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걸릴 뿐이에요
현성이가 새 신발을 신고 왔다. 생긴 건 축구화 같아도 ‘풋살화’라고 했다. 내가 잘 못 알아들으니까 또박또박 “풋, 살, 화. 풋살화예요. 축구화 아니고”라고 강조했다. 풋살화는 축구화랑 바닥이 다르고, 그냥 운동화보다 발등 부분이 납작해서 공 차기가 좋다고 했다. 아버지랑 같이 인터넷 쇼핑몰을 둘러보며 골랐고, 자기는 3학년치고는 발이 작아서 치수를 정할 때 좀 고민했고, 지난주에 주문했는데 어제야 도착했기 때문에 오늘 처음 신었으며, 이걸 신었더니 잘 뛰어지는 것 같았고, 그런데 생각만큼 그렇게 잘 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야기를 계속하려는 현성이를 간신히 말렸다.
“그래, 우리 일단 신발을 벗고 들어갈까?”
현성이는 아마도 이 말을 하려고 뜸을 들였던 것 같다.
“이게요, 오늘 처음 신은 거잖아요. 그래서 엄마가 끈을 묶어 주셨거든요. 이따가 제가 잘 못 묶을 수도 있어요.”
“선생님이 묶어줄까?”
“어젯밤에 연습을 하긴 했어요. 그러니까 어쩌면 될지도 몰라요.”
“알겠어. 현성이가 해 보고 잘 안 되면 선생님이 거들어줄게. 그럼 어떨까?”
결국 그렇게 합의하고서야 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독서교실 덕분에 어린이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많다. 그중 하나는 어린이는 신발을 신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몰랐다기보다는 새삼스러운 발견이었다. 생각해 보면 신발 신는 일 자체가 복잡한 움직임이기도 하다. 왼쪽 오른쪽 신발을 정리하고, 발을 꿰고 뒤축이 구겨지지 않게 하면서 뒤꿈치를 밀어 넣어야 한다. 어른도 때로는 허리를 굽히고 손을 써서 정리를 해야 된다. 게다가 어린이들은 신발이 자주 바뀐다. 자라기 때문이다. 스스로 의식하지는 못하겠지만, 신발을 신을 때마다 발 크기가 다른 셈이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했더니 한 친구가 자기는 어렸을 때 신발의 왼쪽 오른쪽을 구분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며 울분을 토했다.
“아니, 왜 둘을 비슷하게 만드는 거야? 애초에 양쪽을 확실히 다르게 디자인하면 되잖아. 색깔만이라도 구분하든가. 미묘하게 다르니까 신발 신을 때마다 시험당하는 것 같더라고. 어른들은 어떻게 한 번에 양쪽을 딱 찾는지 신기했어.”
“그래서 우리 엄마는 신발 바닥에 ‘오’, ‘왼’ 이렇게 써 줬는데 그건 왠지 마음에 안 들더라고.”
“나는 신발 끈 풀어지는 게 그렇게 싫었어. 찍찍이벨크로 신발보다 끈 있는 신발이 훨씬 예쁜데. 아니, 어렸을 땐 왜 그렇게 끈이 잘 풀어졌을까?”
“애초에 잘 못 묶어서 그랬겠지. 리본 묶는 것도 처음엔 잘 안 되고.”
그랬던 어린이들이 이렇게 다 컸다며 장하다고 함께 소리내어 웃었다.
마침 그날 현성이와 읽은 책은 『시간이 흐르면』이었다. 윤곽이 뚜렷한 그림과 간결한 글로 ‘시간이 흐르면’ 일어나는 일들을 담아낸 그림책이다. 시간이 흐르면, “아이는 자라고 연필은 짧아져”. 시간이 흐르면, “빵은 딱딱해지고 과자는 눅눅해지지”. 그리고 이어서 신발 끈을 묶는 어린이 모습이 등장한다. “어려웠던 일이 쉬워지기도 해”라는 문장과 함께.
어쩐지 뭉클해져서 현성이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서 신발 끈 묶는 일도 차차 쉬워질 거야.”
그러자 현성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거울을 보지 않았지만 분명히 나는 얼굴이 빨개졌을 것이다. 지금도 할 수는 있는데. 아까 현성이가 분명히 ‘연습했다’고 했는데. 어린이는 나중에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도 할 수 있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어느 쪽이 오른쪽 신발일까 골똘히 생각하면서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신발 뒤축이 구겨지지 않게 손가락으로 당기며 발을 넣었다가 손가락이 안 빠져서 끙끙대면서 어른이 되었다. 신기 편한 벨크로냐, 예쁜 끈 운동화냐를 두고 고심하면서 어른이 되었다. 현성이 말마따나 그것도 맞지만, 그때도 우리는 우리였다. 지금보다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버스를 타고 내릴 때, 문을 열고 닫을 때, 붐비는 길을 걸을 때나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머뭇거릴 때 어린이에게 빨리 하라고 눈치를 주는 어른들을 종종 본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간단한 일이라 어린이가 시간을 지체하면 일부러 꾸물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어렸을 때 기다려 주는 어른을 많이 만나지 못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지금 어린이를 기다려 주면, 어린이들은 나중에 다른 어른이 될 것이다. 세상의 어떤 부분은 시간의 흐름만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나는 어린이에게 느긋한 어른이 되는 것이 넓게 보아 세상을 좋게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를 기다려 주는 순간에는 작은 보람이나 기쁨도 있다. 그것도 성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린이와 어른은 함께 자랄 수 있다.
수업이 끝난 뒤 현성이는 아버지한테 배운 방법을 떠올리며 신발 끈을 묶었다.
“발을 끝까지 넣은 다음에 여기를 당기고, 묶은 다음에 이렇게 고리를 만들고, 돌려서…… 앗, 풀어졌다. 고리를 만들고 돌려서? 잠깐만요.”
현성이는 내 도움 없이 양쪽을 다 묶고 의기양양하게 독서교실을 나섰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보니 그새 오른쪽 끈이 풀어져 있었다.
“이거 한쪽만 선생님이 도와줄게. 엘리베이터 타야 되니까.”
현성이도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너무 빨리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신경 쓰면서 매듭을 단단히 지었다.
이날 현성이가 어머니를 보자마자 한 말은 이랬다.
“엄마, 이거 왼쪽은 내가 묶은 거야!”
독서교실에서 어린이를 만나면서 얻는 좋은 점이 많다. 그중 하나는 왼쪽 신발 끈을 혼자 묶은 현성이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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