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머리에
오래전부터 저의 친구 와합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우리 사회에 들려주기를 바랐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와합과 그 가족 이야기, 시리아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려 주면,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많은 이들이 시리아에 친밀감을 느끼게 되고, 또 시리아의 비극에도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앎은 이해를 불러오고 이해는 공감으로 향하는 길이니까요.
와합이 직접 책을 쓰거나, 와합의 절친한 형님이자 시리아에서 산 적도 있는 사피윳딘 님이 쓰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다 못해 결국 제가 용기를 내어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와합 주변 몇 곳에서 와합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쓰는 일은 전문적인 작가에게 맡겨도 되겠구나 생각했지요. 바로 그때 와합이 제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 가족과 시리아 이야기를 쓸 사람으로, 누나나 사피윳딘 형님이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해요. 전문 작가의 글 실력이 더 뛰어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나와 내 가족 이야기를 진솔하게 써줄 수 있는 사람은 ‘가족 같은 친구들’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내 이야기를 그냥 전해 듣고 쓰는 사람의 글과, 함께 가족 문제를 두고 고민하고 같이 시리아를 돕는 활동을 해 온 사람이 쓰는 글이 같을까요? 하나만 약속해 주세요. 중간에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쓸 거라고.”
이런 말을 듣고 나니 절대 도중에 그만둘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책 쓰기가 처음이라 온통 낯설었습니다. 귀한 이야기를 받긴 했는데 과연 내 글을 출판사에서 출간해 줄까, 우리 사회와는 관련이 먼 딴 나라 일인 전쟁과 난민 이야기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 등등 고민이 많았지요.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제주도에 예멘 난민들이 찾아왔고, 난민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일이 아닌 우리와도 직접 연관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 과정을 보면서 어서 이 책을 꼭 완성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한번은 “책을 이렇게 쓰고 있다”며 와합에게 원고의 앞부분만 살짝 보여 준 적이 있습니다. 잠시 후 보니, 글을 읽다 말고 와합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왜, 왜, 우는 거야? 아니, 거기 어디 눈물 흘릴 부분이 있다고…….”
와합은 인사동 골목을 거닐던 이야기를 적은 부분에서 읽기를 멈추고 울고 있었습니다. 다마스쿠스의 올드 시티, 그리고 여름밤의 재스민 향기를 떠올리던 그때, 아니 그때보다 더 짙어진 그리움 탓이었겠지요. 아무리 이해한다고 해도, 또 공감한다고 해도, 누군가의 아픔을 오롯이 공감하기는 어려운 일이란 걸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너무 큰 욕심을 내지 않고, 그저 내가 와합과 함께 겪은 일들을 담담하게 소개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이슬람과 시리아에 무지한 내가 엉뚱한 오해를 잔뜩 했던 첫 만남의 기억에서부터 이따금 재미나게 들었던 와합의 어린 시절과 시리아에 있었을 때 이야기, 함께 헬프시리아를 만들고 활동해 온 이야기, 와합의 가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같이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 터키에서 와합 가족과 보낸 일주일, 그리고 2018년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를 찾으면서 벌어진 상황 속에서 했던 생각들을 꾸밈없이 써 보려고 했습니다.
(중략)
1장
낯선 문명과 만나다
─ 내키지 않는 약속
“덜컹덜컹.”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강남역으로 향하는 전철 안.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는데도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영 내키지 않는 만남 때문일까. 더위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짜증이 속에서 한 번씩 밀려 올라왔다. 핸드폰 진동이 느껴진다. 후배 명이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받았다.
“여보세요? 왜……?”
“언니? 지금 가고 있어? 오늘이지? 하 선생님께서 부탁하셨다는 그 사람 만나러 가는 날이.”
“응.”
건조하게 대답했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명의 목소리에 살포시 장난기가 어린다.
그 호기심과 장난기가 미묘하게 느껴지는 순간 아까부터 밀려오던 짜증이 다시금 올라왔지만, 애써 또 한 번 누르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와합.”
잠깐 머뭇거리다, 뜯어 붙이듯 덧붙였다.
“압둘와합.”
“압둘~~~~? 호호호호호. 압~둘~?”
순간 지금껏 참았던 신경질이 결국 치밀어 올라 쏘아붙였다.
“뭐가 그렇게 웃겨? 날도 더워 죽겠는데. 전화는 왜? 무슨 중요한 할 말 있어?”
명이 애써 웃음을 참으며 답했다.
“아니, 왜 화를 내? 그냥 잘 가고 있나 궁금해서 전화해 봤지.”
날이 너무 더워서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다고, 통화하기도 더우니 중요한 얘기 아니면 다음에 하자고 말하곤 부랴부랴 끊어 버렸다.
명이 왜 웃는지 이해가 간다. 왜 전화했는지도 안다. 외국인을 만나러 가는 것도 흥미로운데 생소한 아랍인이라니!
명과 같이 구경꾼의 입장이었다면 난 명보다 더 신났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그 사람을 만나러 가야 하는 당사자다. 재미는커녕 무어라 딱 꼬집어 설명할 수 없는 거리낌.
‘압둘’이라는 아랍 느낌 풀풀 나는 이름부터 부담스럽다.
‘하필 이름도 왜 압둘이야. 압둘은.’
명에겐 일부러 처음에 ‘와합’이라고만 했다. ‘압둘’이라고 덧붙이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명은 웃음보를 터뜨렸다. 공연히 남의 귀한 이름 가지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으면서도 어딘가 불편한 마음은 가시지를 않는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보다 얼마 전, 중학교 은사님이 한 선생님이 오랜만에 전화를 하셔서 다짜고짜 한 시리아 청년을 만나 보라고 하셨다.
“내가 얼마 전에 아주 멋진 20대 청년을 하나 알게 되었는데 생각도 바르고, 엄청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사람이야. 속도 깊고. 또 이야기를 하는데 얼마나 화제도 다양하고 재밌는 친구던지…….”
선생님의 계속되는 인물 소개를 들으며, ‘또 선생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인물이 하나 등장했구나’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고 열심히 호응했다. 그런데 열정적으로 인물 소개를 하던 선생님이 대뜸 이러시는 것 아닌가.
“그래선데, 너 한번 만나 봐라.”
“……네?! 제가……요?”
“그래. 우리나라에 유학 와서, 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이제 논문도 쓰고 해야 하나 봐. 네가 국어 교사이니 논문 쓰는 것도 좀 살펴봐 주고. 그리고 외국 생활하니까 어려움이 많을 것 아니니. 좀 도와주고 그러면 좋겠는데…….”
“…….”
“내가 있는 부산에 있으면 돌봐 주겠는데 서울에 살고 있으니 아무래도 챙겨 주기 어렵잖니. 그 친구에게 ‘서울에 내가 아끼는, 사람 좋은 제자가 한 명 있으니 그 애가 도와줄 거야. 그러니 꼭 만나 보라’고 했지. 호호호호. 너 괜찮지? 도와줄 거지?”
“…….”
“여보세요, 여보세요? 혜진아? 너 싫은 거니? 혹시 시리아 사람이라서 싫니? 싫으면 싫다고 얘기해도 돼.”
“아! 아, 아니에요. 선생님! 싫은 건 아니에요. 그런 건 아닌데…….”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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