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내가 처음으로 생물학을 공부해볼까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한 마리의 나비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때는 초봄이었다. 열두 살인가 열세 살 무렵의 일이다. 뜰에 앉아 있는데, 노란 나비 한 마리가 팔랑거리며 울타리 위로 날아왔다. 나비는 방향을 돌리더니 머뭇거리다가 잠시 내려앉았다. 잠깐이었지만 나는 아주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는 날개의 맥과 반점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나비는 내가 드리운 그림자에 움찔하더니 다시 날아올라서 반대편 울타리 너머로 사라졌다. 그 절묘하면서 완벽한 모습의 나비를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와 전혀 다르면서도 어딘가 친숙하기도 하다고 말이다. 나비도 나처럼 분명히 살아 있었다. 움직일 수 있었고, 감지할 수 있었고, 반응할 수 있었고, 나름의 목적으로 충만해 보였다. 나는 궁금해졌다. 살아 있다는 것이 진정으로 어떤 의미일까?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생명이란 무엇일까?
나의 생애의 많은 시간에 걸쳐서 이 문제를 고민해왔지만, 흡족한 답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아마도 놀라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생명의 표준 정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이 오랜 세월 이 문제를 붙들고 씨름해왔음에도 그렇다. 이 책의 제목인 「생명이란 무엇인가What is Life?」조차도 뻔뻔하게 한 물리학자, 즉 에르빈 슈뢰딩거에게서 가져온 것이다. 그는 1944년에 같은 제목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될 책을 냈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서 무질서와 카오스의 상태를 향해 계속 나아가는 우주에서, 어떻게 생물들이 그토록 인상적인 질서와 통일성을 대대로 유지할 수 있는지를 다룬 책이다. 슈뢰딩거는 이것이 원대한 질문이라고 본 점에서 매우 옳았으며, 유전을 이해하는 것 ― 유전자가 무엇이며 어떻게 다음 세대로 충실하게 전달되는지 ― 이 이 문제를 풀 열쇠라고 믿었다.
이 책에서 나는 같은 질문 ― 생명이란 무엇인가? ― 을 하고 있지만, 유전의 비밀을 푸는 것만이 완전한 답을 얻는 길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대신에 나는 생물학의 탁월한 개념 5가지를 한 번에 한 단씩 걸어 올라가는 계단으로 삼아서, 생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단계적으로 명확하게 파악하고자 한다. 이 각각의 개념은 대부분 오래 전에 나온 것이며, 생물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설명한다고 널리 받아들여져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다양한 개념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묶어서 생명을 정의하는 통일된 원리 집합을 개발하는 데에 이용하려고 한다. 이 방식이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이 새로운 눈으로 살아 있는 세계를 볼 수 있도록 하는 일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시작하기에 앞서서, 우리 생물학자들이 원대한 개념과 거대한 이론을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고는 한다는 점을 말해두고자 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물리학자들과 조금 다르다. 우리는 특정한 서식지에서 사는 모든 종의 목록을 작성하든, 한 딱정벌레의 다리에 난 털의 개수를 세든, 유전자 수천 개의 서열을 분석하든 간에, 세부 사항, 목록 작성, 기재에 몰두하는 쪽을 좋아한다는 인상을 심어주고는 한다. 자연은 당혹스러울 만치, 더 나아가 감당할 수 없을 만치 압도적인 다양성을 가지고 있어서 단순한 이론과 통일된 개념을 찾기가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생물학에도 원대한 형태의 포괄적인 중요한 개념들이 있다. 생명의 이런 온갖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개념들이다.
내가 이 책에서 설명하려는 5가지 개념은 다음과 같다. “세포”, “유전자”,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 “화학으로서의 생명”, “정보로서의 생명”이다. 나는 이런 개념들이 어떻게 나왔는지, 왜 중요한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설명하고,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발견을 해냄에 따라서 지금도 변하고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또한 과학적 발견을 위해서 애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여러분이 조금이나마 느껴보도록 하고 싶기에, 이런 발전을 이룬 과학자들도 소개할 것이다. 그들 중에는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과학자들도 있다. 또 직감, 좌절, 행운, 진정으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드물게 찾아오는 놀라운 순간 등 실험실에서 내가 연구를 하면서 겪었던 일들도 들려줄 것이다. 과학적 발견의 짜릿함을 공유하고 자연 세계를 점점 더 이해해갈 때의 만족감을 여러분도 느껴보도록 하는 것이 내가 바라는 목표이다.
인간 활동은 우리의 기후와 기후가 지탱하는 생태계의 상당 부분을 견딜 수 있는 한계까지 ― 아니 그 너머까지 ― 내몰고 있다. 우리가 아는 지금의 생명을 유지하려면, 살아 있는 세계를 연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모든 깨달음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몇 년 그리고 수십 년에 걸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태어나고, 먹고, 치료하고, 세계적인 유행병을 예방할지를 놓고 선택을 내려야 할 때, 생물학이 지침을 제공할 것이라고 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책은 생물학 지식의 응용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보고, 그런 응용이 야기할 수 있는 어려운 균형 잡기, 윤리적 불확실성,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제들을 둘러싼, 점점 커져가는 논쟁에 끼어들기 전에, 먼저 생명이 무엇이며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물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사는 우주는 방대하고, 우리의 경외심을 일으키지만, 그 드넓은 우주의 여기 한구석에서 번성하고 있는 생명이야말로 우주의 가장 매혹적이면서 수수께끼 같은 부분에 속한다. 이 책의 5가지 개념은 올라갈수록 지구의 생명을 정의하는 원리들을 서서히 드러내주는 계단 역할을 할 것이다. 또 이 개념들은 우리 행성의 생명이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을지 그리고 우주의 다른 어딘가에서 마주칠 생명이 어떤 모습일지를 생각하는 데에도 도움이 도리 것이다. 여러분의 출발점이 어느 곳이든 간에 ― 자신이 과학을 거의 또는 전혀 모른다고 생각할지라도 ― 이 책을 덮을 무렵이면, 여러분과 나, 그리고 섬세한 노란 나비와 우리 행성의 다른 모든 생물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목표로 삼은 바가 바로 그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 모두가 생명이 무엇인지를 더 깊이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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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
─ 생물학의 원자
나는 노란 나비와 마주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학교에서 처음으로 세포를 보았다. 우리 반 친구들이 직접 키운 양파의 뿌리를 슬라이드에 올려서 짓누른 뒤, 뿌리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았다. 학생들에게 꿈을 주는 생물학 교사 키스 닐은 우리가 생명의 기본 단위인 세포를 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러했다. 상자 모양의 세포들이 질서 있게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이런 작은 세포들의 성장과 분열이 양파 뿌리를 흙 속으로 뻗는 힘과 자라는 식물에 물과 양분과 지지대를 제공한다니 정말로 놀라웠다.
세포에 관해서 배우면 배울수록, 경이감은 커져가기만 했다. 세포는 모양과 크기가 놀라울 만치 다양하다. 대부분은 너무 작아서 맨눈으로 볼 수 없다. 정말로 작다. 방광에 감염증을 일으킬 수 있는 전형적인 기생성 세균은 3,000마리를 늘어세워야 1밀리미터쯤 된다. 반면에 아주 큰 세포도 있다. 아침에 달걀을 먹을 때, 그 노른자 전체가 하나의 세포라는 사실을 떠올려보기를. 우리 몸의 세포 중에도 아주 큰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등뼈의 맨 아래에서부터 엄지발가락 끝가지 뻗어 있는 신경 세포도 있다. 세포의 길이가 약 1미터에 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런 온갖 다양성도 놀랍기는 하지만,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모든 세포가 지닌 공통점이다. 과학자들은 언제나 근본 단위를 파악하는 일에 관심을 보인다. 물질의 기본 단위인 원자가 가장 좋은 사례이다. 생물학의 원자가 바로 세포이다. 세포는 생물의 구조적 기본 단위이자, 생명의 기능적 기본 단위이기도 하다. 이 말은 세포가 생명의 핵심 특징을 지닌 가장 작은 실체라는 뜻이다. 이것이 생물학자들이 세포론cell theory이라고 말하는 것의 토대이다. 우리가 아는 한, 지구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세포 하나 또는 세포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론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세포는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단순하다.
세포론은 약 150년 전에 나왔으며, 생물학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이 개념이 생물학의 이해에 중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은 사람들이 이 개념을 시큰둥하게 대한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진다. 대다수가 학교 생물 수업 시간에 세포를 그저 더 복잡한 생물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라고 생각하라고 배워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세포는 훨씬 더 흥미로운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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