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앓고 있는 제 몸은
건강한 몸보다 허약해요
― 작가 백세희의 몸
〈말하는 몸〉은 내 침대에서 시작한 이야기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오랫동안 꿈꿨던 기자란 직업으로 일하기 시작하고 1년이 좀 넘은 봄날 아침이었다. 나는 잠에서 깨어났지만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그레고르처럼 벌레가 된 건 아니었고, 누워서 울고 있었다. 한 시간 넘게 스스로를 달래면서 겨우 회사에 출근했다. 그런데 출근할 때만 되면 일어나지 못하는 날이 늘었다. 다음날도, 그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눈을 뜨면 어김없이 눈물이 났다.
일을 잘하고 싶었다. 잘한다고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회사생활은 엉망이 됐다. 제자리에 깜박대면서 오른쪽으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는 마우스 커서를 하루종일 바라보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회사 건물이 무너졌으면, 그래서 내가 기사를 쓰지 못하겠다고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마감 시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왔고, 기사를 한 줄도 쓰지 못한 나는 선배에게 ‘오늘은 못 쓰겠다’고 보고해야 했다.
더이상 이렇게 일할 순 없겠다는 생각에 휴가를 내고 찾아간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밥벌이를 시작하고 고작 1년 만이었다. ‘사실은 우울증이 아니라 의지력이 부족했던 게 아닐까. 어쩌면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지 않아서 그럴지도 몰라. 잠을 규칙적으로 자지 않은 게 문제였던 걸까.’ 우울증 진단을 내린 정신과 의사 앞에서 나는 실례가 되는 일임을 알면서도 내가 왜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건지 끊임없이 물었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의심했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내 태도가 많은 우울증 환자들의 전형적인 반응이라는 걸 알게 됐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쓴 작가 백세희를 만난 건 그 무렵이다. 기분부전장애를 가진 백세희가 정신과 의사와 상담한 일지를 정리한 이 책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였다. 인터뷰를 핑계로 백세희를 만나기로 했다. 벌건 대낮에, 초면이었음에도 그는 맥주를 시켰다. 에라, 모르겠다. 인터뷰이가 그렇게 나오니 나도 맥주를 시키기로 했다. 두 시간이 넘도록 우리는 서로가 겪고 있는 정신질환에 대해 묻고 들었다.
그날 백세희는 인터뷰를 마치고 내게 록산 게이의 『헝거』를 주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책이고 나도 분명 좋아할 거라며. 곧 그는 몸에 ‘헝거’를 타투로 새길 거라는 소식을 전했다. 대체 책이 얼마나 좋길래 타투로 새긴다는 거지. 그리고 책을 펼쳤다. 그렇게 나는 록산 게이를 처음 만났다.
*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제 몸은 건강한 몸보다 허약해요.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을 때가 있는데, 마치 무거운 돌이 몸을 짓누르는 듯해요.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어서 회사에 연차를 낸 적도 많고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제 몸은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거든요. 하지만 제 몸을 혹사시키면서 꾸역꾸역 회사에 다니다가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져내렸어요. 대부분 ‘나도 힘들고 회사 다니기 싫다’고 말하겠지만요. 물론 맞는 말이고요.
(중략)
제게 몸은 큰 우울감을 가져다주는 요소예요. 이상적인 몸매의 기준이 정해져 있고, 거기에 가까워질수록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문화가 있잖아요. 그 문화가 제 몸을 혐오하게 만들어요. 어릴 때는 단순히 날씬한 몸을 원했다면 지금은 훨씬 구체적이에요. 승모근이 없으면서도 적당히 넓은 직각 어깨, 크고 예쁜 가슴, 긴 팔과 다리, 넓은 골반, 매끈한 일자 다리, 그런 조건에 저를 끼워맞추려고 했어요. 그런데 노력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부분이 많잖아요. 바꿀 수 없다는 사실에 과하게 절망하고 분노했어요. 그게 또 우울증으로 이어졌고요. 우울증이 제 몸에 영향을 미치는 날도 있었지만, 내 몸이 우울증에 영향을 준 적도 많았어요.
저는 외모강박이 병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신체이형장애’라는 질환이 있대요. 남들이 볼 때는 날씬한데 거울로 나를 보면 뚱뚱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성형하거나 살을 빼는 거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외모강박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장 TV만 틀어도 ‘이게 멋진 몸매다’ 광고하고, 온라인에서도 ‘배우 같은 몸매를 갖는 법’ ‘다이어트 자극 사진’ 등 몸매 가꾸기를 권하는 콘텐츠가 많아요. 어떻게 이런 콘텐츠에 영향받지 않을 수 있는지가 더 의문이거든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난 내가 좋아’라거나 ‘난 내 몸이 만족스러워’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아니면 그런 척하는 사람이거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죠. 하지만 ‘너는 왜 그렇게 만족을 못 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가혹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저는 ‘나도 예쁘다’라고 최면을 거는 게 아니라 ‘이게 내 얼굴이다, 받아들이자’라고 생각하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그간 바꿀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집착했던 것 같아요.
록산 게이의 『헝거』를 처음 읽었을 때 충격을 받았어요. 엉엉 울었거든요. 있는 그대로 다 끄집어내는 느낌. 내면을 탈탈 털어서 보여주는 그 느낌이 저한테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마음이 아팠고요. 그의 이야기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전부는 아닐지라도 부분적으로 공감할 지점이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다이어트나 몸에 관한 상처 같은 것들, 자기를 가두는 모습들이 저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누군가가 자신의 아픔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면 그걸 듣는 저도 제 이야기를 좀 편하게 털어놓는 것 같아요. 작가가 너무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니까 제 안에 묻어뒀던,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던 상처들이 떠올랐어요. ‘드러내기’의 힘을 크게 느꼈고, 저도 그 상처를 드러내려고 글을 적어봤거든요. 생각보다 심플하게 정리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극복할 수 있었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이 책을 자주 선물했어요.
재밌는 건, 마침 제가 내일 타투를 하러 가거든요. ‘hunger’를 레터링으로 새기려고 해요. ‘헝거’가 ‘굶주림’ ‘갈구’, 그런 의미잖아요. 저는 항상 뭘 갈구하는 느낌이에요. 사실 우울증도 잘살고 싶기 때문에 걸리지 않았을까요? 그냥저냥 흘러가는 대로 살려면 살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원하는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고, 뭔가를 계속 갈구하는 거죠. 애정에 굶주려 있고, 감정에 굶주려 있고요. 이런 제 모습을 몸에 새기고 싶어요. 타투를 보며 이 마음을 되새기고 충만한 저를 만들어가기 위해서요.
백세희
지은 책으로 정신과 상담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있고, 참여한 책으로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몸의 말들』이 있다. 나의 마음을 돌보는 일만큼 몸과 동물권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