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총리 관저. 행정 기능을 담당하는 정부의 최고 권력자인 내각총리 대신이 집무하는 장소다. 총리는 이곳에서 각료 회의가 결정한 방침에 따라 정부의 성청省廳〔부처〕을 지휘·감독한다. 내각법 규정이 그렇다. 도쿄 도 지요다 구 나가타초 니초메 3-1東京都千代田区永田町二丁目三番一号. 지척에는 국회가 있고, 관청가인 ‘가스미가세키霞が関’도 멀리 있지 않다.
그곳은 국가권력의 중추다. 총리집무실은 5층이다. 총리집무실을 5층이다. 관방장관과 관방부장관, 총리보좌관의 방도 같은 층에 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지하에는 24시간 체제로 대규모 재해와 사건에 대응할 수 있는 위기관리센터가 있다. 옥상에는 헬리콥터 이착륙장이 구비되어 있다. 하지만 관저 안에 어떤 시설이 있고, 내부 구조가 어떤지를 상세히 공개할 수는 없다. 국가 기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관저는 중요한 무대 중 하나였다. 관저는 초기 대응을 지휘했다. 관저에서 멀리 떨어진 후쿠시마福島 원전에 닥친 위기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은 ‘레벨 7’에 해당할 만큼 심각했다. 방사성물질이 대량으로 대기 중에 방출되었고, 현지 주민은 피난해야 했다. 방사성물질이 비산飛散하는 상황에서 현県〔한국의 ‘도’에 해당하는 지방행정 구역〕의 경계는 의미가 없었다. 2012년 8월 현재 아직도 현 안팎으로 피난하는 주민이 있다. 피난민들이 원전 주변 고향으로 돌아갈 날이 언제인지는 기약이 없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의 “사고 수습 선언”과는 상반된 현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래대로라면 사고가 일어난 원전 가까이에 있는 오프사이트테러〔원자력재해대책센터〕에 현지대책본부를 설치해 사고 처리를 맡긴다. 오프사이트센터의 법률상 용어는 긴급사태사고처리거점시설이다. 1999년 연료 가공 회사 JCO의 임계 사고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설치되었으며 전국적으로 20곳에 달한다. 경제산업성 원자력안전·보안원에 따르면 센터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원자력 재해가 발생했을 때 중앙정부와 도도부현都道府県〔광역자치단체〕·시정촌市町村〔기초자치단체〕 등의 관계자들이 모여 원자력 방재 대책활동을 원활하게 조정하는 거점 역할을 한다. 정부의 원자력재해현지대책본부 빛 지방자치단체의 재해대책본부들과 연계해 정보를 공유하면서 응급조치 등을 강구한다.
이번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오프사이트센터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문제가 된 오프사이트센터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5킬로미터, 제2원전에서는 12킬로미터 떨어진 오쿠마마치大熊町에 있었는데, 관계자들이 신속하게 모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관료 가운데 불참한 이도 있었다. 게다가 원자력 사고에 대응하고자 세워진 건물임에도 방사능을 차단하는 공기 정화 필터가 설치되지 않아 실내 선량이 상승했다. 통신수단도 마비되었다. 지진 발생 5일째인 3월 15일 정부는 센터를 포기했고, 직선거리로 60킬로미터쯤 떨어진 후쿠시마 현청으로 그 기능을 이전했다.
초동 단계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오프사이트센터를 대신해 사고 정보를 수집하고 눈코 뜰 새 없이 사태에 대응한 것은 관저였다. 단추는 여기서부터 잘못 끼워졌다. 관저는 정보 부족에 시달렸고, 그런 관저를 보좌한 관료 조직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관저의 핵심 인물들은 뒷북만 쳤다. 아니, 원전에서 줄줄이 일어나는 사태가 관저의 온갖 수를 앞서갔다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사고 이후의 보도를 통해, 숨겨졌던 진실이 하나씩 밝혀졌다. 원전의 안전 심사를 맡은 내각부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들은 원자력 업계의 기부금을 받는 데 매우 익숙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위원 및 비상근 심사위원이었던 89명 중 마다라메 하루키班目春樹 위원장 등 24명이 2010년도까지 5년간 원자력 관련 기업 및 업계 단체로부터 총 8천5백만 엔을 기부받은 사실이 알려진 것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였다. 또 도쿄전력은 전력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해 자민당과 민주당의 고위 정치인들을 후원했다. 보안원은 원전 사고에 대응하는 방재 지침을 국제 기준에 맞게 개정하는 데 강력히 반대했고, 기존 원자로의 안전성 의혹이 행정소송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원전 중대사고 대책을 연기했다. 그리고 일본의 대형 전력 회사 및 관련 기업의 노동조합이 결성한 전력총련〔전국전력관련산업노동조합총연합〕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뒤에도 민주당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조직적인 진정 활동을 펼쳐 원전 존속 여론을 조성하고자 했다.
사고 발생 당시, 도쿄전력의 가쓰마타 쓰네히사 회장은 언론사 출신 인사들과 함께 베이징을 방문하고 있었다. 도쿄전력이 여행 경비를 일부 부담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사주이자 닛폰TV 사장까지 역임한 쇼리키 마쓰타로가 일본에 원자력발전소를 도입하는 데 앞장서 ‘원자력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면서부터는 원전 추진을 주장하는 자사 보도를 검증하는 것마저 포기했다. 신문사와 방송국에 홍보비 명목으로 거액의 자금을 쏟아붓기도 했다.
보도된 내용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것도 있었다. 정부 지진조사위원회 사무국을 맡은 문부과학성이 미야기·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거대 쓰나미〔지진해일〕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작성중이었는데, 비공식 회의에서 도쿄전력을 비롯해 원전을 소유한 세 개 회사가 ‘거대 쓰나미와 지진을 경계하라.’는 표현을 바꾸라고 요구한 것을 사무국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지진 재해가 일어나기 8일 전의 일이었다〔교도통신〕. 원자력발전의 안전을 책임지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전문가들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자리만 지켰다.
심각한 원전 사고가 일어났을 때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지는 지진이 발생한 그날 그 시점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전력 회사, 정치인, 관료, 학자, 노동조합, 그리고 언론 등 이른바 ‘철의 육각추’라고 할 만큼 굳건한 ‘원자력 마을’〔국내에는 ‘원전 마피아’로 통용되기도 한다〕의 주민들은 ‘사고는 없다.’고 적힌 화려한 비단 깃발을 국민들 앞에 흔들며 안전 신화에 권위를 부여해 왔다. 하지만 ‘3·11’이라는 현실 앞에 기는 처참히 꺾였다. 깃발은 비단이 아니라 거적 조각에 불과했다.
이번 원전 사고는 국가권력에 교묘하게 들러붙은 원전에 기대어 살아온 무리들의 정체와 원전 시스템의 불안전함을 낱낱이 드러냈다. 우리 모두가 그 사실을 목도했다. 원전은 하나의 권력이었다. 노다 내각은 정부와 국회의 사고조사위원회에서 최종 보고서도 나오지 않은 시점에 원전 재가동으로 방향을 틀었다. ‘전력 부족’, ‘경제활동 정체’ 같은 날카로운 칼을 국민에게 들이대면서 말이다.
원자력 마을에 사는 주민은 자신들의 균열을 재정비해 우리 앞에서 추악한 정체를 또다시 감추려 한다. 안전론, 비용론, 전력 수급론 등의 관점으로 논쟁할 일이 아니다. 원전 존폐 여부는 정책 문제가 아니라 국가 통치 방식을 바꿀지 여부로 귀결되는 문제이다. 나는 원자력 무리들의 반격이 시작됐다고 느낀다. 이 책은 거대지진이 발생한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부터 정부와 도쿄전력의 사고대책통합본부가 생긴 직후인 15일 저녁까지 ‘1백 시간’에 주목했다.
일련의 작위와 부작위가 이어지면서 사상 초유의 사고는 더욱더 심각해졌다. 나는 정치인과 관료, 도쿄전력 간부, 전문가들이 초기 대응 당시 보인 모습을, 국가권력의 중추인 관저를 무대 삼아 시간대별로 서술함으로써 우리에게 남은 숙제를 확인하고자 했다. 기술을 탄생시키고 사용하는 것은 인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술이란 인간의 사회적 활동을 통하고서야 비로소 그만의 가치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기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부르짖은 다케마니 미쓰오武谷三男, ‘인간과 기술론’을 주창한 호시노 요시로星野芳郎 같은 위대한 선인들이 생애를 걸고 피력한 바 있다. 인간의 행위를 고찰하지 않고 기술 자체의 문제를 논하는 것은 공허하다. 이 책에서 다룬 ‘1백 시간’ 동안 사람들과 조직들이 어땠는지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기술적 문제점 또한 부각될 것이다. ‘미나마타병 의사’로 알려진 하라다 마사즈미는 생전에 필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분노를 구실로 펜을 들어서는 안 된다. 아무것도 전할 수 없다. 분노를 세상에 알리고 오래 남기는 것은 냉철한 펜이다.”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작업이지만, 나는 해보려 한다.
이 책은 한 저널리스트가 터벅터벅 발로 이루어 낸 사고 조사 검증보고서다. 논평과 추측은 배제했다. 나는 오로지 팩트로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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