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사실이 바뀌면
생각도 바꿀 수 있다
“어려움은 새로운 생각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낡은 생각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우리 대부분이 그렇듯이 전통적인 방식대로 길러진 사람들에게는 낡은 생각이 정신의 구석구석까지 가지를 뻗치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 케인스John Maynard Keynes가 그의 저서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필맥 서문 끝자락에 썼던 내용이다. 그는 기존 경제학의 사고 틀을 뛰어넘어 시장경제에 내재하는 불균형과 불안정성을 통찰하며 국가의 역할을 통해 이를 교정하고자 거시경제학을 개척했다. 스스로 성찰한 대로 정말 ‘낡은 생각’에서 벗어났던 것 같다.
21세기가 시작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20세기의 첫 20년 동안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식민지 병합이 가속되었던 데 비하면 21세기는 비록 9·11테러와 이라크전쟁의 얼룩이 있었지만 그래도 비교적 순조롭게 출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이어지면서 이제는 지난 세기보다 더 미래를 전망하기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인공지능을 포함한 최첨단의 기술을 고려하더라도 인류의 현재와 미래의 삶이 좀처럼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70년대 세계관과 80년대 세계관 사이의 오랜 쟁투
미래가 불확실성 속에 남겨진 데에는 보수보다 진보의 탓이 더 크다. 미래의 희망은 대체로 진보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진보의 의미와 경계선이 혼란스럽다. 사회적으로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이 총체적으로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혼돈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지난 수십 년 동안 70년대식 반공주의적 산업화 세계관을 가진 이들과 80년대식 민주화 세계관을 가진 이들이 우리 사회의 핵심 권력과 자원을 분점하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엄청난 시대 변화를 외면한 채 우리 사회를 끊임없이 70-80년대식으로 재해석하며 그 시대의 관성에 묶어두려는 시대 역진적 집착을 보였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가 현저하면 할수록, 그리고 그들의 관성이 고집스러울수록 현재의 혼란과 미래의 불확실성은 더 깊어졌다.
예를 들어보자. 한국의 보수는 지금까지 반공주의라는 사상적 기반 아래 경제성장지상주의를 추구해왔는데, 이를 70년대식 산업화 세계관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냉전 시대에 길러진 반공주의, 분배를 외면한 성장지상주의, 노동자를 배제한 기업우선주의, 국민 행복에 앞서는 국가경쟁력우선주의 등 60-70년대 산업화 시기에 굳어진 가치와 관점을 계속 각색하고 변형시키면서 보수는 한국 사회의 확고한 지배 세력으로 군림해왔다. 심지어 70년대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소환하며 절정에 달했던 보수 세력은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총체적 붕괴를 맞았다. 그리고 이제 자신들의 완전한 정체성 붕괴와 함께 견고했던 과거의 지배력을 잃은 채 현상 유지도 힘겨워하며 방황하는 중이다. 물론 한국의 보수가 ‘반공 수구’의 낡은 족쇄를 벗고 현대적 보수로 탈바꿈하려는 시도가 이전에도 없지 않았지만 번번이 좌절되었다. 그 점에서 2021년 6월, 36세의 이준석 대표 체제가 보수 혁신의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한편 독재와 보수의 견고한 지배에 저항하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이어온 범민주화 세력은 1987년의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그리고 직선제 개헌을 통해 합법적이고 제도적인 공간에서 보수 세력과 권력을 분점하거나 교체할 기회를 얻었다. 이 세력 안에는 미국의 민주당식 자유주의 추종자들에서부터 20세기 사회주의의 다양한 갈래, 또 여성과 환경 등 신사회운동과 협동조합운동까지 실로 다양한 움직임이 대개 ‘민주대연합’이라는 틀 속에 느슨하게 섞여 있었다. 이중 대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1980년대 형성된 이른바 NLNational Liberation, 민족자주과 PDPeople’s Democracy, 민중민주의 사상적 조류가 80년대 세계관을 대표하면서 서로 경쟁과 갈등, 균열의 궤적을 따라 당시 사회운동 참여자들의 사고에 지울 수 없는 강한 흔적을 남겼다. 이후 20세기 사회주의의 몰락 등의 영향으로 대체적 경향이 북유럽식 사민주의로 쏠리며 복지국가 모델로 희석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 세계관은 지금까지 여러 곳에 여전히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긴장 상황에서 반공주의 수구 세력이 지배적 힘을 행사하는 한, 상대적으로 중도보수 세력으로 뭉쳐진 민주당이 민주대연합의 중심을 자처하는 태도가 어느 정도는 정당화되는 것 같았다. 비록 민주노동당-정의당으로 이어지는 진보정당이 독립적인 정체성을 확보하며 생존에 성공하고 목소리를 높여왔지만,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오늘날까지 제3세력으로 입지를 굳히는 데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2016-2017년의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 그리고 문재인 정부 초기의 ‘적폐 청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70년대 산업화 세력과 80년대 민주화 세력 사이에 벌어진 마지막 고전적 쟁투였다. 잘 알려진 대로 이 쟁투는 70년대 세력의 회복할 수 없는 와해와 실정 속에서 집권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교육감, 그리고 국회까지 완전히 장악하며 이제 한국 사회의 확고한 지배 세력으로 변신했다. 명실상부하게 한국 사회에서 지배세력이 교체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선출 권력을 독식한 더불어민주당은 개혁과 진보의 진면모를 드러낸 것이 아니라 부동산 기득권과 관료 기득권, 학벌과 지위 기득권 세력과 실질적으로 한 몸처럼 움직였다. 또 시종일관 ‘친기업적’ 행보를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이 개혁의 상징으로 힘을 쏟아부은 ‘검찰 개혁’은 압도적 국민의 삶을 바꾸는 것보다는 ‘기득권 내부의 쟁투’로 변경되었다.
그 이유는 주류 지배집단이 된 민주당의 주요 리더들이 여전히 80년대식 세계관을 버리지 않은 가운데, 그 위에 복지국가 정책 메뉴와 4차 산업혁명 기술주의를 양념으로 얹음으로써 진보 경제학자 토마 피케타Thomas Piketty가 말한 ‘브라만 좌파’식 엘리트 기득권 쪽으로 이동해갔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우리 사회의 경제와 언론, 학계, 심지어 일부 시민사회까지 기존 시스템 유지에 이해관계를 함께하는 세력과 더욱 단단한 기득권 네트워크를 확장해가고 있다고 짐작된다.
물론 브라만 좌파라는 울타리가 여전히 유동적인 상황을 감안할 때, 이들 안에서 진보의 방향으로 외연을 넓힐 가능성이 완전히 닫혔다고 예단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는 비관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021년 현재 진보가 아니다. 80년대 세계관에 갇혀 민주·개혁·진보 세력임을 자처하지만 ‘기득권 집권 세력’이 액면으로 평가되는 실체다. 그들의 민주는 ‘직선제에서 멈춘’ 민주고, 그들의 개혁은 ‘사실상 신자유주의적’ 개혁이며, 그들의 진보는 ‘기득권을 위장하기 위한’ 레토릭 진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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