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부르봉 왕조 프랑스: 특허와 억압
검열에 대한 이분법적 관점은 계몽주의 시대를 상정하면 특별한 매력을 갖는다. 계몽주의라는 게 단순히 보면 어둠에 맞서는 빛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이 근본적인 대조로부터 계몽주의 옹호자들은 몽매주의에 맞서는 이성, 탄압에 맞서는 자유, 편협함에 맞서는 관용 등의 또 다른 이분법적 구도를 끌어냈다. 그들은 사회적·정치적 영역에서 대립하는 두 힘이 작동하고 있다고 봤다. 한편에는 계몽사상가들에 의해 형성된 여론이, 다른 한편에는 교회와 국가의 권력이 있었다. 물론 계몽주의 역사를 그렇게 단순화할 수는 없다. 그 역사를 보면 모순과 모호성이 드러나는데, 어떤 제도나 사건에 대한 추상적인 생각과 관련될 때 특히 그러하다. 그런데 검열이라는 주제로 넘어오면, 역사적 해석들은 대체로 행정 관리들의 억압 행위를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작가들의 시도와 대립시킨다. 가장 극적인 예를 프랑스에서 찾을 수 있다. 그곳에서는 책을 태우고, 작가를 구금하고, 가장 중요한 출판물을 불법화하는 일이 벌어졌다. 대표적으로 볼테르Voltaire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저작들, 그리고 『백과전서Encyclopédie』가 금서가 되었다. 이 책들의 출판 역사는 국가와 교회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지식 투쟁의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고전적 자유주의나 인권 옹호라는 명분의 관점에서 본다면, 다시 말해 계몽주의에서 유래한 현대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러한 해석은 충분히 타당하다. 하지만 역사적 객관성에 가치 판단을 개입시키는 그러한 해석이 타당한 것인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실제로 검열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연구하는 데 토대로 삼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검열관은 무슨 일을 했고, 자신들의 임무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그들의 활동은 어떻게 해서 당시 사회적·정치적 질서에 부합했던 것일까?
활판 인쇄와
그 법적인 측면
18세기에 출간된 평범한 책인 『아메리카의 섬으로 떠나는 새로운 여행Nouveau voyage aux isles de l'Amérique』파리, 1722 표제지title page의 예를 살펴보자. 오늘날 기준에서는 표제지라기보다 표지에 가까워 보인다. 실제로 표지와 유사한 기능을 했다. 흥미를 가질 만한 독자에게 책 내용을 요약해서 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독자들에게는 의아하게 여겨질 만큼 기본적인 요소 한 가지가 누락되어 있다. 바로 저자 이름이 나와 있지 않은 것이다. 저자가 스스로 신분을 숨기려 한 건 아니다. 책 속의 전문前文을 살펴보면 저자 이름을 알 수 있다. 대신 표제지에는 책에 관해 실제로 책임져야 하는 사람, 법적·재정적 의무를 맡은 사람의 이름이 주소와 함께 페이지 하단에 눈에 띄게 적혀 있다. “파리, 생자크 거리, 피에르-프랑수아 지파르 상점, 마튀랭 거리 주변, 성 테레사 성상聖像이 그려진 곳.” 지파르는 서적상libraire이었다. 많은 서적상이 그랬듯이 그는 발행인요즘 말로 발행인, 편집인으로, 당시에는 이런 표현이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았다으로도 활동했다. 저자들에게 원고를 구입하여, 인쇄 작업을 조율하고, 완성된 책을 자신의 서점에서 판매한 것이다. 1275년 이래 서적상들은 대학에 부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서점은 카르티에 라탱*에서 운영되어야 했다. 서점들은 특히 생자크 거리에 밀집해 있었다. 그 거리에는 서점마다 내건 연철로 된 돌출 간판들이 숲의 나뭇가지처럼 허공에서 흔들리고 있었다그중 한 간판에 성 테레사 성상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복음 전도사 성 요한을 기리는 인쇄업자와 서적상 단체는 소르본 대학 인근, 마튀랭 거리에 있는 마튀랭 교회에서 모임을 가졌다. 또한 소르본의 신학 교수들은 때때로 출판된 원고의 정통성 여부를 판단하곤 했다. 따라서 이 책에 적힌 주소지는 국가 공인 출판계의 중심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표제지 맨 아래 “왕의 허가와 특허를 받음”이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는 한, 책의 초법적인 지위는 어떤 경우에도 확실히 보장되었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검열이 이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허가라는 게 왕실 검열관들이 공식적으로 내리는 출판 승인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경우, 원고를 승인한 검열관들이 작성한 허가문 네 편이 앞부분에 인쇄되어 있다. 소르본 대학 교수인 한 검열관은 허가문에 이렇게 썼다. “즐거운 독서였다. 이 책에는 매혹적인 요소가 가득하다.” 또 다른 검열관이자 식물학과 약학을 가르치는 교수는 이 책이 여행자, 상인, 자연사 전공 학생 들에게 유용할 거라고 강조하면서, 특히 문체를 높이 평가했다. 세 번째 검열관인 신학자는 이 책이 좋은 읽을거리라고 단언했다. 책을 도저히 내려놓을 수 없었다며, 독자들의 “달콤하고도 열렬한 호기심을 자극하여 계속 읽고 싶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표현을 검열관들이 썼다고? 자연스럽게 의문이 들 것이다. 이 의문을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이 모든 사회학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았다고 알려진 질문으로 바꿔보자: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Quartier latin: 파리 중심부에 위치한 대학가. 프랑스혁명 전까지 대학 수업이 라틴어로 이뤄진 까닭에 ‘카르티에 라탱’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오늘날에도 소르본 대학을 비롯한 파리의 유명 대학들이 밀집해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의 실마리는 허가문 뒤에 인쇄된, 왕의 특허 내용을 적시한 글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특허문은 왕이 관리들에게 보내는 서신 형태를 취한다. 왕이 책의 저자를 승인했음을 관리들에게 알리는 글인 것이다. 여기서 처음으로 저자 이름이 언급된다. 또한 책을 복제해 서적상 조합guild의 중개인을 통해 판매할 수 있는 독점적 권리도 부여한다. 특허문은 복잡한 내용의 긴 글로, 해당 책의 물리적 특성에 대한 여러 조건을 제시한다. “양질의 종이에 아름다운 활자로, 출판업계 규정을 준수하여” 인쇄해야 한다는 식이다. 출판업계 규정은 책의 물리적 특성에 대한 기준을 상세히 정해두고 있었다. 예를 들면 “종이는 정해진 등급의 천으로 만들어야 한다” “활자에서 ‘m’자의 너비는 정확히 ‘l’ 자 세 개를 나열한 것과 일치하도록 해야 한다” 같은 기준이었다. 이는 장 바티스트 콜베르의 지휘하에 고안된, 완벽한 콜베르주의―상품 품질 기준을 정하고, 관세 보호장벽으로 각 조합을 보호하는 등 상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국가가 적극 개입하는 것―였다. 특허문은 왕의 다른 칙령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다”라는 문구로 마무리된다. 법적으로 책은 왕의 기쁨을 위해 존재했던 것이다. 책은 왕이 내리는 ‘은총’의 산물이었다. 출판업과 관련된 주요한 칙령에는 은총grâce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았다. 사실 출판업을 관장하는 왕립 행정기관이었던 서적출판행정청Direction de la librairie은 두 부서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분쟁 조정 부서’였고, 다른 하나는 특허를 내리기 위한 ‘은총 부서’였다. 끝으로 특허문 뒤에는 해당 특허가 서적상 조합 등록부에 등재되어 분할된 뒤, 서적상 네 곳에 판매되었다는 내용의 글이 이어져 있다.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이 모든 것은 좀 이상해 보인다. 이단을 단속하는 게 아니라 책의 문체와 가독성을 칭찬하는 검열관이며, 책에 은총을 내리는 왕이며, 은총을 마치 재산의 한 형태인 것처럼 나눠서 판매하는 서적상 조합이라니. 정말로 무슨 일일 어떻게 돌아갔던 걸까?
이 수수께끼를 풀 한 가지 방법은 18세기 도서를 영국의 잼 통이나 비스킷 상자와 비슷한 물건으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영국에는 “왕실 조달 특별 허가를 받은” 잼 통이나 비스킷 상자가 있어서 외국인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곤 한다. 이 책 역시 그러한 질 좋은 제품으로 왕실의 승인을 얻었고, 그 과정에서 검열관들은 그 제품의 전반적인 우수성을 보증하는 증인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검열은 단순히 이단을 금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긍정적인 것―해당 도서에 대한 왕실의 보증이자 그 책을 읽으라는 공식적인 권유―이었다.
이 체계에서 핵심적인 요소는 ‘특허privilege’어원은 ‘사법私法, private law’다. 특허란 일반적으로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앙시앵레짐의 조직 원리였다. 당시 법은 만인에 평등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이란 여성은 말할 것도 없고 남성까지 애초에 불평등한 상태로 태어난다고, 또 신분제는 신이 정해놓은 본래적인 것이라고 믿던 시대였다. 일부 철학자를 제외하곤, 유럽인 대부분이 법 앞에 평등이라는 개념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법은 전통이나 왕의 은총에 의해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주어지는 특별한 하사품 같은 것이었다. 태생이 좋은 ‘우수한 사람’이 특권을 누릴 수 있었던 것처럼, 양질의 도서도 그러했다. 사실, 출판계에서 특허는 세 가지 층위로 시행되었다. 첫째, 책 자체가 특허를 받는 방식잉글랜드 외의 다른 나라에는 현대적인 저작권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둘째, 서적상이 특허를 받는 방식조합원으로서 서적상은 출판업에 대한 독점적인 권한을 누렸다. 셋째, 조합이 특허를 받는 방식조합은 독점적인 단체로서 면세 등의 특정한 혜택을 받았다. 요약하자면, 부르봉 왕가는 인쇄물이 지닌 위력을 제어할 수 있는 정교한 체계를 만들었던 것이다. 서적은 그 체계의 산물로서 앙시앵레짐 전체를 축약해서 보여주는 사례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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