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2019년 3월, 고등학생들이 대학입시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연방 검찰은 깜짝 놀랄 발표를 했다. 33명의 부유한 학부모들이 예일, 스탠포드, 조지타운, 서던캘리포니아 등의 명문대에 자녀를 집어넣기 위해 교묘히 설계된 입시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이 음모의 중심에는 윌리엄 싱어라는 악덕 입시상담가가 있었다. 그의 사업은 자식 걱정에 노심초사하는 부유한 학부모들이 대상이었다. 싱어의 회사는 최근 수십 년 동안 부와 명예를 얻는 관문이 된, 지독히도 경쟁이 센 대학의 입시 미로를 요리조리 통과하는 일을 전문으로 했다. 명문대가 요구하는 최상급 성적을 갖추지 못한 학생들에게, 싱어는 냄새 나는 처방을 마련해주었다. SAT, ACT 등의 표준 시험 감독관들에게 돈을 찔러주고 해당 학생들의 답안지를 조작해 성적을 부풀리도록 한 것이다. 또한 운동부 감독들에게도 돈을 써서 운동을 아예 할 줄 모르는 학생조차 특기생 자격을 얻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자기 학생의 사진을 실제 운동부원 사진과 바꿔치는 수법으로 가짜 특기생 자격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싱어의 부정 입학 서비스 요금은 결코 싸지 않았다. 어느 유수 로펌 회장은 싱어의 돈을 받은 센터 감독관이 딸의 대입 시험 성적을 알맞게 조작해 주는 대가로 7만 5,000달러를 냈다. 어느 가족은 싱어에게 120만 달러를 주고 그 집 딸이 축구 특기생으로 예일대에 들어가게끔 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축구를 해본 적도 없었다. 싱어는 예일대 축구 감독에게 그 건으로 40만 달러를 안겼고, 그 감독 역시 기소되었다. 한 TV 배우와 패션디자이너인 그녀의 남편은 두 딸을 서던캘리포니아대에 부정 입학시키려 싱어에게 50만 달러를 주었다.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로 유명한 펠리시티 허프먼은 싱어에게 ‘할인 서비스’를 받았다. 1만 5,000달러밖에 내지 않았으니 말이다. 싱어는 그녀 딸의 SAT 성적을 손질해 주었다.
이렇게 싱어는 ‘대입 부정 사업’을 8년간 운영하며 총 2,500만 달러를 챙겼다. 입시 부정 스캔들은 대중의 한결같은 분노를 일으켰다. 진영 대결이 심화되며 미국인들이 뭐 하나라도 일치된 입장을 갖기가 힘든 지금, 이 사건은 좌우를 막론하고 모든 정파에서 한 목소리로 비난을 퍼붓게 만들었다. 〈폭스뉴스〉, 〈MSNBC〉,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도 한목소리였다. 명문대에 가려고 뇌물을 쓰고 조작을 한 게 변명의 여지가 없음은 모두가 동의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노는 단지 ‘특권층 부모들이 불법적 수단으로 자기 자녀들을 명문대에 입학시켰다’는 데 따른 분노보다 더한 무언가로부터 나왔다. 이 사건은 상징적인 스캔들이었다. ‘누가 앞서가고 있으며, 그것이 왜 허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이 사건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게 분노하는 사람들의 주장이었다.
이러한 분노의 표출도 어김없이 정치적 영향을 받았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위터와 〈폭스뉴스〉를 통해 이 사건에 연루된 ‘헐리웃 진보’를 비아냥댔다. “저 인간들이 어떤지 좀 보세요.” 대통령의 며느리인 라라 트럼프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헐리웃 엘리트들, 진보 엘리트들은 늘상 평등을 주장했죠. 모두가 공정한 몫을 받아야 한다면서요. 그런데 이야말로 사상 최대의 위선 아닌가요? 그들은 부정을 저지르고 그들의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수표를 끊어줍니다. 그 학교에 갈 수 있는 진짜 자격을 가진 아이들을 희생시키면서 말입니다.”
한편 진보 쪽에서도 이 사건이 충분히 명문대에 갈 자격이 되는 학생들을 희생시킨 일이었음에 동의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스캔들을 ‘보다 널리 퍼져 있는 부정의가 불거져 나온 꼬투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대학 입학 과정에 부와 특권이 끼치는 영향력은 심지어 부정이 없는 경우에도 심각하다는 것이다. 미 연방검사는 기소장에서, 위협받고 있는 원칙에 대해 지적했다. “부자들만을 위한 입시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문 사설과 칼럼을 쓰는 사람들은 곧바로 지적했다. ‘돈은 그동안 계속 입시에서 한몫을 해왔다’고. 특히 여러 미국 대학들이 동문의 자녀나 관대한 기부자의 자녀에게 혜택을 준다는 점을 말이다.
입시 부정 스캔들로 진보 엘리트들을 비웃은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맞서, 진보파들은 ‘대통령의 사위인 제러드 쿠슈너가 그저 그런 성적으로도 하버드대에 입학했다’며 그것은 ‘부유한 부동산 개발업자인 그의 아버지가 250만 달러를 그 대학에 기부한 덕’이라고 받아쳤다. 트럼프 스스로도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 150만 달러를 기부한 바 있는데, 그의 자녀들인 도널드 트럼프 2세와 이방카가 그 학교에 다닐 때였다.
입시의 윤리
이 입시 부정 스캔들의 핵심인 싱어는 때때로 간당간당한 성적의 지원자들이 거액 기부 덕분에 ‘뒷문’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만의 기법을 사용했다. 그가 “옆문 뚫기”라고 부른 그것은 보다 가성비가 뛰어난 방법이었다. 그는 자신의 고객들에게 통상적인 ‘뒷문’은 자신의 부정 입학 수법보다 “돈이 열 배나 들며 확실성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거액 기부를 대학에 제의한다 해서 입학이 100퍼센트 보장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옆문 뚫기, 즉 뇌물 건네기와 시험 성적 조작하기는 입학을 확실히 보장해 준다. “우리 ‘패밀리’는 확실함을 원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비록 돈이 들어가는 건 뒷문이든 옆문이든 마찬가지지만, 그게 도덕적으로 똑같다고 볼 수는 없다. 일단 뒷문은 합법적이며, 옆문은 불법이다. 미 연방검사는 이 점을 분명히 했다. “건물을 한 채 기부해서 자녀가 그 학교에 들어갈 가능성을 높인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사기와 위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가짜 시험 점수, 가짜 자격증, 가짜 사진, 대학 직원에게 뇌물 먹이기… 이런 걸 이야기하는 겁니다.”
싱어, 그의 고객들, 그가 뇌물을 준 운동부 감독들을 기소하면서, 뇌물 수수자들은 소속 학교에 자신들이 ‘1학년생 자격을 팔아먹었다’고 알리지는 않았음이 드러났다. 그들은 다만 정직하지 못한 계획에 동참했을 뿐이다. 합법성 여부는 논외로, 여기서 뒷문과 옆문의 차이점이 분명해진다. 부모가 자기 자녀를 거액 기부로 대학에 보내려 할 때 그 돈은 대학에 들어가 모든 학생들에게 혜택이 될 교육 조건 개선에 쓰일 수 있다. 그러나 싱어의 계획에 따르면 돈은 제3자에게 돌아가고 대학 자체에는 거의 또는 전혀 보탬이 안 된다.(적어도 하나의 케이스는 예외였는데, 싱어의 뇌물을 받은 어느 조정부 감독은 그 돈을 조정부의 여건 개선에 썼다. 그러나 다른 모두는 자기 주머니에 챙겼을 뿐이었다.)
그러나 공정성 관점에서는 뒷문과 옆문을 구분하기 어렵다. 둘 다 부자 부모를 둔 청소년들이 더 나은 지원자가 되게끔 했으며, 능력보다 돈이 앞선 사례이기 때문이다. 능력에 근거한 입시제도는 ‘정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싱어도 그런 표현을 썼다. 정문은 ‘누구나 자신의 노력만큼 해낼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런 입시 방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정하다고 보는 방식이다. 지원자는 그 부모가 가진 돈이 얼마든 상관 없이 오직 능력, 실력으로만 입학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보면 그렇게 문제가 간단하지가 않다. 돈은 뒷문뿐만 아니라 정문 앞에도 떠돈다. 실력대로라고? 사실 실력은 경제적 우위와 구별해서 보기가 어렵다. SAT처럼 표준화된 시험은 그 자체로 능력주의를 의미하며, 따라서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배경을 가진 학생이라 할지라도 지적인 장래성을 보일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SAT 점수와 수험생 집안의 소득이 비례관계를 나타낸다. 더 부유한 집 학생일수록 더 높은 점수를 얻을 가능성이 크다.
부자 부모는 자녀를 SAT 모의 응시 과정에만 넣는 것이 아니라, 사설 입시 카운슬러를 고용해 입시 스펙을 다듬어준다. 또한 무용, 음악 레슨을 받게 해주고 펜싱, 스쿼시, 골프, 테니스, 조정, 라크로스, 요트 등의 엘리트 체육을 익히게 해준다. 대학 운동부에 뽑히기 쉬운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해외 봉사활동도 알선해준다.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을 어필하기 위해서다. 이런 것들은 다 부유한 부모가 자기 자녀에게 명문대 입학 자격을 따주기 위해 벌이는 ‘돈이 많이 드는 일들’이다.
학비 문제도 있다. 아주 소수의 부유한 대학들만 학비를 낼 여력이 되는지 따지지 않고 신입생을 받을 수 있다. 장학금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여유 있는 학생들은 그게 절실한 학생들에 비해 합격할 가능성이 크다.
이 모든 점을 따져 보면 아이비리그 대학생 삼분의 이 이상이 소득 상위 20퍼센트 이상 가정의 출신임은 놀랄 일이 아니다. 프린스턴과 예일에는 미국의 소득 하위 60퍼센트 출신 학생보다 상위 1퍼센트 출신 학생이 더 많다. 이 엄청난 입학 불평등은 일부 동문자녀 입학과 기여 입학제뒷문 때문이지만, 부잣집 학생들은 날개를 달고 정문으로 날아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관론자들은 이러한 불평등을 지적하며, 고등교육이 능력주의를 따르지 않음을 입증한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입시 부정 스캔들은 더 넓고 깊이 퍼져 있는 불공정의 고약한 실마리일 뿐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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