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또 하나의
‘이름 없는 문제’
여성이 커리어를 추구하게 되면서 가정과 경제 사이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소득 격차를 넘어서 훨씬 더 큰 문제의 궤적을 이해하지 않으면 소득 격차의 근원에 결코 닿을 수 없을 것이다. 소득 격차는 더 큰 문제의 증상일 뿐이다. (…)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미국 경제에서 여성이 어떠한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 그것이 지난 한 세기 동안 어떻게 달라져왔는지 알아봐야 한다.(16~17쪽)
오늘날에는 어느 집을 봐도 일과 가정, 직업 세계와 가정 생활 사이에 균형을 잡느라 부부들이 이만저만 고전 중이 아니다. 이전 어느 때보다 더 그렇다. 우리 사회는 돌봄 영역caregiving이 현 세대와 미래 세대에게 갖는 중요성과 가치를 정신이 번쩍 들게 깨닫고 있다. 또한 우리 사회는 돌봄의 부담이 개개인에게 일으키는 전체 비용도 더 온전히 깨닫기 시작했다. 돌봄의 책임은 한부모 가정의 엄마나 아빠에게 특히 막대한 부담이 될 뿐 아니라, 다른 가정에도 소득의 상실, 커리어의 정체, 공평한 부부 관계를 희생해야만 하는 선택이성 커플, 동성 커플 모두 마찬가지이다과 같은 형태로 비용을 일으킨다. 코로나 전에도 몰랐던 건 아니지만, 코로나 상황에서 너무나 극명하게 체감되면서 이 문제는 이제 우리 사회의 긴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1963년에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은 대학 나온 여성들이 ‘전업맘’이 되어 느끼는 좌절을 묘사하면서 이들이 ‘이름 없는 문제’를 겪고 있다고 언급했다. 6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에는 대학 나온 여성 대부분이 직장에 다니지만, 똑같이 대학 나온 남자들에 비해 한참 못 미치는 소득과 승진을 보면서 여전히 옆으로 밀쳐지고 있다고 느낀다. 이 여성들도 이름 없는 문제를 겪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문제는 수많은 이름을 하고 등장한다. 성차별, 젠더 편견, 유리 천장, 마미 트랙mommy track, 육아 등을 위해 업무 시간과 일정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지만 승진 기회는 적은 일자리.―옮긴이, 린 아웃lean-out,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의 2013년 저서 《린 인Lean In》이 출간되면서 널리 쓰이게 된 표현으로, ‘린 인’은 조직에서 기회에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것을 의미하고 반대로 린 아웃은 임금 협상이나 프로젝트 배정 등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옮긴이 등등 숱하게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 문제는 즉각적인 해법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성이 경쟁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코칭을 제공하고 협상 기술을 교육하자’라든가, ‘경영진과 관리자의 암묵적인 편견을 드러내자’라든가, ‘기업 이사회의 성별 균형을 의무화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지켜지게 강제하자’와 같은 해법 말이다.
각지에서 여성들은 이러한 해법을 어느 때보다도 소리 높여 요구하고 있고, 그들의 문제제기는 전국의 뉴스 헤드라인과 수많은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자, 이제 여성들은 한층 더 강하게 밀어붙이면 되는가?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면lean in’ 되는가? 왜 여성은 승진 사다리를 남성만큼 빠르게 올라가지 못하는가? 왜 여성은 연차와 업무 경력에 걸맞은 수준의 보수를 받지 못하는가?
많은 여성을 묵직하게 따라다니는 좀 더 사적인 고민도 있다. 진지한 관계인 사람이나 배우자, 혹은 가까운 친구 사이에서만 털어놓는 고민이다. 내 커리어만큼 시간을 많이 쏟아야 하는 커리어를 가진 사람과 만나도 될까? 결혼도 너무 하고 싶고 아이도 너무 갖고 싶은데 나중으로 미뤄야 할까? 서른다섯까지 남자를 못 만나면 난자를 냉동시켜 두어야 할까? 아이를 키우게 되면 족히 수능시험 보던 때부터 쉬지 않고 닦아 온 야심찬 커리어를 접어야 할까? 그러지 않을 거라면, 아이 도시락은 누가 싸고 아이 수영 강습 끝날 시간에는 누가 데리러 가며 학교 양호 선생님한테서 걸려오는 다급한 전화는 누가 받을 것인가?
여성들은 계속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낀다. 그들은 남편보다, 또 남성 동료들보다 돈도 적게 벌고 커리어 경로에서도 뒤처진다. 여성들은 그게 여성들 본인 탓이라는 말을 누누이 들어왔다. 경쟁에 충분히 공격적으로 달려들지 않아서, 수완 있게 협상을 하지 못해서, 자기 자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아서, 주장한다 해도 충분히 요구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동시에 여성들은 그게 여성들 본인 탓이 아니라는 말도 누누이 들어왔다. 일견 여성들 스스로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게 맞다고 해도, 이것은 여성들이 이용당하고, 뒤통수 맞고, 차별당하고, 성적 괴롭힘에 노출되고, ‘남성들만의 클럽’에서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요인 모두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의 근원인가? 이 요인들은 다 합하면 남녀 사이에 발견되는 소득과 커리어상의 차이가 거의 다 설명되는가? 기적적으로 이 요인들이 전부 다 해소된다면 여성과 남성의 세상, 부부와 젊은 부모의 세상이 지금과 완전히 달라질 것인가? ‘또 하나의 이름 없는 문제’는 단지 이 요인들을 모두 합한 것인가?
공적인 장에서도 사적인 자리에서도 많이 이야기되면서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긴 했지만, 종종 우리는 젠더 라인을 따라 발생하는 불균등이 어마어마한 규모와 오랜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곤 한다. 문제 있는 회사를 하나 더 지적하고, 이사회에 여성이 한 명 더 들어가고, 소수의 진보적인 테크 업계 남성 임원이 육아 휴직을 쓰는 등의 해법은 흑사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반창고를 내미는 격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대응은 이제까지 성별 소득 격차를 없애지 못했다. 앞으로도 이런 대응이 젠더 불평등의 완전한 해법을 제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근원이 아닌 증상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대응만으로는 결코 여성들이 커리어와 가정을 둘 다 갖는 데 남성들만큼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남녀 사이의 페이갭pay gap, 임금 격차을 없애고 싶다면, 아니 줄이기라고 하려면, 먼저 더 깊이 근원을 찾아 들어가서 문제에 보다 정확한 이름을 붙여야 한다. 이 문제의 이름은 ‘탐욕스러운 일greedy work’이다.
내가 원고를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은 아직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있을 무렵이면 팬데믹이 수그러들었기를, 그리고 팬데믹을 거치며 혹독하게 깨달은 교훈을 우리 사회가 현명하게 활용하고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전 지구적인 감염병 재난은 몇몇 문제를 확대경처럼 키워 우리 눈앞에 드러냈고, 몇몇 문제를 더욱 가속화했으며, 아주 오래도록 곪아 있던 또 다른 문제들을 터뜨렸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일과 돌봄 사이의 긴장’은 코로나 팬데믹이 닥치기 수십 년 전부터 있었다. 사실 커리어와 가정을 둘 다 갖고자 한, 그리고 그다음에는 둘 사이에 균형을 잡고자 한 노력은 한 세기도 넘게 이어져 온 여정이었다.
20세기의 상당 기간 동안에는 여성이 커리어를 갖지 못하게 제약하는 장애물이 대체로 명시적인 유형의 차별이었다. 1930년대-1950년대의 자료들을 보면 고용과 임금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명백히 보여 주는 증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1930년대 말에 기업을 대상으로 이뤄진 한 설문조사에서 경영자들은 대놓고 이렇게 답했다. “대출 업무는 여직원에게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런 종류의 일자동차 세일즈을 하는 사람은 대중을 상대해야 하는데 (…) 여성은 사람들이 잘 받아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중개 회사는 여성을 세일즈 담당으로 배치하지 않습니다.” 이때는 대공황 말기였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노동시장이 ‘타이트’tight, 일자리보다 일하려는 사람이 부족한 상태.―옮긴이하던 1950년대 후반에도 경영자들은 아주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린아이가 있는 여성은 고용하지 않습니다.” “아기가 있는 (…) 기혼 여성은 회사 복귀를 독려하지 않습니다.” “임신은 자발적 퇴직의 사유가 됩니다. 자녀가 중학교 갈 나이쯤 되었을 때 복귀하는 것이라면 회사도 환영하겠지만요.”
1940년대까지도 기혼 여성의 고용을 제한하는 제도marriage bar. ‘결혼 퇴직’으로 흔히 번역되지만 이 책에서는 미혼 직원이 결혼하면 퇴직해야 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혼 여성을 채용 단계에서 배제하는 것도 포함하는 개념이어서 ‘결혼 퇴직’은 전자를 의미할 때만 사용했다.―옮긴이가 때로는 법으로, 때로는 회사의 정책으로 흔하게 존재했다. 그리고 결혼한 여성을 배제하던 제도는 임신한 여성을 배제하는 제도, 영유아기 자녀를 둔 여성을 배제하는 제도로 형태를 바꿔 진화했다. 또한 대학과 일부 정부기관에는 ‘가족 채용 금지’ 제도nepotism bar, 가령 남편이 재직 중인 대학에 아내가 교수 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이 책 4장을 참고하라.―옮긴이가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일자리에 성별, 결혼 여부, 그리고 물론 인종에 따른 제약이 존재했다.
이제는 이렇게 노골적인 차별의 증거는 잘 찾아보기 어렵다. 오늘날의 데이터를 보건대, 엄밀한 의미에서의 임금 차별과 고용 차별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이긴 해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하지만 이는 수많은 여성이 차별과 편견에 직면해 있지 않다는 말도, 직장에 성적 괴롭힘과 폭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도 아니다. #미투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진 것은 이유 없이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1990년대 말에 굿이어 타이어에서 일하던 릴리 레드베터Lilly Ledbetter는 성적 괴롭힘에 대해 평등고용기회위원회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ion, EEOC에 회사를 신고했고 EEOC로부터 소송제기권이 인정된다는 통지를 받아 냈다. 큰 승리였지만 회사에서 관리자 직위가 회복되어서 레드베터는 소송을 취하했다. 이것은 레드베터가 매우 유명한 두 번째 소송을 제기하기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오늘날 레드베터라는 이름을 유명하게 만든 그 두 번째 소송은 임금차별 소송이었다. 굿이어에서 관리자로 일하던 레드베터는 남성 부하직원들에게 대놓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이 때문에 또 그 밖의 부당한 이유로) 업무 평가를 좋게 받지 못했다. 경영진은 남성 직원들의 성차별적인 태도를 규율할 책임이 있었지만 그러기는커녕 방치했고, 레드베터는 임금이 거의 오르지 못했다. 레드베터가 동일한 직급의 남성 관리자에 비해 현저히 낮은 임금을 받게 된 것은 전적으로 차별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드디어 직장에서 (노골적인 유형의 차별이 거의 없어지고) 성평등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 것처럼 보이고 전에 없이 많은 전문직종이 여성에게 열려 있는 오늘날, 성별 소득 격차gender earnings gap, 이 책에서 earning은 대체로 ‘소득’으로 옮겼다. 하지만 자산 소득 등을 제외한 ‘일을 통해 번’ 소득을 의미한다.―옮긴이는 왜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인가? 정말로 여성들은 동일한 노동에 대해서 더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가? 대체로 이제는 그렇지 않은 편이다. 임금 차별을 ‘동일한 노동에 대해 차등적인 임금을 받는다’는 의미로 규정한다면, 이것은 전체 소득 격차 중 아주 일부만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즉 오늘날의 문제는 이와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성별 소득 격차를 직종 분리occupational segregation 때문으로 설명한다. 여성과 남성이 자기선택의 과정에 의해서, 혹은 그렇게 선택하도록 유도되어서 젠더 고정관념에 따라 직업을 택하게 되는데, 그렇게 젠더에 따라 패턴화된 직종들간호사-의사, 교사-교수 등 사이에 임금 격차가 존재하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데이터가 말해 주는 바는 이와 다소 다르다. 미국 인구총조사 목록에 있는 약 500개 직종에서, 성별에 따라 발생하는 소득 격차의 3분의 2는 (직종 간의 요인이 아니라) 각 직종 안에 있는 요인들 때문에 발생했다. 여성들 사이의 직종별 분포가 남성들 사이의 직종별 분포와 동일해진다 하더라도여성이 남성만큼 의사가 되고 남성이 여성만큼 간호사가 되더라도 현재의 소득 격차 중 많아야 3분의 1 밖에 없애지 못한다는 말이다. 요컨대, 소득 격차의 더 큰 부분은 원인이 다른 데 있다는 것을 우리는 실증 근거로 알고 있다.
종단 데이터개인의 생애를 따라 소득 등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해 얻은 데이터들을 보면 대학혹은 대학원 졸업 직후에는 남녀의 임금 수준이 놀랄 만큼 비슷하다.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MBA 학위를 받고서 직장에서 1, 2년 차 정도 된 사람들 사이에서는 성별 소득 격차가 작은 편이고 남성과 여성이 택한 전공이나 취업 분야의 차이로 대부분 설명이 된다. 즉 남성과 여성은 거의 동일한 출발선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매우 비슷한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다소 상이한 선택을 내리고 여기에서 약간의 초기 임금 격차가 발생한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서 졸업 후 10년 정도가 되면 남녀 사이에 상당한 임금 격차가 명백히 드러난다. 이제 남성과 여성은 노동시장의 서로 다른 부분에서 일하고 서로 다른 회사에서 일한다. 예상하시다시피, 이 변화는 대개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한두 해 뒤에 시작되며 거의 언제나 여성의 커리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출산에 앞서) 결혼 직후에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여성이 커리어를 추구하게 되면서 가정과 경제 사이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소득 격차를 넘어서 훨씬 더 큰 문제의 궤적을 이해하지 않으면 소득 격차의 근원에 결코 닿을 수 없을 것이다. 소득 격차는 더 큰 문제의 증상일 뿐이다. 남녀 간 소득 격차는 커리어 격차의 결과이고, 커리어 격차는 부부간 공평성이 깨지는 데서 비롯된다.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미국 경제에서 여성이 어떠한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 그것이 지난 한 세기 동안 어떻게 달라져왔는지 알아봐야 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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