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엄살
― 의사는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다
딸기와는 글쓰기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깡마르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글은 아름다웠고 또 날이 서 있었다. 누구와도 닮지 않은 글을 썼다. 그의 글을 통해서는 한 번도 서본 적 없던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딸기와 그렇게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고 그럴 기회도 없었다. 그런 딸기에게 강력한 호감을 갖게 된 것은 그에게 조울증을 앓는 오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였다. 동지애를 느꼈다.
딸기는 아프게 되면서 인간관계에 변화가 있었다. 병을 계기로 가까웠으나 멀어진 사람도 있었고 멀었으나 가까워진 사람도 있었다. 나의 경우 딸기가 아프고 난 뒤에 더 가까워졌다. 그와는 고통에 대해 좀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좀 더 조심스러웠다. 징징거린다고 생각할까 두려웠다.
딸기는 학구열이 강한 사람이었고 아주 성실하게 글을 써왔다. 그런 그의 활동이 멈춰진 건 2014년 대학교 2학년이던 딸기에게 갑작스럽게 원인 모를 통증이 찾아오면서부터이다. 통증은 척추부터 시작해 뒤통수를 지나 얼굴까지 번져 왔다. 머리와 어깨에 못이 박히는 것 같았다. 피로감이 쏟아져 책상 앞에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딸기는 학교를 휴학했고, 통증은 계속되어 7년 뒤인 2021년 8월 현재까지도 복학하지 못했다. 아마도 대학을 다시 다닐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미리 낸 등록금은 돌려받지 못했고, 요즘은 대학 밖에서 이루어지는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지낸다.
원인 모를 통증이 찾아온 뒤 딸기는 병명을 찾기 위해 정형외과, 신경외과, 가정의학과, 한의원, 류머티즘내과를 전전했다. 진단과 처방은 다양했다. 일자목이다, 운동이 아닌 의사 자신이 놔주는 주사를 맞아야 한다, 신체 나이가 70세이다,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
다양한 병원을 전전한 지 1년 6개월 만에 딸기는 그럴싸한 진단명을 얻는다. 섬유근육통. 특별한 원인 없이 신체 여러 부위에 통증이 계속되는 이 질환은 희한하게도 남성의 발병률에 비해 여성의 발병률이 8~9배나 높다.
진단이 늦어지는 건 딸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섬유근육통 환자는 첫 증상을 경험한 뒤 제대로 된 병명을 진단받기까지 평균 23년이 걸린다. 그동안 평균 3.7명의 의사를 거치며, 환자의 84퍼센트는 여성이다. 다발성경화증, 과민성대장증후군, 턱관절장애 등도 여성에게 흔하며 정확한 진단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질환이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신체질환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해 여성 환자가 우울증을 겪게 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섬유근육통 치료에는 진통제와 함께 항우울제가 쓰인다.
이 질환들이 여성에게 흔한 이유가 무엇이고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하다. 섬유근육통, 다발성경화증 같은 그럴싸한 진단명을 얻고 난 뒤에도 원인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완치 역시 어렵다. 사실 여성에게 흔히 나타나는 대다수의 질병이 이러하다. 우울증 역시 남성보다 여성이 1.5~2배 높은 유병률을 보인다. 일본의 의료인류학자 기타나카 준코北中淳子는 그의 책 『일본의 우울증Depression In Japan』에서 정신과 진료실에서 여성 우울증 환자의 고통이 사소하고 진단 불가능한 것, 그래서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거나 섬유근육통이나 다발성경화증과 같은 중추 신경장애로 쉽게 진단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는 특정할 수 없는 증상을 설명하기 위해 두루뭉술하게 내려지는 진단일 뿐이라고 덧붙인다.
여성 환자가 대부분인 턱관절 장애
딸기는 외출했다가 몸이 너무 아파 기어 오듯 집에 도착해 양치를 할 때면 턱이 벌어지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소개한 턱관절 장애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측두하악장애Temporomandibular disorder, TMD라고도 부르는 턱관절 장애의 다른 증상으로는 두통이나 씹는 근육에 생기는 통증, 입을 벌리거나 움직일 때마다 턱관절에서 딱딱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등이 있다.
나 역시 오래전부터 턱관절 장애로 고생 중이다. 2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어느 날부터인가 턱에서 딱딱 소리가 나고,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입이 제대로 벌어지지 않았다. 증상이 가장 극심했을 때는 2020년 3월이었다. 석사학위 논문 초고를 쓸 때였고, 애인과 지리멸렬한 싸움 끝에 헤어진 때였으며, 여성 인터뷰이 중 한 명이 자살한 때였다. 밤새 자는 동안 치아를 어찌나 꽉 세게 물었던지 일어나면 턱이 얼얼했다. 이러다간 머지않아 어금니가 몽땅 갈려 나가거나 죄다 부서질 것 같았다. 입을 벌려 아침을 먹기도 어려웠고 두통도 심했다. 치과에 가서 물어봐도 제대로 된 처방을 얻지 못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먹으라는 둥, 스트레스 받는 상황을 피하라는 둥그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의 말만 들었다. 고민하다 치의학, 그중에서도 여성 건강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울대학교 치과병원 김예지 전공의는 내게 치아 사이에 손가락 두 개를 넣어보라고 했다.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자, 심각하다며 일반 치과에서는 잘 모를 테니 구강내과를 찾아가라고 권 했다. 집 근처 구강내과에 가서 접수를 하니 의사에게 진료를 받기 전에 정보가 필요하다며 테스트지 같은 것을 건넸다. 내용을 보니 이곳이 구강내과인지 정신과인지 헷갈렸다. 당시 받았던 테스트지의 문항은 다음과 같다.
다음 문항에 대해 ‘매우 그렇다/그렇다/보통이다/아니다/전혀 아니다’로 표시하시오.
l. 머리가 아프다
2. 신경이 예민하고 마음의 안정이 안 된다
3. 쓸데없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4. 어지럽거나 현기증이 난다
5. 성욕이 감퇴되었다
6. 다른 사람들이 못마땅하게 보인다
7. 누가 내 생각을 조정하는 것 같다
8. 다른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는 것 같다
9. 기억력이 좋지 않다
10. 조심성이 없어서 걱정이다
11.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난다
12. 가슴이나 심장이 아프다
13. 넓은 장소나 거리에 가면 두렵다
14. 기운이 없고 침체된 기분이다
15.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
16.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하는 헛소리가 들린다
17. 몸이나 마음이 떨린다
18. 사람들이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든다
19. 입맛이 없다
20. 울기를 잘 한다
21. 이성을 대하면 어색하거나 부끄럽다
22. 어떤 함정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는 기분이 든다
23. 별 이유 없이 깜짝 놀란다
24. 자신도 걷잡을 수 없이 울화가 터진다
(이하생략)
구강내과는 일반적인 치과보다는 전문적이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명쾌한 결론을 내주는 것은 아니었다. 의사는 내 입이 벌어지는 정도를 자로 재면서 생활 스트레스와 불안감 정도 등 이것저것 물은 뒤, 근육이완제와 항불안제를 처방해 주었다. 나는 전기자극을 주는 물리치료와 온찜질을 받은 뒤 집에 돌아왔다. 턱관절 장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증상이 심할 때면 스스로 온찜질을 하는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김예지 전공의는 의료인들 사이에서도 턱관절 장애가 “생명에 지장이 가지 않는데 골치만 아픈 답 없는 질환”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치과 의사들도 이 질환을 잘 모르는데 그 이유는 첫째, 원인이 너무 여러 가지이고 둘째, 치의학의 시초가 외과적이라 턱관절 장애와 같은 내과적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떨어져 정확한 원인을 찾는 데에 한계가 있다. 사랑니를 뽑거나 충치 치료를 하는 것처럼 수술을 통해 병소病巢를 제거하거나 구조물을 재건하는 방식으로 치료하는 것을 외과적이라 하고, 감기 치료처럼 수술을 하지 않고 약을 처방하거나 주사를 놓는 방식으로, 물리적으로 몸을 열지 않고 치료하는 방식을 내과적이라고 한다. 턱관절 장애는 수술을 통해 병소를 제거하긴 어려우니 원인을 찾아 증상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치료해야 하는데, 그 원인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셋째, 뼈가 아니라 근육 혹은 디스크의 문제일 경우,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가 아니어서 치료를 위해서는 환자의 서술에 의존해야 한다. 그런데 이때 여성의 증상 호소를 그냥 징징댄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턱관절 장애는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훨씬 흔하게 나타난다. 단국대학교 치과대학 구강내과학교실은 턱관절 장애로 병원을 찾는 환자의 무려 99.8퍼센트가 여성이며 그중에서도 20대의 유병률이 가장 높다고 보고한 바 있다.
기-승-전-여성호르몬
“생명에 지장이 가지 않는데 골치만 아픈 답 없는 질환”, “원인이 너무 여러 가지”, “여성의 증상 호소를 그냥 징징댄다고 봄”, 여성이 자주 앓는 질환에 따라붙는 단골 멘트들이다. 여기에 몇 가지만 더해지면 레퍼토리가 완성된다. “닥터 쇼핑doctor shopping 하는 여자”, “건강염려증”, “환자 역할을 해서 이득을 얻으려 함”, “정신의 문제”, “여성에게 더 흔한 이유는 여성호르몬 때문”.
호르몬은 여성의 건강을 설명할 때 거의 만능 열쇠처럼 이용된다. 나의 경우 호르몬으로 여성 질환을 설명하는 것을 볼 때마다, 현대 의학이 이 질환을 잘 모르고 연구할 의지도 별로 없다는 것으로 알아듣는다. 호르몬의 영향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호르몬만을 강조할수록 그 밖의 다른 원인을 탐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너무 간편하고 안이한 해결책이다.
우울증을 예로 들어보자. 우울증은 여성에게서 흔한 대표적인 질환이다. 흥미롭게도 연령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통계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에 취약하다. 2016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주요우울장애우울증의 평생 유병률평생 동안 한 번 이상 경험할 확률은 남성 3.0퍼센트, 여성 6.9퍼센트로, 여성이 남성보다 2배 이상 높다. 이러한 양상이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는 2017년 발간한 보고서 「우울증 및 다른 흔한 정신질환depression and other common mental disorders: global health estimates」에서 전 세계적으로 남성3.6퍼센트보다 여성5.1퍼센트에게 우울증이 더 흔하게 나타난다고 보고했다. 자연히 이런 질문이 따라붙는다. 여성은 왜 남성보다 우울한가?
한국 주요 의과대학에서 사용하는 정신의학 교과서들은 그 원인을 대체로 에스트로겐에서 찾는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호르몬 변화에 따른 월경 주기를 가지기 때문에 기분 변화도 더 심하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우울증은 여성의 생애주기별로 세분화되기도 한다. 생리전증후군, 산후우울증, 갱년기우울증 등 여성의 삶에서 우울을 경험할 일은 많고도 많다. 정신의학 교과서에서 이 증상들은 모두 각각의 ‘질환’으로 명명된다. 한 교과서는 갱년기우울증 환자를 “병전발병 전 성격이 강박적·양심적이며 융통성이 적고 책임감이 강하고 급하고 예민”하다고 묘사한다.
중년 여성은 우울증 때문에 병원을 가장 많이 방문하는 집단 중 하나이다. 가정폭력과 돌봄노동과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중년의 여성을 상상해 보자. 그가 병원에 내원해 자신의 우울 에 대해 상담하면, 의사는 십중팔구 에스트로겐의 급격한 변화로 완경기를 겪고 있음을 지적할 것이다. “약을 처방할 테니 아침저녁으로 먹고 콩이나 석류 등 에스트로겐이 많이 함유된 음식을 섭취하세요. 햇빛을 자주 보고 운동도 꾸준히 하시고요.” 다음 진료 때까지 우울이 가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치료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환자 탓이다.
여성의 우울, 그 원인을 에스트로겐으로 한정하는 설명은 우울을 경험하는 여성의 구체적인 사회문화적 맥락을 지워버린다. 여성은 감정 관리를 못하는 취약한 존재가 되고 의학적 설명 외에 자신의 고통을 둘러싼 배경을 살피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과연 맥락 없는 고통이 있는가?
정신의학 교과서에서 남성의 우울은 여성의 우울과 달리 성호르몬보다는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설명된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 역시 성호르몬을 갖고, 또 특정한 생애 주기를 경험하지만,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의 정신질환을 진단하는 데에 주요한 기준이 되지 못한다. 의학에서 표준이 되는 몸은 남성이기 때문이다. 남성의 몸이 표준이 될 때 아픈 것, 병리적인 것, 비정상적인 것은 남성 몸 바깥에 놓인 것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우울과 같이 병리적인 상태를 설명할 때 그 원인은 남성의 ‘정상’적인 몸이 아닌, 그를 힘들게 한 외부적 요인, 곧 사회문화적인 조건에서 찾아진다. 반대로 여성의 우울은 그 원인이 여성의 ‘비정상’적인 몸 안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곧 여성이 아픈 것은 ‘원래 그렇게 태어나서’이다.
여성이 겪는 질병의 원인은 왜 자꾸만 여성의 몸, 그중에서도 성호르몬 등 생식기와 관련된 것으로 설명될까. 나는 남성을 표준으로 두고 의학 지식을 만들어 온 사람들이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분석할 때, 그들을 둘러싼 온갖 사회·문화·경제적인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생식기 위주로 사유해 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남성 지식인은 여성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생식기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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