%를 넘어서고, 여기에 2~3인 가구까지 더하면 전체 가구의 60%가 넘는다. 경제 사정이 아주 넉넉하지 않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작은 집에 사는 셈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분석 같다. 그런데 실제로 그럴까? 카페에 오는 이들을 자세히 관찰해보자.
일반적으로 방문객은 개인과 단체손님으로 구분된다. 그 비율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제각각이라 평균적인 수치를 말하기 곤란하나 어느 카페나 보통 1인 좌석이 적은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2인 이상의 방문객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사적 만남 혹은 비즈니스 미팅을 위해 찾는 이들로 구분을 할 수 있다. 특히 요즘은 코로나 방역의 일환으로 재택근무가 늘어나서 집 근처의 카페에서 업무를 보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목적에 따라 다시 분류할 수 있는데 개인의 경우 독서, 업무, 과제, 시간 때우기 등이 있고 2인이나 그 이상 단체의 경우 연애, 사적 만남, 비즈니스 미팅 등으로 다양하게 나눌 수 있다. 말하자면, 집의 좁은 공간에서 잠시 해방되기 위해 카페에 오는 경우는 매우 한정적일 듯싶다. 그렇다면 개인이나 단체가 카페를 찾는 궁극의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해석은 감성적, 심리적 만족을 위해 찾는다는 것이다.
카페의 기능적 목적은 개인이나 단체가 시간에 큰 구애 없이 편안하게 앉아 커피나 음료 따위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거나 환담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과거 부유한 가정의 거실을 응접실이라 불렀는데, 지금 말하는 목적과 부합된다. 저명한 언어학자 소쉬르의 이론을 잠시 빌리자면, 카페라는 말은 기능적 목적이 시니피앙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뜻하는 기표이 되는 것이고 시니피에내포된 의미를 뜻하는 기의는 감성 충족과 그에 따른 심리적 만족이 되는 것이다.
어떤 감성이 충족될까? 세련된 디자인의 인테리어와 가구가 어우러진 공간 미학을 만끽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창 유행하는 트렌디한 아름다움일 수도 있고 개인적 취향을 저격하는 멋일 수도 있다. 울창한 산림에 둘러싸인 자연 풍광을 테마로 잡았거나 미드 센추리 모던 인테리어와 가구가 중심이 된 레트로 스타일을 콘셉트로 한 카페를 예로 들 수 있다. 집이나 사무실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성적 만족감이 커피 한 잔 값으로 충족된다. 인테리어에 신경을 쓴 곳들은 대개 식음료의 가격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개인적 힐링이든 비즈니스 미팅이든 간에 자신이 원하는 기분좋은 장소를 선택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비용을 좀더 지불하는 것은 그다지 망설일 일이 아니다.
굳이 미적 가치가 높은 곳에 가는 것을 즐기는 편은 아니라도 남들에게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찾거나, ‘인싸’ 임을 과시하기 위하여 세련되고 호사스러운 카페를 찾는 경향도 있다. 이는 ‘상층계급의 두드러진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자각 없이 이루어진다’는 미국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의 ‘베블런 효과’라 불리는 과시적 소비에 가깝다. 사실 비싼 커피라 할지라도 대부분 1만 원 미만인지라 굳이 ‘과시적 소비’까지 들먹이면서 카페 문화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겠다. 정리하자면, 크게 사치를 하지 않는 선에서 다양하고 세련된 장소성을 만끽할 수 있고, 아울러 연애, 공부, 만담, 휴식 등 여러 용무까지 볼 수 있는 최고의 소비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카페를 찾는다고 할 수 있다. 커피 수요의 증가만큼이나 카페의 성장과 변화 역시 끊임없이 진화할 것이다.
그런데 작년부터 급속도로 홈인테리어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바로 사적 공간을 카페처럼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인데, 아무래도 코로나 방역의 영향이 가장 크다. 홈족이 늘자 홈인테리어, 홈카페 등의 키워드가 급상승했고 인테리어와 가구업체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소비자들의 여행과 외식 소비가 줄어들면서 돈을 집에다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맛있는 음식을 오랫동안 자주 섭취해왔다는 점이다. 무엇이 맛있고 좋은가에 대한 감별과 식별의 기준이 혀와 뇌리에 저장되어 있다는 소리다. 마찬가지로 멋진 카페를 자주 방문하고 그러한 인테리어에 관련된 정보를 많이 가진 이들은 자기 공간을 꾸미는 데 유리하다. 그래서 그동안 발품을 팔며 카페 인테리어에 관한 엄청난 이미지 정보를 디지털 사진과 뇌리에 간직했던 이들은 그 정보들을 하나씩 꺼내들며 자신의 공간을 꾸미기 시작했다.
가격이 꽤 만만치 않았던, 평소에는 카페에서나 눈요기로 감상했던 오리지널 빈티지 가구와 소품들을 큰맘 먹고 집에 들이기 시작했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범용 벽지와 바닥재 역시 과감히 없애버리고 마치 부암동의 작은 아틀리에에서나 볼 수 있는 운치어린 원목 바닥과 고색창연한 벽면의 느낌을 집에서 재현하는 것이다.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거나 자기 취향과 안목 위주로 집을 꾸미는 것 모두 선진적 라이프스타일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아파트, 빌라 같은 공동주택이 주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획일성에서 탈피함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내가 10대였던 유년기 시절에는 오후 시간대에 미국 드라마가 많이 방송됐다. 지금처럼 독자적인 미니시리즈 드라마가 없던 시절이었다. 드라마 속에 나오는 집의 내부는 부자든 가난한 자든 간에 당시 중산층의 표본이었던 나의 집 인테리어보다 훨씬 개성이 짙었고 호감이 갔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하고 있는 백인 청년의 집인데도 뭔가 세련되어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잡스러운 문양으로 점철된 벽지 대신에 깔끔하게 도장 처리된 흰색 벽과 1970~80년대 국내 방바닥을 장식했던 누런 장판과 달리 직물로 된 바닥 러그가 참 깔끔해 보였기 때문인 듯하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때 나의 로망이 서서히 우리 리빙 문화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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