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아이들은 영혼의 뿌리까지 어쩌지 못하게 병든 존재는 아니었다. 말간 얼굴과 순진한 마음의 결까지 돌이킬 수 없게 파괴되고 망가지지는 않았던 거다. 내가 만난 소년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줘야겠다는 용기를 내게 된 까닭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첫 만남
철컹철컹, 무거운 철창을 대여섯 번 통과해서 교실에 도착했다. 교실이라고는 하지만, 학교 교실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이다. 4인용 좌식 테이블 서너 개, 소년원 직원용 책상, 스탠딩 형의 냉난방기, 주말 종교 집회를 위한 종교 기물들이 전부다. 미적인 것을 고려한 공간은 없다.
교실에 들어가니 일곱 명의 소년이 좌식 테이블 주위에 앉아 있다. 내가 가게 된 소년원은 남학생만 있는 곳이다. 현실에서 만난 소년원 학생은 덩치가 크지도, 눈빛이 반항적이지도, 나를 꼬나보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전날 밤 나를 악몽에 시달리게 했던 ‘험상궂은 학생’의 모습은 아니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은 손등부터 팔, 뒷목까지 이어진, 아마 등까지 펼쳐져 있을 대형 문신이었다. 흠칫했다. 일상에서 작은 문신은 흔하게 접하지만, 몸의 넓은 면적에 그려지고 채색된 온갖 물고기나 용 그림의 문신은 낯선 까닭이다.
우리는 금요일마다 만나서 두 시간씩 국어공부를 하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책 읽는 수업을 하려고 책을 열 권 준비해 갔다. 고심해서 고른 목록이었고, 대한민국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책들이었다.
“읽고 싶은 책으로 한 권씩 골라볼래?”
학생들은 얼른 한 권씩 선택했다.
“한 권 다 읽으라고 하면 싫지? 오늘은 열 장만 읽을 거야. 어때? 부담 없지? 열 장만 읽고, 마음에 드는 문장 하나만 옮겨 적어보자.”
나는 자신만만했다. 내가 골라 온 책들은 틀림없이 재미있을 거야. 열 장을 읽고 문장 하나만 적는 일은 부담 없는 일일 테고, 아이들은 책 읽는 것이 괜찮은 일이라고 여기게 되겠지.
책을 펼친 지 1분 정도 지났을까? 한 학생이 “선생님, 저 다 읽었어요.” 하자, 너도나도 “저도요.”, “저도 다 읽었어요.” 한다. 2분도 안 걸렸다. 모든 학생들이 2분 안에 20페이지 읽기를 마쳤다.
“어…, 벌써… 다… 읽었어? 그러면… 마음에 드는 문장도… 적어볼래?”
놀랍게도(?) 모두 문장 하나씩 골라서 적고 발표도 했다. 이 역시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책읽기가 안 되는 학생들이었다. 묵독을 하면서 책의 세계에 빠지는 것이 어려운 학생들이었다. 수업시간인 데다가 교사가 하라고 하니 시늉이라도 내면서 최대한 협조만 했던 거다.
수업을 끝내고 다시 철컹철컹 소리를 들으며 소년원을 나왔다. 처음 만난 아이들과의 수업. 2분 만에 책 20페이지를 읽어내는 초능력 소년들과 만났다. 소년들이 초능력을 발휘하지 않을 독서 방법은 무엇일까.
첫 수업은 이렇게 실패했다.
초능력 발휘하지
않을 거지?
김동식 작가의 짧은 소설 「스마일맨」을 준비했다. 지난 수업 때는 ‘읽기’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늘은 어떻게 해서든지 읽기에 성공해야 한다. 오늘도 소년들이 읽는 일에 초능력을 발휘한다면 나의 수업은 길을 잃을 것 같다. 각자 묵독하는 방법 대신 한 쪽씩 돌아가며 소리내어 읽기로 했다. 아이들이 잘 읽을까. 소설 읽는 것을 흥미로워할까.
다행히, 정말 다행히 아이들은 읽었다. 읽고 나서 이런 평도 들려주었다.
“선생님, 이 소설 엄청 기발하네요.”
“김동식 작가님이 쓴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싶어요. 너무 재미있어요.”
열심히 읽는 모습을 보니 읽지 않으려는 저항감으로 똘똘 뭉친 아이들은 아니었다. 읽기에 익숙하지 않고 능숙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돌아가면서 낭독하니 각자 속으로 읽는 것보다 잘 읽는다.
당분간 우리는 서로에게 책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되겠구나.
(중략)
사람이
바닥까지 추락하면
면회실로 가는 길목, 나무 팻말이 서 있다. 팻말에는 검은색의 두꺼운 궁서체로 ‘면회실’이라고 쓰여 있다. 오늘 아침에 보니, 팻말 바로 옆에 산수유꽃이 노랗게 피었다. 산수유꽃이 바람에 흔들릴 때 나의 마음도 같이 흔들, 한다. 면회실이라는 이름이 주는 아릿한 느낌. 만날 수 없음, 보고 싶음, 기다림. 그런 느낌 때문이겠지. 나는 올해 면회실로 가는 길목의 사계절을 보게 될 것이다.
나의 학생들은 이제 단편소설 한 편만 읽지 않고, 책 한 권을 온전하게 읽기로 했다. 몇 가지 책 중에서 아이들이 고른 책은 김동식 작가의 『회색 인간』이다. 우리는 둥그렇게 모여 앉아서 번갈아가면서 두어 페이지씩 소리 내어 읽었다. 책을 읽는 아이들의 모습은 ‘책에 코를 박고 있다’는 말을 흉내라도 내고 있는 듯했다.
「회색 인간」은 이런 내용이다. 지저(地底) 세계의 괴물들이 자신들이 살 세계를 만들기 위해 인간들에게 땅파기를 시킨다. 진흙 냄새가 나는 빵만 겨우 먹고 사는 인간들은 극도의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곡괭이 자루까지 먹는 지경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노래를 시작했고, 그림 그리기와 소설 쓰기를 시작했다. 예술과 만난 인간들은 놀랍게도 다른 이와 빵을 나눌 줄 알게 된다. 회색 인간들은 더 이상 회색 인간이 아니게 된다.
이 소설에는 자극적인 표현이 군데군데 나온다. 머리가 수박처럼 터진다든지, 배가 고픈 나머지 내 아이의 귓불을 뜯어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든지. 아이들이 이런 표현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혹시 예민하게 반응하지는 않으려나.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왜 썼을까?”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다. 강준이와 주고받은 말.
“사람은 서로 위해주며 살아야 한다. 또 사람에게는 문화가 필요하다. 작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람에게 문화가 왜 필요할까?”
“먹고사는 것에 급급해지면 마음이 차가워지잖아요. 그러면 문화를 누릴 여유도 없어요. 사람은 문화를 누릴 만큼의 여유는 있어야 해요. 먹고사는 일에 급급하면 서로를 위해주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먹고사는 일에 급급해지면 안 되는 거예요.”
17세의 소년이 ‘먹고사는 일의 급급함’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한다. 이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된 삶의 경험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마음이 예사롭게 여겨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인상 깊은 구절을 발표하는데, 몇 명의 학생이 동일한 구절을 언급했다.
“사람이 바닥까지 추락하게 되면….”
“이 구절이 왜 인상 깊어?”
“지금이 저에게 그런 시간이에요. 바닥까지 추락한 시간.”
아이들의 대답은 비슷했다.
사람은 자신의 처지와 관점에서 책을 읽는다. 연인과 헤어진 사람은 이별 이야기에 유난히 목이 멘다. 이별을 다룬 세상의 모든 노래 가사는 내 마음을 알고 쓴 것만 같다. 갇힌 사람에게는 자유의 이야기가 절절하다. 소년원에 갇힌 아이는 지금이 자기 인생에서 최악의 시간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유독 그런 표현이 마음에 들어와 얼음 송곳처럼 콕 박힌다.
아이들은 네다섯 줄의 짧은 글 쓰기를 했다. 주제는 ‘가장 슬펐을 때’. 모든 아이가 미리 짠 것처럼 같은 내용을 썼다. 소년원에 오기 전 재판 받을 때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슬펐을 때란다.
“재판 받는 날이 그렇게 슬펐어?”
“선생님은 안 봐서 모르실 거예요. 갑자기 포승줄로 저를 묶고, 엄마는 막 울고, 어우, 정말 장난 아니에요. 10호 처분받았을 때, 지옥행을 판결받은 기분이었어요.”
‘가장 기뻤을 때’를 주제로 하니, 이번에도 모든 아이가 같다. 가장 기뻤을 때는 재판 받기 전의 삶이라고 한다. 재판은 아이의 일생에서 충격이고 큰 사건이었던 거다.
아이들에겐 재판 이전의 삶과 재판 이후의 삶이 존재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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