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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침묵.
심지어 이 단어를 말하는 것조차 그 의미를 훼손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습니다.
100퍼센트의 침묵 또는 고요란 없습니다. 우리가 말하기를 그치고 휴대전화와 텔레비전, 라디오와 컴퓨터를 꺼버린다 해도, 저 멀리 혹은 가까이에서 항상 작은 소리는 존재합니다. 냉장고가 윙윙거리는 소리,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소리, 트럭이 언덕을 올라가는 소리.
심지어 우리가 소음 가득한 도시의 일상을 벗어나 자연으로 도피한다 해도, 자연 또한 고요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동틀 무렵의 너른 들판이나 해질 무렵의 연못처럼 불협화음이 많이 들려오는 곳도 없습니다. 진정 100퍼센트 침묵만이 있는 고요한 환경은 깊은 바다 속이나 우주에만 있을 겁니다. 하지만 둘 중 어느 곳도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잘 때도 소리와 무의식 속의 번잡함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둠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때로는 무의식이 잠자는 동안에도 우리로 하여금 말하게 합니다. 마치 자연 속의 어떤 것이, 그리고 우리 본성 속의 어떤 것이, 침묵과 고요의 진공상태를 싫어해서 어떤 소리든 채워 넣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고대 이래로 왜 침묵이나 고요라는 개념이 ‘황금’이라는 가치에 견주어지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매번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침묵과 고요를 칭송할까요? 그리고 집단적 침묵이라는 독특한 예배 형식을 통해 영적 삶의 자양분을 얻는 퀘이커들에게 침묵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퀘이커들에게 있어 지혜는 침묵 속에서 시작됩니다. 퀘이커들은 우리의 목소리와 우리의 영혼을 침묵시킬 때에만 ‘움직이지 않은 듯 고요한 내 안의 작은 목소리’still small voice within를 들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목소리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소리이며, 우리 행위를 통해 남들에게 들려주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고요와 침묵 속에서 그 목소리를 들음으로써, 그리고 그 목소리의 인도를 받아 행동함으로써, 우리는 진정 우리의 삶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책에서 옮긴이는 원서의 ‘God’를 ‘하느님’으로 옮겼다. 퀘이커도 개신교의 한 교파이므로 한국 개신교 일반이 채택한 ‘하나님’으로 옮길 수 있으나, 퀘이커 사상이 교파를 넘어선 좀 더 보편적 관점에 서있다는 점에서 일반에게도 널리 쓰이는 ‘하느님’으로 옮겼다.
퀘이커의 탄생
퀘이커교와 이 독특한 형태의 침묵 예배는 350년 전 조지 폭스라는 무식쟁이 영국 청년의 외로운 영적 순례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조지 폭스는 1624년 영국 레스터셔 주의 ‘페니 드레이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직조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깊은 신앙적 자부심으로 ‘기독교 의인’이라 불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조지 폭스는 어딘가 이상한 점이 있어서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심한 영적 불안정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열아홉이 되었을 때 교회 사람들에게 뭔가 영적인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교회 사람들의 천박함에 놀랐고, 이후 제화공의 조수로 일하던 것을 그만두고 집을 떠나서 영적인 진로와 그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밝혀줄 수 있는 진리를 찾기 위해 시골을 떠돌았습니다.
17세기는 종교적 분파와 분열의 시대였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이미 커져버린 기존의 신교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더 의미 있는 영적 생활을 약속하는 듯 보이는 종교 분파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기독교 분파들에는 재세례파Anabaptist, 구도파the Seekers, 求道派, 랜터파the Ranters, 초기감리교 분파로 ‘고함지르는 자’의 뜻, 수평파the Levellers, 水平派, 디거스the Diggers, 眞正水平派 같은 교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모두는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사람들의 종교적인 생각들과 경제적, 영적 삶을 보다 조화롭게 엮어내고자 하였습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 살던 폭스는 종교지도자들과 상담하면서 자신의 깊은 본심을 찾고 스스로 깨우침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년간의 방황과 전도, 그리고 종교적·사회적 개혁에 대한 급진적 생각들 때문에 투옥까지 당한 끝에 그의 기도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유명해진 그의 일기에 적은 것처럼 “내가 가졌던 종교지도자들과 사람들에 대한 모든 희망이 사라져버리고, 나를 도와줄 것들이 사라져버리고, 내가 무엇을 하겠다는 마음조차 먹을 수 없었을 때, 바로 그때 나는 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는 하느님이 고대의 예언자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똑같이 직접 조지 폭스에게 건넨 목소리였습니다. 조지 폭스가 신비한 경험을 통해 들은 하느님의 메시지는 모든 개인들은 성직자들의 중개 없이 하느님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조지 폭스는 하느님이 거룩한 내면의 목소리, 모두가 가진 내면적인 빛을 통해 우리들에게 나타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침묵 속에 함께 모여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거룩한 목소리에 마음의 문을 연다면, 시편 46편에서 “멈추어라 그리고 내가 하느님인 것을 알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느님이 계속해서 그 자신을 드러내신다고 믿었습니다.
조지 폭스가 설파한 “모든 사람들 속에 하느님의 성품이 있다”는 메시지는 인간 본성에 대한 대단히 낙관적인 견해입니다. 아담과 이브의 발자국을 따라 모든 사람이 죄와 유혹에 저항하지 못하고 이끌린다는 원죄에 대한 믿음은 당시 번창하던 개신교 믿음의 근본이었습니다. 기독교에 굳건히 터하고 있으면서도, 조지 폭스는 모든 사람 속에 있는 ‘성스러운 불꽃’divine spark이 사람들을 선으로, 다시 말해 자신들 속에 있는 최고의 것인 하느님께로 이끌어간다고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모두가 완벽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지요.
조지 폭스가 가졌던 비전의 핵심은, 하느님께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과 우리들 각자의 삶 속에서 개별적인 하느님의 모습individual expression을 찾아내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 스스로의 내면적 목소리를 찾고 거기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우리의 삶이 우리를 말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 개개인의 몫입니다. 지난 3백 년 간 퀘이커의 믿음, 퀘이커의 신앙, 퀘이커의 행동의 핵심은 조지 폭스의 깨달음 속에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 속에 하느님의 성품이 있다.’ 우리가 영혼의 정적stillness을 지닌다면 하느님은 우리들에게 침묵을 깨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조지 폭스는 그의 생애 동안 널리 여행을 다녔고, 영국과 유럽 대륙, 그리고 식민지 미국에서 증가일로에 있던 종교적 구도자들에게 그의 신앙을 전파하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침묵의 예배를 주창하던 이 복음주의자는 아주 카리스마 있는 연설자이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종했고, 추종하던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다른 기독교 분파에서 개종하여 그를 따랐습니다. 17세기와 18세기에 창시된 많은 개신교 분파들은 결국 사멸했습니다. 어떤 것들은 아주 빨리 사라져 버렸고, 평등한 금욕적 공동체 생활을 추구한 셰이커교도the Shakers 같은 이들은 비교적 천천히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퀘이커교는 번성했습니다. 조지 폭스의 추종자들은 스스로를 ‘빛의 자녀’ ‘진리의 발행자publisher, 공표자’ ‘진리의 친우들’, 그리고 지금까지도 사용되는 이름인 ‘종교친우회’The Religious Society of Friends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서로서로를 친우라 부르는 한편 그들을 놀려대던 사람들이 붙인 ‘퀘이커’라는 이름도 받아들였습니다. 한 관리가 이 신실한 종교집단의 사람들이 하느님이 직접 그들에게 말씀하실 것을 몸을 떨며quaked 기다리는 것을 보고 놀리는 말로 ‘몸을 떨어대는 사람들quakers’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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