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몽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집의 뒤란에 늙은 유자나무가 있었다. 늦가을이면 향기 물씬 풍기는 샛노란 유자를 한 구럭씩 따곤 했는데 어머니는 그것을 머리에 이고, 시오리 길 저쪽의 대덕장으로 가서 팔아 식구들의 고무신을 사다 신기곤 했다.
봄에 유자꽃이 하얗게 피면 꿀벌들이 잉잉거렸다. 다산성의 그 열매는 콩알처럼 자잘했을 때부터 많이 떨어졌다. 한학자이신 할아버지는 강낭콩 알만한 낙과들을 주워 말려두었다가, 감기 들면 약탕기에 신우대잎, 생강, 파뿌리, 감초, 말린 유자 껍질과 함께 넣고 달여 마셨다.
스물네 살의 어머니는 어느 날 뒤란 옹달샘으로 물을 길으러 가다가 땅바닥에 떨어진 유자 하나를 주웠는데, 그것이 여느 유자와 달리 샛노랬고 어른의 두 주먹을 합쳐놓은 것만큼 컸다고 했다. “하늘복숭아같이 탐스러운 유자를 주워 치마폭에다가 담았는디 그게 바로 니가 내 뱃속에 들어온 꿈이었어야.”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내가 무슨 일을 하다가 실패를 하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마다 들려주곤 했다. 그 유자가 여느 유자보다 더 크고 탐스러웠듯 그 꿈으로 인해 어머니 뱃속에 들어온 내가 당연히 여느 사람과 다른 특출한 삶을 살게 될 거라는 것이었다. 귀에 못이 박히게 여러 번 들었던 그 이야기는 내 영혼에 투영되었다가, 도전적인 성취의 의지로 변주되곤 했다. 음습한 고독, 혹은 어둠의 함정에 빠진 듯 절망해 있을 때, 빛을 찾아 나가는 동력으로 작용하곤 했다.
만월에 대한 추체험
중천에 뜬 둥근달을 머리에 인 채 잠든 갓난아기를 등에 없고, 시오리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곤 한 스물다섯 살의 어머니를 머릿속에 떠올린다. 갓난아기의 오른쪽 허벅다리 한가운데를 깊이 파먹어들어가는 알 수 없는 습진이 생겼으므로 어머니는 그 아기를 업고 병원엘 다녔던 것이다. 지금도 내 오른쪽 허벅다리 한가운데에 만월 모양의 흉터가 있다. 그걸 보면, 아기 업은 어머니가 병원에서 돌아오며 머리에 이고 오곤 한 그 샛노란 달이 머리에 그려지고, 그때마다 내 몸안에 알 수 없는 빛과 바람이 일곤 한다.
늦은 가을의 어느 초저녁에, 뒷동산 밤나무 숲에서 작은 쇠갈퀴김 긁는 데 사용하는 갈퀴를 이용해, 가랑잎을 긁어 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다섯 살 적의 일이라 기억한다. 등뒤에서 나를 지켜보는 누구인가가 있음을 느끼고 돌아보니, 황금색 쟁반 같은 달이 떠 있었다.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 나목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는데, 나의 검은 그림자도 그들 가운데 섞이고 있었고, 알 수 없는 어떤 두런거림인가가 있었다. 그 무렵 아득하게 먼 집 쪽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산골짜기의 숲에서 메아리 되어 있었다. 나는 갈퀴와 가랑잎 가득 든 바구니를 들고 집을 향해 걸었다. 달그림자들이 누워 있는 숲을 지나, 경사진 언덕을 미끄럼 타듯이 내려가자, 달빛을 온몸에 뒤집어쓴 사람들 한 무리가 우리집 마당 가장자리 흙담에 기대서서, 나를 불러대고 있었다. 내가 “응?” 하고 대답을 하자, 두 여자가 달빛을 머리에 인 채 나를 향해 달려왔다. 어머니와 큰누님이었다. 어머니가 나를 덥석 끌어안았다. “아이고, 내 새끼! 갈퀴나무를 많이도 긁었네!” 하고 오달져하면서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집으로 돌아오자 나를 에워싼 식구들 중 삼촌이 말했다. “도깨비가 업어 가면 어쩌려고 거기에 갔냐?” 그 말에, 내 속에 무엇인가를 주입하던 검은 숲 그림자들을 떠올렸다. 그 달그림자는 평생 동안 내 의식 속에서 알 수 없는 작용을 한다. 그것은 나를 문득 깨어나게 하는 알 수 없는 그림자 영상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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