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오늘날 에너지는 뜨거운 이슈다. 미국 북서부 오리건주의 깊은 산속에 있는 대리석 동굴부터 거대한 자연재해를 겪었던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의 해안선까지, 미국이 앞으로 녹색, 청정,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향한 전환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그렇게 할 때 실업자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고, 세계 무대에서 미국이 다시 승리를 구가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지구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에 과장이 조금 섞여 있더라도, 에너지원을 바꾸면 (아무런 경고도 아무런 자비도 없이 파괴적인 결과를 몰고 오는) 석유 유출, 폭발 사고, 인공 지진, 광산 붕괴 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초강력 폭풍과 강력한 눈보라의 위험을 줄이고, 높아지는 조수와 녹아내리는 만년설을 통제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전기 공급 체계를 보다 지속 가능한 형태로 바꿔야 한다. 오늘날, 에너지가 만들어지고 사용되는 방식을 바꾸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 체계로 전환하는 일은 담대하고도 장기적인 도전이다. 그러나 이 전환에 대한 사람들의 그림 속에는 미국이 가스, 석유, 석탄이 아니라 언젠가는 풍력, 태양, 조력을 사용할 것이라는 선언만 담겨 있을 뿐, 정작 아주 중요한 사실은 누락되어 있다. 미국은 전기를 사용한다는 점 말이다. 정보화 시대란, 소통, 사회 활동, 심지어 학습조차 전기에 기반해 다시 구성되는 시대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변화를 컴퓨터화로 생각하는 것 같지만, 컴퓨터는 단지 도구일 뿐이다. 이 기계를 작동시키는 것은 전기다. 컴퓨터는 인간의 삶, 움직임, 일상생활에서 점점 더 중요한 도구가 되어가고 있으며, 가전 제품들도 가정과 직장을 더 근사하고 효율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왔다. 공장, 항구, 경찰, 군대뿐만 아니라, 우리의 건강과 병원도 전기 사용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심지어 요즘에는 돈조차도 전기적으로 형성되고 저장된 데이터이며, 지폐나 동전과 같은 현금은 아주 가끔씩만 활용될 따름이다. 흡연자 가운데 일부는 전자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에는 분명 자율주행 전기차가 등장할 것이다. 전기가 이처럼 필수적이라는 데 비춰보면, 정전을 ‘블랙아웃’이라고 부르는 것은 부적절한 면이 있다. 블랙아웃이 지시하는 사태, 즉 조명이 꺼지는 상황은 전력 시스템이 붕괴할 때 겪을 수 있는 문제 가운데 비교적 작은 부분일 뿐이다. 그런데 이 정전 사태도 날이 갈수록 더 자주 일어나고 있다.
에너지원은 우리 모두에게 수많은 걱정거리를 가져다주는 주요 원인이다. 석탄과 이산화탄소 배출, 천연가스와 가스정이나 파이프라인에서 새어 나오는 메탄, 그리고 그 추출 방법에 대한 우려,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독성 핵폐기물, 석유와 병사들의 값비싼 희생, 등등. 그러나 이런 문제가 미국의 전력 산업을 표현하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 연료들이 불길 속에서 타오르는 바로 그 순간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이것들을 가공해 쓴다. 물론 석유 대부분은 차량의 동력에 들어가지만, 나머지 연료는 거의 모두가 그리드grid*에 전력을 공급하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이 복잡하고 거대한 전기 공급 시스템에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드는 네트워크와 함께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설치된 선로 및 관련 시스템 전반을 의미하는데, 이 의미 전체를 한꺼번에, 도드라지게 표현하기 위해 ‘그리드’로 표기했다.
그리드는 현대 생활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지만, 대다수 미국인은 그 사실을 머릿속에 떠올리지 못한다. 2년 전, 한 친구가 저녁노을을 찍은 사진을 나에게 보내줬다. 그 사진 속에는 붉은 기운이 도는 어둑어둑한 저녁 하늘이 송전선으로 쪼개져 있었고, 프레임 한가운데에 송전탑 한 쌍이 놓여 있었다. 친구는 사진 속의 그리드는 무시하고 나에게 “어때? 정말 아름다운 노을 아니니?” 하고 물어봤다. 카메라 앞에 그리드가 서 있었고, 전망을 방해하는 다른 것은 없었다. 그리드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공학적 성취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기계이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송전탑과 전선을 눈앞에 두고도 못 보는 사진가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발전소와 원유 정제소를 구별하지 못한다. 변전소 역시 그리드에 필수적인 시설이지만, 대다수는 시멘트 벽 뒤에 잘 숨겨져 있거나 시가지 바깥의 외딴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그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때 세상을 변화시킨 기술이었던 변압기 역시 전봇대 꼭대기에 코코넛 열매처럼 매달린 회색의 둥근 통 속에 감춰져 있어서 사실상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의 스마트폰은 충전기에서 분리할 수 있고 주머니에 담아 어디든 들고 갈 수 있지만, 이 역시 그리드의 일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스마트폰도 전력 인프라 없이는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열어보면, 정교하고도 세밀한 구조로 이뤄진 회로 기관 둘레에 배터리가 자리 잡고 있다. 전원은 이 기기의 심장과 같으며, 그리드로부터 전원을 지속적으로 받아야만 그 생명력이 유지된다.
그리드를 구성하는 부분들의 이질성은 프랑켄슈타인에 비견할 수 있고, 지리적 규모는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 시대의 주간 고속도로를 뛰어넘으며, 과학적 복잡성은 우주 탐사 프로그램을 왜소해 보이게 만든다. 또 그리드가 겪은 역사적 궤적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닌 특수한 배경을 정밀한 그림으로 드러낸다. 그리드는 미국이 만든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미국과 함께 성장한 동반자다. 이 기계는 미국의 가치관에 따라 변화해 왔고, 미국이 하나의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그리드는 기계이자 인프라이고, 문화적 성취이자 산업 활동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얽힌 하나의 생태계다. 이 기계는 우리의 모든 것과 맞닿아 있다.
문자 그대로, 우리의 그리드는 스마트폰 배터리, 입출력포트, 충전기, 플러그, 콘센트, 벽에 숨겨져 길거리까지 뻗어 있는 전선, 변압기,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도시의 전봇대 숲, 여러 전봇대 위를 따라 흐르는 저전압 배전선, 전선이 연결된 변전소, 변전소에 설치된 대형 변압기, 몇 개의 싱크로페이저synchrophasor, 계전기, 스위치와 퓨즈, 변전소에서 출발해 사람이 살지 않는 미국의 거대한 영토 위에 솟아 오른 철탑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고압 송전선, 끝으로 발전소에 이르는 수많은 요소들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이 발전소들은 증기, 공기, 물의 흐름, 가스 연소에 의해 빠르게 회전하는 터빈과 연결된 전자기 발전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드는 어디에나 퍼져 있는 인프라인 만큼, 모든 삶에 영향을 미치고, 모든 벽을 관통하며, 모든 풍경을 두 갈래로 갈라놓고, 모든 배터리를 충전한다.
우리는 미국 전역에 퍼져 있는 이 망을 ‘그리드’라고 부르며, 이들이 하나로 이뤄져 있는 것처럼 말하고는 한다. 하지만 실제로 미국에 있는 그리드는 3개다. 서부 그리드는 멕시코 일부와 캐나다 서부의 많은 지역을 포함한다. 또 다른 그리드는 동부 지역을 담당하며, 더 작은 하나는 텍사스주를 포괄한다. 멕시코 지역의 대부분은 자체적인 그리드를 가지고 있지만, 캐나다는 그렇지 않다.단, 퀘벡은 텍사스처럼 자체 인프라가 있어 관리 당국의 결정에 의해 망 분리가 가능하다
미끈하게 뻗은 전력선과 높이 솟은 송전탑을 보면, 그리드를 초고속 전기 교통을 위한 고속도로로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드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완전히 상반된 이미지, 즉 낡고 오래된 데다 울퉁불퉁하며 좁은 비포장도로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드는 여기저기 닳아 땜질투성이이며, 모두가 원하는 개선은 값비싼 투자 비용에 가로막혀 관료주의라는 진창에 처박혀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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