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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
─ '자연적 자유'의 정의로운 실현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는 일반적으로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이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계 내에서 경제활동의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고 국가의 시장 개입을 배제하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주창한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스미스의 경제적 자유주의는 1980년대 중반부터 각종 규제 철폐와 자유경쟁 강화를 주장하며 등장한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다시금 각광받고 있다.
스미스는 1723년 영국의 스코틀랜드 커콜디에서 출생하였으며, 글래스고 대학에서 수학, 물리학, 도덕철학을 수학하였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지적 활동이 왕성했던 곳으로서 그 중심이 에든버러 대학과 글래스고 대학이었다고 한다. 스미스는 글래스고 대학에서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대표적 인물이었으며, 인간의 도덕 감정을 중시했던 프랜시스 허치슨으로부터 도덕철학을 배웠다.
글래스고 대학을 졸업한 후 스미스는 옥스퍼드 대학 대학원에 입학했으나, 타성과 나태함에 젖은 이곳의 교육 환경에 실망하여 그의 학업 활동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그리고 언어학 등을 독학하는 데 그쳤다고 한다. 그 후 스미스는 1751년 글래스고 대학 논리학 교수로 임용되었다가, 다음 해 도덕철학 교수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이 시기에 스미스는 스코틀랜드의 철학자이자 『인간본성론』1739을 저술한 데이비드 흄1711~1776과 교류하기 시작하여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2대 핵심 저작 중 첫 번째 저작인 『도덕감정론』1759을 집필한다.
그러나 스미스의 교수 생활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는 1764년 12년간의 교수 생활을 청산하고, 버클루 공작의 두 아들을 가르치는 가정교사직을 담당하게 된다. 대귀족의 가정교사가 된다는 것은 당시로써는 대학교수보다 더 명예로운 일이었다고 한다. 이 시기 스미스는 버클루 공작의 아들들과 3년 가까이 프랑스에 체류하면서 볼테르, 달랑베르, 엘베시우스와 같은 프랑스 계몽주의자들과 친숙해졌고, 케네와 튀르고를 비롯한 중농주의 경제학자들과도 교류하였다.
스미스는 여행을 마친 후 버클루 공작의 가정교사직에서 물러나 10여 년간 집필에만 전념하였고, 그 결과가 그의 두 번째 핵심 저작인 『국부론』1776이다. 스미스는 1778년 에든버러 관세 위원에 임명되어 관세 및 세금 계획과 시행을 담당하였고, 1787년에는 글래스고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되는 명예이사직을 역임하였다. 이렇게 일생을 보낸 스미스는 1790년 에든버러에서 향년 67세로 생을 마감한다.
애덤 스미스는 그의 생애가 말해주듯이 도덕철학 교수였고 일생에 걸쳐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이라는 두 권의 저작을 출간했다. 그런데 스미스가 비록 도덕철학 교수였지만, 당시의 도덕철학이란 오늘날처럼 철학의 한 분야인 윤리학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도덕철학은 신학, 윤리학, 법학과 경제학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학문 영역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도덕철학 강의 역시 네 부분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첫 번째 부분은 당시 뉴턴 역학에 기초한 천체물리학의 눈부신 성과와 기독교 유신론의 화해를 모색하며 등장한 자연 신학에 대한 것이었고, 두 번째 부분은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기초한 도덕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부분은 공법과 사법, 정부의 통치 방법을 포괄하는 사회 정의에 관한 것이었고, 마지막 부분이 국가의 부를 증진시키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도덕감정론』은 자연 신학과 윤리학 부분을 『국부론』은 마지막 부분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비록 스미스가 집필한 것은 아니지만, 세 번째 부분 역시 스미스의 강의를 기록한 학생들의 강의 노트가 발견되어 1896년 『정의, 경찰, 세금, 무기에 대한 강의』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렇게 스미스가 담당했던 도덕철학의 내용과 그의 핵심 저작인 『도덕감정론』을 보면 스미스를 흔히 경제학자로만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물론 철학사를 서술한 책을 보면 대개 스미스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이에 반해 대부분의 경제 사상사에서 스미스는 근대 경제학의 시조로 평가될 만큼 경제학자로서의 지위는 확고하다. 그러나 비록 그가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라 칭해질 만큼 근대 경제학의 표준이 될 만한 저작을 남겼지만, 동시에 이에 버금갈 만큼 윤리학에 대해서도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기고 있음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스미스 사상의 양대 축을 이루는 윤리학과 경제학은 서로 어떤 관계에 있을까? 이는 단순히 스미스의 각기 다른 관심을 보여주는 것일까? 아니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것일까?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도덕의 기초를 다름 아닌 타인에 대한 동감이라는 도덕적 감정에서 찾고 있으며, 『국부론』은 철저히 자기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심에 기초하여 경제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스미스의 두 저작은 완전히 다를 뿐만 아니라 서로 대립된 인간관을 전제한 것처럼 보이며, 이 때문에 이른바 ‘애덤 스미스 문제’라는 것이 발생한다. 이는 18세기 독일 학자들에 의해 제시된 문제로서, 스미스의 전체 사상이 서로 모순된 인간관에 기초하고 있다는 지적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동시에 이기심과 도덕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일반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스미스를 단지 경제학자로 축소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윤리학자로 한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경제학자로서의 스미스와 윤리학자로서의 스미스를 대립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스미스는 ‘애덤 스미스 문제’를 야기하는 서로 모순된 인간관을 전제한다기보다,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탐구와 이기적 인간의 풍요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원칙을 서로 결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스미스의 사상을 ‘자연적 자유의 정의로운 실현’으로 규정한다. 스미스는 ‘자연적 자유’라고 지칭된 경제활동의 자유가 다름 아닌 인간의 도덕성에 기초한 정의 실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하의 글에서는 스미스의 사상을 왜 자연적 자유의 정의로운 실현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를 세 단계에 걸쳐 설명할 것이다. 첫째, 스미스가 말하는 인간의 도덕성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1절) 둘째, 스미스가 말하는 자연적 자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2절) 셋째, 자연적 자유의 정의로운 실현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3절)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스미스의 사상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지적할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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