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식품청의 수의직 공무원은 동물보호, 소비자 건강, 식품 업계의 규정 준수지원을 목적으로 식품 제조의 품질관리를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다채롭고 수준 높은 업무를 통해 보람을 찾고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스웨덴 국립식품청의 채용공고 중에서
1일
경비실 유리창 너머에 분홍 돼지인형이 앉아 있다. 나는 탁자에 팔꿈치를 올리고 숨을 한번 크게 쉰다. 눈앞에 연간보고서가 한 무더기 놓여 있다. 봉투마다 고기 한 조각과 로고가 그려져 있다.
정문 바깥에 트럭 한 대가 멈춰 서더니 기사가 운전석에서 손짓한다. 경비원이 커피를 한 모금 홀짝 마시고는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준다. 수송 트럭이 지나가는 순간 환기구 틈으로 돼지 코가 보인다.
“리나?”
이제부터 내 상사가 될 사람이 저기서 걸어온다. 내 손을 쥐는 그의 손힘이 세다. 경비원이 나의 인적사항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나는 내 출입카드 핀 번호를 고민해서 불러준다. 상사가 나를 데리고 정문으로 걸어가자 나는 출입카드를 기계에 읽힌다. 네 번 짧게, 한 번 길게 삑 소리가 나더니 철컥한다. 불이 초록으로 변한다. 나는 안으로 들어간다.
정문을 들어서니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넓은 터에 회색 함석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뭐라 콕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약간 큼큼한 냄새만 빼면 여기서 무엇을 생산하는지 아무도 모를 것 같다. 우리는 아스팔트를 깐 마당을 지나간다. 양쪽에서 트럭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오다 멀어진다. 우리는 살짝 내려앉은 사무실 건물을 지나간다. 저곳에서 몇 달 전에 면접을 봤다. 저 건물 벽에는 지금도 1998년도 작업계획표가 걸려 있다. 구내식당 앞을 지나가려니 익숙한 학생식당 냄새가 코를 찌른다. 들쩍지근한 소시지와 케첩 냄새. 마당을 지나 철계단을 올라 생산 공장 건물로 들어간다.
국립식품청스웨덴에서 식품의 안전관리를 감독하는 관청이다. 우리나라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이를 담당한다 ― 옮긴이 직원 휴게실에 동료 몇 명이 앉아 커피를 마신다.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게 커피를 가져다준다. 이름이 안데르스인데 나와 같은 수의사여서 오늘 내게 업무 안내를 해줄 참이다. 우리는 둘이 따로 다른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환영해요.” 안데르스가 미소를 짓는다. “근데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요?”
“예전부터 동물보호 쪽 일을 하고 싶었는데요……. 마침 이사도 해서 이참에 직장도 옮겨볼까 싶었어요. 여기 오래 계셨어요?”
“8년째죠. 나도 대체근무 왔다가 눌러앉아 버렸어요.”
탁자에는 종이 한 장이 놓여 있다. 오늘 우리가 살펴서 확인해야 할 문항이 가득하다. 그는 앞으로 내가 함께 일할 우리 팀에 대해 설명해준다. 수의사와 식품검사관이들은 도축장 직원이 아니고 국립식품청에서 파견한 공무원이다. 따라서 도축장에서 일하되 별도 소속이다. 우리나라에서는 7급인 수의직 공무원이 이 일을 맡는다 ― 옮긴이들로 구성된 팀이며, 이 지역의 도축장들이 주 담당 구역이지만 주변 지역까지 맡아 처리한다고 말이다.
“여기가 규모가 크니까 다들 여기서 먼저 일을 익히고 나서 차차 규모가 작은 곳으로도 나가요.”
그가 작업복 색깔 규정이 적힌 PPT 인쇄물 서류철을 내 손에 밀어 준다. 도축작업장에선 흰색, 휴게실에선 회색,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울 땐 빨간색 가운을 입는다. 안데르스가 근로시간을 일러둔 문단을 가리키며 말한다.
“수의사가 검사를 마쳐야만 도축이 시작돼요. 우리가 늦으면 전체 생산이 멈추죠. 잘못하면 손해가 막심할 수도 있어요.”
우리가 하는 일은 주로 돼지 검사다. 돼지가 실려 올 때 한 번, 돼지가 죽은 후 작업장에서 또 한 번.
“하차할 때 보는 게 제일 좋아요. 제 발로 못 걷는 놈들은 죽여야 해요.”
“수의사가요?”
“아니요. 우리가 그럴 필요는 없죠. 계류장수송 트럭에서 내린 돼지들이 도축되기 전 잠시 머무는 장소 ― 옮긴이 직원들이 알아서 해요.”
놀라 치켜올렸던 어깨가 안도감에 툭 떨어진다.
안데르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잘해요. 여기 직원들은 다들 능력자예요. 하긴 작은 도축장에 가면 안 그럴 때도 있죠.”
그가 커피 잔을 비우고 의자를 뒤로 민다.
“필요한 것을 몇 가지 갖다드리죠. 같이 계류장을 둘러봅시다.”
나는 옷을 한보따리 받는다. 탈의실에서 흰 바지와 셔츠로 갈아입고 위생모를 쓰고 귀마개가 달린 파란 소음방지 헬멧을 쓴다.
계류장으로 가는 길은 도축작업장을 지난다. 안데르스가 문을 연다. 순간 모든 것이 왈칵 한꺼번에 밀려든다. 동물들, 소리, 냄새…… 불과 0.5미터 거리에 돼지 몸뚱이들이 주르르 매달려 있다. 작업장 천장 레일에 붙은 고리에 돼지 뒷다리를 걸어 놓았다. 목 부분까지 척추를 따라 한가운데를 갈라놓아서 양쪽 몸이 V자를 그리고 있다. 눈을 감은 머리통들이 바닥에 닿을 듯 흔들거린다. 몸통 속은 비었고 선홍빛 피부는 매끈하다.
소음이 벽처럼 에워싸 답답하다. 웅웅웅 규칙적으로 울리는 기계 소음에 목청을 돋워 크게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금속이 부딪는 새된 소리가 섞여든다. 나는 돼지 얼굴을 안 보려고 애쓰며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입으로 숨을 쉰다. 따뜻한 몸과 체액, 세정제와 강철의 냄새가 뒤섞여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냄새가 풍긴다. 나는 안데르스를 따라 문 뒤편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소독한다. 그런 다음 작업장을 지그재그로 통과한다. 줄지어 매달린 돼지 몸통들과 파란 비닐 앞치마를 입은 남자들을 지나서. 직원 몇이 알은체하자 안데르스가 기분 좋게 인사를 받아준다.
도축작업장 반대편 끝으로 넘어와 고무커튼을 지나간다. 여기는 바닥과 벽이 다 검다. ‘검은 구역’이라 부르는 곳. 동물이 아직 동물인 곳이다. 영기선 흰 작업복 위에 초록색 가운을 걸치고 흰 장화를 검은 장화로 바꾸어 신는다. 계단을 다 내려가자 문고리에 피가 얼룩진 계류장 출입문 앞에서 안데르스가 걸음을 멈춘다.
“여기 들어갈 때는 주의해야 해요. 돼지들이 이동 중일 수 있거든요.” 말을 마치고 그가 문을 연다. 몰이통로로 들어서자 눈이 따가울 정도로 고약한 암모니아 냄새에 숨이 턱 막힌다.
계류장은 엄청나게 크다. 철창으로 나눈 돈방돈사에서 돼지들이 머무는 방 ― 옮긴이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벽과 바닥이 다 시멘트이다. 앞쪽 돈방 하나에 돼지 몇 마리가 다닥다닥 붙어 누워 있다. 눈을 꼭 감고 주둥이를 친구의 등에 올려놓았다. 우리는 가만히 서서 녀석들을 바라본다.
“제법 귀여워요. 6개월이면 사실 아직 애기죠.” 안데르스가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한 녀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옆에 누운 돼지 귀의 솜털이 바르르 떨린다. 한 녀석이 우리의 시선을 느꼈는지 벌떡 일어나 꿀꿀거리며 우리를 똑바로 쳐다본다. 금방 눈치채고는 다른 녀석들도 따라 일어선다.
“어쩌겠어.” 안데르스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걸음을 옮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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